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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리만 제이 Oct 30. 2020

지구촌 시대, 글로벌 인재는 없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다만 우리가 뜻 한다면 말이다...

"Accordingly, globalization is not only something that will concern and threaten us in the future, but something that is taking place in the present and to which we must first open our eyes."

따라서, 글로벌화는 단지 우리를 걱정하게 만들거나 위협할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며, 우리가 반드시 당장 눈을 떠야 할 그 무엇이다. (Ulrich Beck, 독일의 사회학자)




나는 지구촌(地球村)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촌스럽다"라고 할 때의 "촌"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글로벌"이라는 단어보다 확실히 세련미는 떨어진다. 하지만, 영어로 "글로벌"이라고 하면 잘 전달되지 않지만, 한국어 표현인 "지구촌"이라고 하면 얼마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좁은 세상이 됐는지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촌(村)"은 "마을" 혹은 "동네"라는  뜻이다.

마을은 인간의 거주지역을 구분하는 단위 중 가장 작은 단위의 하나이다.

거대한 땅 덩어리를 뜻하는 대륙(大陸), 나라를 뜻하는 국(国), 그 아래에 국가별로 이름은 다르지만, 도(道), 현(県), province 등이 있고, 시(市), 군(郡), 구(区),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同) 즉 "동네"가 나온다.

우리는 동그랗게 생긴 땅 덩어리 인 지구라는 "동네"에 살고 있다.


여전히 인간은 탐욕적이고 이기적이어서, 국가 간 갈등, 분쟁이 끝없이 이어지고, 특히 최근에는 중미관계, 한일관계, 남북관계 등, 우리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개개인의 일상을 돌아보면, 세상이 이렇게나 좁게 느껴진 것은 인류 역사상 처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온 지구가 마치 한 동네처럼 좁게 느껴지지만, 물리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가까워졌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 비행기보다 더 효율적인 국가와 국가 간의 이동수단은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물리적인 이동의 효율성은 수십 년째 같은 자리에서 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뉴욕까지 가는 비행기 시간은 별로 줄지 않았다.


반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각종 메신저로 실시간 채팅을 하고, 공짜로 화상전화까지 한다. 중학교 시절,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스웨덴 소녀와 펜팔이란 걸 했는데, 내가 편지를 써서 답장을 받는데, 아무리 빨라도 2~3주는 걸렸던 걸 생각하면,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속도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빨라졌고, 효율적으로 그리고 편리하게 변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으로, 미국에 사는 친구 가족에 새로 태어난 아기의 얼굴도 보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아마존으로 선물도 보낸다. 이미 이런 것들에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할 말 큼 익숙해져 있지만, 코로나의 확산으로 거의 강제적으로 우리는 이러한 삶을 더 강요당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같은 회사의 층이 다른 사무실에 근무하는 동료와도 요즘은 Zoom으로 미팅을 한다.

회사의 젊은 직원은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이탈리아 여인과 결혼을 전제로 진지한 연애 중인데 심지어 직접 만난 적도 없다. 20세기 출신의 "동네아재"인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연애이지만, 불과 20여 년 전에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과, 불과 10여 년 전에 처음 등장한 스마트폰, 그리고 불과 몇 달 전부터 전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자체를 바꾸어 가고 있다.

출처: pixabay


이처럼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작은 동네로 변해 가고 있는데, 우리들의 사고는 아직도 20세기에 멈춰 있는 것 같다.


영어태교를 받고 태어난 아이들은, 한국어도 제대로 구사 못하는 나이에 영어 조기교육을 받고, 좋은 유치원에 들어가 앞으로 수십 년간 펼쳐질 경쟁의 기초를 닦으며, 초등학교 시절에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좋은 학군으로 가족 전체가 이사를 가거나 위장전입을 하거나, 기러기 아빠를 서울에 남겨두고 영어나 중국어권 국가로 조기유학을 떠난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기계처럼 공부만 하다가, 대학을 가면 공사, 공무원, 대기업을 가기 위해 새벽부터 도서관에서 줄을 서야 하며, 운이 좋아 대기업을 가더라도 공사나 공무원처럼 "철밥통"도 아니니 정년퇴직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입사 초기에 바로 깨닫고, 낮에는 열심히 일하면서 밤에는 새로운 밥통을 마련하기 위해 "주경야독", 세련된 말로 "샐러던트 (샐러리맨 + 스튜던트)"가 된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 한 후에는 서울의 코딱지 만한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모아야 하는데, 월급만으로는 평생 모아도 안되니, 일명 개미의 일원으로 21세기형 "동학운동"에 뛰어들어 주식그래프와 함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산다.

내 말이 과장되어 있다고 느끼거나, 불편하게 생각 하신다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30여 년을 살아온 한국의 모습은 이랬고, 요즘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면, 한국인들의 "무한도전" 아니 "무한경쟁"은 점점 더 심화되어 가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낀다.


3년 전, 친한 고등학교 후배와 서울에서 술을 마시면서 이런 저런 잡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한때 지금이야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대구 경신고등학교와 매년 "서울대 입학생수"로 치열하게 경쟁하던 학교였다. 그래서, 아침부터 밤까지 자율학습과 정규수업에 필요한 참고서, 교과서만 수십 권에 달했는데, 안타깝게도 당시의 학교재단은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하지가 않아서, 학생들 사물함도 없었다. 그 덕에 우리는 커다란 야구가방에 수십 권의 참고서와 문제집, 교과서, 거기에 도시락 2개(점심, 저녁)까지 쑤셔 넣고 어깨가 부러져라 짊어지고 다녔다.

그때의 추억을 후배한테 이야기 했더니...


후배: 아이고야~ 희야 (형),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카노... 그거 다 옛날이야기다. 요즘은 안 그렇다~.

나: 글체? 우리도 이제 선진국인데, 요즘 아들은 그렇게 안 살제?

후배: 글치, 요즘 얼라들 키 180 안되면 안된다고, 참고서, 교과서 같은거 슈트케이스에 넣어가 끌고 댕긴다 아이가.

나:... (할 말이 없다... 키도 경쟁이구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Cradle to Grave)"라는 표현이 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의 "복지 선진국"에서, 국민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복지를 보장한다는, 우리로서는 정말 부러운 표현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한민국에서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무한경쟁이 보장되는 나라인 것 같다. 일본 홋카이도보다 조금 더 큰 좁은 국토면적에, 석유, 석탄 같이 파내면 돈 되는 지하자원은 거의 없고, 덤으로 중국, 일본, 미국, 북한 등의 국가에 둘러싸여 외교적으로도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그나마 우리나라가 오늘날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된 것은 오로지 국민들이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노력하고, 쉴 틈 없이 일해 왔기 때문이니, 경쟁사회를 마냥 탓할 수도 없다. 아니, 대안이 없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올해 들어 코로나가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한국의 "K방역"이 주목을 받고, 선진국이라고 동경해 왔던 유럽, 미국, 일본의 위기대응에 대한 사회 시스템에 구멍이 쑹쑹 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헬조선" "오포 세대" 등의 자조적인 표현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코로나는 우리의 삶을 좀 먹어가고 있지만, 우리가 우리의 삶을 스스로 돌아볼 기회도 동시에 안겨준 것 같다.


선진국에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수출하기 위한 통상협상에서, 어쩔 수 없이 농산물을 개방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신토불이(身土不二)", 즉 "몸과 땅은 둘이 아니니, 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 땅에서 난 농산물을 먹자"라는 자발적 국민운동으로 대처해 나갔다. 나는 신토불이가 비단 우리의 먹거리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대한민국에서의 생활이 힘들고 고단해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 고향만큼 편리하고 편안한 세상은 없다. 외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어느 누구와도 쉽게 대화가 가능하고,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은 지천에 널려 있다. 이 땅의 주인이니, 우리가 외국인을 차별하는 경우는 있어도, 대한민국에서 한국인이라고 혹은 유색인종이라고 차별받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한국인에게 대한민국처럼 "편안히" 살 수 있는 보금자리는 이 지구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꿈꾸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편안한 보금자리"에서 벗어나, "조금은 덜 편안한" 새로운 무대에 한번쯤은 도전해 보길 권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꿈을 가지고, 다른 인생 목표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모든 다양한 꿈과 인생 목표와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무대가 반드시 대한민국에만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대한민국 외의 타지(남의 땅)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자 할 때 용기내기 쉽지 않은 이유는, 우리를 옭매고 있는 "인생 시간표"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10대에 열심히 공부해서, 20대에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한 후에, 30대 초반에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고, 40대에 집을 사고, 애들 좋은 학교 보내고...


와이프와 나는, 신혼초에 돈 들고 준비하기 힘든 형식적인 결혼식은 하지 않기로 합의해서 혼인신고만 하고 살고 있었는데, 주변의 친구, 친척, 직장동료, 지인들이 "왜 결혼식을 안 하냐? 둘 사이에 무슨 문제 있냐?"라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서, 결국 결혼 3년 만에 LG 본사 건물에 있던 이벤트 홀을 사원할인으로 빌려 결혼식을 올렸다.


정해진 나이에,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대로 살아야만 비교되지 않고, 눈치 안 보고,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마치 일정표가 정해져 있는 "패키지 관광상품" 같은 인생 시간표에서는 "해외에서의 도전"은 보기 드문 옵션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보편적인 옵션이 아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외국인으로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 이미 다른 또래의 친구들보다 인생 시간표에서 늦어질 가능성도 걱정될 것이다.


설령 도전했다가 뜻 한대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떤가.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남의 땅에서의 노력과 경험은, 우리의 사고의 틀을 넓혀 줄 것이고, 한발 떨어져서 나 자신과 조국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며, 운이 좋으면 해외에서의 경력이 한국에서의 재출발에 있어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 경우도 적지 않고, 특히 생활하면서 몸으로 "익힌" 외국어는 한국에서 책 파서 힘들게 "배운" 외국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이를 가지게 된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는 불과 2달 밖에 되지 않고, 관심작가도 몇 분 안 계시지만, 관심작가분 중에는 독일에서 카페일을 하시는 분, 미국에서 IT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하시는 분, 영국에서 기자생활하시는 분, 싱가포르에서 사업하시는 분등... 브런치에는 유독 해외에서 활약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혹은, 내 눈에 그런 분들이 더 잘 띄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이미 많은 분들이 "조금은 덜 편안한 남의 땅"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을 글로나마 읽게 되면, 나 스스로도 많은 용기를 얻게 된다.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겠다는 분은 그분의 선택으로 존중한다. 결코 잘못된 선택도 아니고,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무대를 굳이 한국에 국한할 필요는 없으며,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꿈을 펼칠 생각과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말고 일단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래야 후회가 없다. 해 보고 하는 후회는, 안 해보고 하는 후회보다 덜 아프다. 미련이 없으니...

그리고, 어떠한 경우이든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분명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해 드리고 싶다.


지구가 동네처럼 좁아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글로벌 인재"라는 표현은 더 이상 의미없는 표현인 것 같다. 마치, 외국어를 좀 잘하고, 외국에서 물 좀 먹었다는 사람을, 조금은 특별한 인재로 여기고, 평범한 사람과 구분 지으려는 표현으로 들린다. 설령, 한국에서 취업을 하게 되더라도, 우리의 경쟁자는 더 이상 한국인이 아니다. 옆 동네의 Mr. David 일 수도 있고, Mr. Nakamura 일 수도 있고, Ms. Cheng 일수도, Ms. Mahindra 일 수도 있다. 지구촌 시대에, 더 이상 글로벌 인재는 없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대우 그룹을 창설하신 고 김우중 회장의 말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유명한 표현이다.

개인적으로 고 김우중 회장을 그리 존경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심플하고 간결하면서도 가슴을 뜨겁게 하는 말도 드문 것 같다.


나는, 21세기의 지구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세계는 이미 좁아졌고, 오히려 할 일은 더 많아졌다."

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만, 우리에게 그런 뜻과 의지와 용기가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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