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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연 Feb 03. 2020

북한의 판문점에서 남한을 바라보았다

평양,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눈을 깨어보니 4시 50분. 알람이 울리기 10분 전이었다. 룸메는 언제 들어왔는지 코 골며 자고 있었다.


'눈 뜨니 평양이야.'

혼자 이불속에서 큭큭거리다 룸메가 뒤치락거리는 바람에 냉큼 화장실로 달려가 샤워를 하고 간단하게 화장까지 마쳤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 방을 함께 쓰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서산호텔 내부

어제저녁을 너무 늦게 먹어서인지 조식은 못 먹을 것 같았다. 대신 커피라도 마실까 싶어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당 바로 옆에 매점이 있었는데 어르신들 몇 분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게 보였다.


혹시 커피도 파는가 싶어 들어갔더니... 마치 약속이라도 한  말을 멈추고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조용해졌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했다. 

종업원마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기에 괜히 들어왔나 싶었다.


"저, 커피 있습니까?" 


"예?" 


"커피... 요."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미안해하며

"커피는 없습네다. 차는 있습네다."


"아, 네.. 그럼.."

나가려는데 어르신들이 여전히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에잇, 이렇게 들어온 거 인사라도 하자.'


"안녕하세요, 저는 남조선에서 왔습니다." 어르신들을 향해 허리를 폴더폰 마냥 접으며 인사드렸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갈색 빵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께서 꼬고 있던 다리를 풀어가며 반 일어난 자세로 "아이고 반갑소." 하셨다. 덩달아 옆에 앉아계신 할머니들도 나를 보며 "아이고, 잘 오셨습네다." 하며 정말 반갑게 맞아주셨다.


'잘 오셨습네다.' 한동안 이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얼마나 따뜻한 말인지 왜 미처 몰랐을까..

내가 잘 오긴 진짜 잘 왔나 보다. 


당은 중국 관광객들로 붐볐다. 밥 냄새도 어찌나 진하던지 호텔 로비에서 식당까지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식은 주로 한식이었다. 미역국에 두부조림, 계란찜, 야채무침 등 늘 내가 먹고살았던 음식들이었다. 


식당 한편에 선 종업원이 두껍게 썰린 토스트와 버터, 그리고 딸기잼이 함께 올려진 은색 쟁반을 들고 있었다. 간혹 외국인(서양사람)이 그 옆을 지나가면 "Would you like some toast?" 토스트 드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내 앞에 있던 외국인 팀원한테는 빵을 먹을지 묻더니 나한텐 안 물어봤다...


'동무, 저도 토스트 먹을 줄 압니다만...'


돌고 돌아 드디어 커피를 발견하긴 했다. 사람들이 몰려있길래 나 역시 짧지 않은 줄을 섰는데.... 도저히 커피라고 부를 수 없는, 커피맛을 겨우 낸 듯한 커피 아닌 커피였다. 설탕을 얼마나 퍼부었는지 한 모금 먹다 말았다.


물이나 사야지 싶어 어제 들린 매점에 다시갔다. 물과 껌을 계산하다 젊은 가이드와 마주쳤다. 웃을 때 유난히 한쪽 눈이 더 감기는 게 되게 귀여운데 대뜸 날 보며 "누나"라고 불렀다. 그렇게 불러놓고 본인도 엄청 쑥스러웠는지 팔을 꼬며 웃었다.


그 이후로 난 그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놓기 시작..했다..?

[가이드의 이름과 상세한 인상착의는 자제하고 있음을 이해해 주세요.]

매점에서 구입한 껌과 물


대기 중인 버스를 타기 위해 호텔 밖을 나섰다. 밝은 날 본 호텔은 생각보다 훨씬 현대적인 외관의 건물이었다.

평양시 서산호텔

기사님이 버스를 점검 중 이셨다. 터벅터벅 걸어오는 나를 보시자 대뜸 "거, 날래 날래 오라우~" 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계셨다. 마른 몸에 주름 가득 진 얼굴을 있는 대로 구기며 웃는 모습은 영락없는 시골집을 찾아간 손녀를 맞이하는 할아버지 모습이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날 저렇게 반겨주지 않으셨을까?(참고로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사진 속에서만 뵈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이런 사소한 사람 냄새가 얼마나 좋은 향인지 점차 깨달아 가는 것 같아서 참 좋다.


"잘 주무셨어요?"

미리 준비해 둔 은단껌과 가나 초코바를 건네드리며 아침 인사를 했다.


"잠이야 늘 잘 자지요."


버스에는 미리 와서 자고(?) 있는 팀원이 몇 명 보였다. 술냄새가 어찌나 진동하는지 새벽 3시가 넘도록 술판을 벌였단다. 대단하다!


아직 차가운 온기가 남아 있는 버스 안에서 오늘 일정표를 확인했다. 오늘은 내가 북한에 꼭 와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던 장소를 방문하는 날이다. 7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가장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바로 파주에 있는 판문점이었다. 특히 남한 땅도 북한 땅도 아닌 공동경비구역(JSA)을 방문하기 위해선 호주 여권이 필요했으므로 내겐 남다른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판문점을 가게 된 계기 역시 북한이 너무 궁금해서, 너무 가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당시 근무하던 외국계 회사 팀원들이 가보고 싶어 하기에 마침 나에게도 좋은 기회인 것 같아 가이드나 해줄 겸 따라가게 되었다.


남한에 있는 판문점을 방문할 때도 엄격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 옷도 규정에 맞게 입어야 하며 공동경비구역에서 북측을 바라볼 땐 손가락질을 하거나 웃고 떠들 수 없었다. 종로에서 파주로 넘어오는 내내 규칙에 대해 가이드가 얼마나 떠들어댔는지 막상 도착했을 때는 하도 겁을 먹어 그룹 맨 앞에 서있기도 무서웠을 정도였다. 혹시나 총받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다소 웃긴 생각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난 공동경비구역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걸어서 2분도 채 걸리지 않을 곳이 북한 땅이었다. 카키색 군복을 입고 경비를 서고 있는 북한 군인을 마주 보았다.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을 보며 북한에서 보는 남한의 모습도 저렇게 차가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7년이 지난 오늘 드디어 나는 북한 쪽에 서서 남한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감정을 두고 설렌다고 해야 할지 두렵다고 해야 할지 적합한 단어도 찾기 쉽지 않았던 만큼 북한 판문점은 내겐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 그 자체였다.


팀원이 모두 모이자 버스는 개성을 향해 출발했다. 평양을 지나니 부드럽게 밀려나갔던 도로가 다시 울퉁불퉁 거리며 거칠게 깔려 있었다. 졸음운전으로 사고 날 일은 절대 없겠는걸..?


아까 나를 누나라고 부르던 가이드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개성의 역사와 판문점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직 이른 시간에 시작된 역사수업이라 그런지 나와 몇 명을 제외한 팀원들은 모두 숙면모드로 들어섰다.


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 어떤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드넓게 펼쳐진 논밭이 선명한 자연색으로, 녹색으로, 그리고 노란색으로 짙게 물들어있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개성으로 가는 길이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개성으로 가는 길이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개성으로 가는 길이다.

1시간 정도 달렸을까 첫 번째 휴게소에 들렀다. 나무판자를 금빛천으로 깔아 덮은 테이블 위에 이것저것 올려놓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성가는 휴게소 - 이 사진은 두번째 방문한 6월에 찍은 사진이다.

나는 이곳에서 땅콩 맛 사탕 한 봉지와 강냉이 시리얼, 믹스커피, 그리고 <See you again in Pyungyang 평양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쓰인 천가방을 샀다.

혼자 바쁘게 여기저기 돌아가며 물건을 사고 있는 나를 보더니 룸메이트가 조용히 다가왔다.


"제이, 마지막 날 쇼핑센터에 간다고 했어. 여기서 사지 마. 되게 비싸게 팔 거야."


나는 "아, 그래? 몇 개 안 샀어."라고 웃으며 대답했지만 옆 좌판에 가서 캔커피를 하나 더 샀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남한에서 태어나 반공방첩 사상을 가진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 이렇게 북한에 들어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렇게 평범한 북한 사람들과 모국어로 자연스럽게 말을 섞고 있는 게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작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들은 평생 들어와 보지도 못하는 땅에 외국인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구나. 이산가족들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는 내가 얼마나 부러울까 라는 생각마저 드는 걸 보니 나 정말 이 여행에 심취해있었나 보다.


곧이어 버스가 출발하고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두 번째 휴게소에 들렀다. 이곳엔 엽서를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었는데 신기했던 점은 여기서 엽서와 우표를 구입하고 가족들에게 간단한 안부 인사가 담긴 내용을 적어내면 판매원들이 각 국으로 부쳐준다는 것! 국제전화와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는데 엽서까지 보낼 수 있다니.. 세상에, 남한만 빼고 얼마나 지극히 당연스러운(?)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걸까?


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우표와 엽서를 구입하고 서둘러 안부인사를 써 내려가기 바빴다. 유일하게 대한민국으로만 보낼 수 없다는 씁쓸한 현실에 우표만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미스 정, 남조선으로 보낼 수 없으니 좀 섭섭합니까?" 어딜 가든 늘 내 주위를 맴돌던  매니저가 웃으며 물었다.


"그렇죠 뭐.."


내 표정이 신경 쓰였는지 내 옷깃을 잡고 문 입구에서 가장 구석에 위치했던 우표 데스크로 데려갔다. 그곳엔 다양한 북한 기념우표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우리가 다가오는 걸 본 판매점 점원이 두 손을 테이블 위로 가볍게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분은 남조선에서 여행 오신 분입네다. 뭐 좀 특별한 우표 없습네까?"


"아, 남조선에서 오셨습네까?" 점원은 나를 보더니 뭐라도 생각났는지 “아, 그 남조선에서 대통령이 오셨을 때 기념해서 나온 우표가 하나 들어 왔습네다.” 하며 박스 안에서 A4용지 크기의 우표 전지를 꺼내 보이셨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다고는 하지만 외국인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아직 진열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파란 바탕에 We Are One ‘우리는 하나 로고’가 써져 있다.
엽서를 펼치면 4차, 5차 회담을 기념하는 한반도 지도 모양을 담은 우표도 함께 들어 있다.

또 한쪽 면에는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 가사도 실려 있었다. ‘하나 민족도 하나, 하나 핏줄도 하나, 하나 이 땅도 하나, 둘이 되면 못살아 하나. 긴긴 세월 눈물로 아픈 상처 씻으며 통일의 환희가 파도쳐 설레네. 하나 우리는 하나 혈육의 정 뜨거운 하나.’ 가사만 읽어 보아도 분단된 가슴 아픈 역사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통일의 염원이 물씬 풍긴다.  


매니저님과 점원 동지 덕분에 귀한 우표를 얻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버스는 판문점을 향해 곧 출발했다. 개성, 특히 판문점 근처는 군사적 요충지가 많아서 버스 안에서조차 창밖을 찍는 건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어떤 장소에서는 군인이 직접 버스에 올라타 함께 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잠깐 내린 곳에서 두 포스터를 보았다. 사진 찍는 게 유일하게 허락된 장소였다.

판문점 근처에 세워져있는 포스터.


이제 버스는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들어갔다. 가이드들도 팀원들도 모두 긴장감을 느꼈는지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꿀꺽 넘어갔다. 다른 팀원들은 몰라도 나는 알 것 같았다. 이곳이 북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지, 마주 보고 있는 남한 사람에게도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눈앞에 군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는 천천히 판문점 입구까지 들어갔다. 긴장감이 돌았다. 카키색 군복 어깨에 붉은 별을 달고 가슴에 지도자 배지를 단 무표정한 군인들이 여기저기에 서 있었다. 군인 사진은 절대 찍을 수 없다.


가이드가 우릴 한 곳으로 모으곤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곧 군인 한 명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얼굴이 식별될 만큼 가까이 왔을 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헉.. 군인이다.'


7년 전, 파주 판문점에서 보았던 군인이 생각났다. 얼마나 차가웠었는지.. 나는 조용히 무리 중 가장 뒤, 키가 큰 유럽 남자 뒤에 섰다.


"고조 유로프 사람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다르게 생긴 사람도 보입네다."

군인의 첫마디였다. 긴장을 했던 팀원들도 생각 외로 밝고 크게 말을 하는 군인을 보고 마음이 조금 풀렸는지 웃기 시작했다.


"오데서 오셨습네까?"

그가 맨 앞줄에 서 있던 중국계 호주인 부부에게 물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다 나를 발견하고는 웃어 보였다. 왠지 한국인일지도 모를 거란 생각을 했을까?


나에게 시선이 쏠렸고 모두 내가 어디서 왔는지 대답하길 기다리는 듯했다.


"남조선에서 왔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군인이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아, 기맀습네까? 아이고 반갑습네다. 잘 오셨습네다. 거, 악수나 한번 합시다."

 

얼떨결에 앞으로 나가 악수를 했다. 주변에서 박수소리와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이건 뭐 상상도 못했네..'


난 줄곳 그 군인과 함께 나란히 걸었다. 덕분에 어딜 가든 가장 먼저 들어갈 수 있었다. 왠지 동포 특혜(?)를 받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정전협정 조인장>이었다. 1953. 7. 27일 바로 이곳에서 남북 정전이 협정되었다고 한다.

정전협정조인장 입구
정전협정조인장 내부
정전협조인장 내부-정전협정서 원본이 보존되어있다.
정전협정조인장 내부 --영상은 두번째 방북때 찍었다.

정전협정조인장을 구경하고 다음으로 안내받은 곳은 김일성 지도자의 친필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었다. 비석을 자세히 보면 이름 아래 1994년 7월 7일 이라고 적혀있다. 이는 김일성 지도자가 사망하기 하루 전날이다. 마지막 자필서명을 그대로 비석에 새겨넣었다고 한다.

판문점에 있는 김일성 친필비

.

.

.

그리고 이제 그렇게 기다리던 판문각을 향해 걸었다. 눈앞에 판문각이 형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7년 전 바로 이곳에 북한 군인이 서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판문각이 눈앞에 보인다.

그때 그가 서 있던 자리에 서서 남한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오면 많은 생각이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서 있으니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때 북한군인이 이 곳 어디쯤에 서 있었던것 같다.

남측에서 바라본 판문각은 회색빛이 도는 다소 차가워 보이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가까이 서보니 우리와 별다를 게 없는 건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부는 벽, 계단, 천장 할 것 없이 화려한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북측 판문각에서 바라보는 남측 판문점

2층에 올라와 남한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손을 흔들면 건너편에서 누구라도 봐 줄것 같았다.


"이렇게 북조선에서 남조선을 보니 기분이 어떠십네까?"

그 군인이었다.


"좀 이상해요. 여기까지 오는데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7시간을 넘게 걸려 왔는데 이렇게 보니 걸어서 2분도 안될거리에 남한이 있었네요. 바로 걸어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내 말에 북한 군인은 웃었다.


"그러게말입네다. 통일이 빨리 되야디않캈습네까?"


그와 손을 잡고 사진을 함께 찍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가 손잡고 있는 사진을 찍었다.

2018. 11월, 북한 판문각(좌) 2019. 6월 북한 판문각(우) 다시 만났다.

"제 이름은 OOO입네다. 저를 잊지마십시요. 통일되면 다시 만납시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남한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남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 두 판문점을 오고 갈 수 있다면, 만약 서로를 빨갱이나 적, 혹은 남조선 또는 북한으로 부르지 않고 서울 사람, 평양사람, 개성 사람, 함경북도 사람이라고 부른다면 통일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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