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동화는 가장 효과적인 영어 공부 자료이다.
최근 유행하는 여러 영어 공부법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겉으로는 달라보이지만 그것이 전제로 하는 근거는 하나로 귀결된다. [실력 = 흥미 X 노출량]이라는 공식이다.
오늘 글에서는 노출량이 만능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 접근법에 대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더 나아가 이 공식이 실제로 선순환의 궤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져야 할 조건들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살펴 보고자 한다.
우리가 전제로 하고 있는 대부분은 많은 가정을 근거로 한다. 따라서 그 가정들이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열심히만 하다가, 결국 결과는 못보는 불상사는 바로 이 중요한 것을 놓칠 때 발생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림 동화가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려면 반드시 제대로 읽는 습관이 필요하다. 조금 더 어려운 단어로 표현하자면, 반드시 노출의 질이라는 요소를 필요로 한다. 공식화 화면 [실력 = 흥미 X 노출량 X 노출의 질] 이렇게 표현해 볼 수 있겠다. 통상 노출의 질이라 하면 아이들의 집중력을 요구하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읽는 방식의 문제이다.
이야기를 쉽게 풀어 가기 위해 대표적인 영어 공부법인 엄마표 영어를 예로 들어 살펴 보자. 엄마표 영어는 우리말을 배우는 과정을 영어 습득 과정에 그대로 접목시켜서, 우리말 배우듯이 영어를 습득해 가는 것을 지향한다. 우리가 우리말을 노출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웠으므로, 영어 역시도 동일하게 가능하다는 것이 기본 전제이다.
이 전제가 현실로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도구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영어 동화책이다. 엄마표 영어에서 영어 동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영어를 잘하려면 영어에 대한 노출량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학원에 1시간씩 다니는 걸로는 불충분하다. 그러니 엄마가 나서서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접하게 해줘야 한다. 이렇게 아이에게 맞는 영어 동화를 찾아 자주 접해 주다보면 아이가 영어에 흥미를 갖게 되고, 영어가 재미있어지면 영어에 대한 노출량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니, 우리가 한국어를 배운 것 처럼 우리 아이도 영어를 잘하게 될 것이다."
이 논리에는 아이의 현재 행복과 미래 행복의 준비 사이에서 고민하는 엄마의 내적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 아이의 현재 행복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아이가 성인이 되어 성공적 삶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영어를 가르치고 싶은 엄마의 마음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렸을 때부터의 영어 노출이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의 영어 실력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건 이미 지금의 부모 세대가 경험적으로 검증한 사실이다. 지금의 부모 세대는 영어 조기 교육의 혜택을 어느 정도는 본 세대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떤가? 굳이 영어 공부를 예로 들 필요도 없을지 모른다. 여러분들 중에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덕분에 많은 한국어 동화책을 접한 분들도 있으실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로 책 읽는 습관을 지속하는 성인은 얼마나 될까?
이른 나이에 영어 동화를 보여주고 영어를 접하게 하는 것이 영어에 대한 선호를 빨리 결정할 수 있게는 한다. 선호란 무조건 좋아하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좋고 싫음을 결정 짓는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영어에 대한 조기 노출은 영어를 좋아할지 싫어할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아이에게 결정하라고 다그치는 것과 같다.
우리가 무엇인가 잘하게 될 때를 되돌아 보자. 대체로 좋아하게 되서 잘하게 된다기보다는 잘하게 되서 좋아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반대의 악순환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다. 영어를 잘 읽을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채 섣불리 접촉량만을 높히면, 우리 아이가 오히려 영어에서 영원히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애초에 노출 중심의 학습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원어민 아이들이 말을 곧잘 하는 나이는 만 5세 정도이다. 이때가 되면 조숙한 아이는 부모와 인생을 논할 정도로 말을 유창하게 한다. 그 나이가 되는 동안 영어에는 얼마나 노출이 되었을까? 계산은 간단하다. 바로 '5살 X 365일 X 12시간'이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부모나 친구들의 영어에 노출되었을 것이니 365일을 곱하고, 하루에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12시간 동안 노출되었을 것이니 12시간을 또 곱하면, 전체 5년 동안의 영어 노출 시간이 나온다. 그 계산의 합은 바로 21,900시간이다.
만약 하루에 1시간씩 1년간 300일 정도를 공부를 시켜 원어민 만 5세 아이 정도의 노출 시간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수학은 정직하다. 바로 21,900시간을 300시간으로 나누면 걸리는 햇수가 나온다. 놀라지 마시라. 바로 73년이 필요하다. 많은 책의 제목이 되고 방송 타이틀이 되는 <하루 5분 영어 공부>를 이 공식에 적용하면 21,900시간에 도달하기 위해 무려 876년이 필요하다.
우린 실현 불가능한 거짓말에 속고 있는 것이다. 설령 하루에 한 시간씩 열심히 했다고 해도, 그 효과는 단순 시간의 합이 아니다. 원어민 아이들은 하루 12시간 내내 지속적으로 영어에 노출된다. 그것도 매일. 하지만 우리의 자녀는 1시간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23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다시 영어를 만나니, 어제 만났던 영어의 노출 영향이 그대로 아이에게 남아 있을까 의심스럽다.
이제 영어에 노출만 되면 영어가 잘될 것이라는 망상을 버리자. 도움이 전혀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 노력 대비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따져야 한다. 아이들도 바쁘다. 다른 과목 공부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막연히 영어를 보고 듣고 있으라고 주문하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열심히 노출하라! 영어 공부에 있어 마치 정설인 것 마냥 늘 회자되는 이야기이다. '흥미를 붙이면 된다'의 조건이 추가 되었을 뿐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이제는 부모 세대와는 다른 현명한 영어 공부 방법을 찾아 주어야 한다. '열심히'보다 '현명히'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영어 공부법이다.
제대로 읽기란 영어를 영어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를 한국어 사고 체계로 우겨넣지 않고, 영어를 영어식 사고 체계 그대로 받아들이며 읽는 것을 말한다. 한국어와 영어는 정반대로 사고한다. 그 때문에 한국어 사고 체계에 영어를 억지로 집어 넣으면, 문장이 뒤집어져 뒤죽박죽 된다.
영어를 영어로 받아들이려면 문장을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읽자마자,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고, 생각나는 대로 바로 말을 만들 수 있다. 이 기반이 다져지고 난 뒤, 그 위에 노출의 양을 더해줘야 영어 실력이 쑥쑥 자라는 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
아래 내용을 찬찬히 읽어 보자.
Police officers talk with passengers about their flight at the airport as workers are on a strike.
어떤가? 문장을 읽으며 어떤 상황인지 바로 그림이 그려지는가? 아니면 한국말로 번역하느라 정신없는가? 만약 단어가 나오는 순서대로 첫 단어부터 마지막 단어까지 차례차례 이해할 수 없었다면, 여러분은 영어를 영어 자체로 독해한 것이 아니다. 그냥 번역된 한국말을 이해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아이는 읽기는 하는데 듣기와 말하기가 안 된다. 그러니 듣기와 말하기 연습에만 집중하면 된다'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영어 학습자와 학무모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 중 하나이다.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는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읽을 수는 있는데, 듣기나 말하기가 안되었던 것은 영어를 영어로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영어 문장을 읽어도 한국어로 번역을 해서 읽었다면, 머릿속에는 한국어로 번역된 내용만 남는다. 영어는 머리에 하나도 남지 않는다. 번역은 본질적으로 영어 공부가 아니라 한국어 공부이다.
따라서 반드시 영어를 영어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실력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 영어를 영어로 읽으려면 무엇보다 붉은색으로 표시한 with, about, at, as, on과 같이 문장의 연결 고리 역할을 하는 '기능어'들을 잘 이해해야 한다. 전치사, 접속사, 관계사, 분사구문, 조동사 등의 기능어에는 약 100단어 정도가 있지만, 모든 문장 구성에서 그 사용 비율은 50%에 육박한다.
어떤 분야의 영어든 변하지 않는 골격에 해당하는 말이 바로 이 기능어이다. 이렇게 변하지 않는 것을 먼저 바로잡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즉 이 기능어들을 원어민 방식대로, 단어가 나오는 순서대로 이해해야 한다.
아래 그림이야 말로 진짜 동화책 읽기의 핵심을 보여준다. 영어 문장은 '주어에서부터 가까운 순서, 움직이는 순서대로' 나아가며 그림을 그린다. 동화책이 영어 공부에 좋은 이유는 이 흐름을 제대로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흐름을 익히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동화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 봐야 소용이 없다.
우리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되어 영어를 배우게 하고 싶다면 하루 종일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제공하라. 영어를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환경을 제공하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굳이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노출시키려고 애써 봐야 소용 없다. 그냥 우리 아이가 즐겁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 정도로 영어를 생각한다면, 영어로 된 책들을 얼마든지 보여줘도 좋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아이 영어 실력 향상에 진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프리미엄을 붙여가며 돈과 시간을 쏟아 붓고 있다면, 깊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턱없이 부족한 노출 시간과 빈약한 환경 속에서도 영어를 잘하려면 의식적인 제대로 읽기가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 그 적기는 앞에 다른 글에서도 언급 했지만 어느 정도 사고 체계가 갖춰진 초등학교 3학년부터이다. 사실 영어를 잘하고 싶은 모든 사람들은 쉬운 영어 동화책으로 영어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동화책이야 말로, 단어의 나열을 통해 그림을 차근 차근 그려 나가는 영어식 사고 체계를 가장 쉽고 빠르게 익힐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mhoSOX378I&t=110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