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단골손님들
나는 그녀들을 속으로 할망구라고 불렀습니다. "말 많은 할망구 같으니라고." 속으로 모진 문장들을 뿜어내면 그나마 웃을 수 있었어요. 가끔 나는 그 할망구들이 나를 괴롭히러 오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게에 아무도 없을 때, 그래서 한숨 좀 돌리고 쉬고 싶을 때 가게 쇼윈도에 번뜩이는 두 눈이 나와 마주칩니다.
동네 마실 다니는 할매들. 바로 가게 부근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이웃 할매들입니다. 그들은 연세가 많고 할 일이 없으며 몸이 아프거나 심지어 거동이 불편하기까지 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옷을 껴입고 지팡이를 짚고 때론 머리를 달달 떨면서 산책을 합니다. 그러다 우리 가게 쇼윈도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분위기를 살피지요. 눈을 마주쳐도 그냥 피해버리면 될 일인데 망할,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또 상당한 직업 정신으로 미소를 짓고야 맙니다. 오늘의 수다 상대를 포착한 할매들은 옳다구나 싶어 가게에 들어오지요. 어떤 할매는 가게 문턱을 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라 들어오다가 혹여나 넘어지시기라도 할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합니다. 가게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무조건 가게의 책임이 되기 때문이죠. 힘겹게 들어온 할매들 손에는 꼭 약봉다리와 근처 마트나 과일가게에서 산 것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어요. 한국 할매나 프랑스 할매나 손에 무언가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는 점에서 만큼은 참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게에 들어온 할매들은 손에 쥔 봉다리들을 아무 바닥에 놓고, 옷을 꼼꼼히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옷이 아무리 많아도 한벌 한벌, 걸음도 느리게 한 걸음 한 걸음, 옷에 대한 무수한 질문과 함께 말입니다. 간혹 나는 젊은이가 나이 든 육체에 갇혀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할매들의 관찰력과 기억력이 너무 좋아서 대충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요. 옷을 구경하다가 나가시면 다행인데, 어떤 할매들은 입어보겠다고 합니다.
가게가 퐁토슈 가에 자리를 잡은 지는 이십 년이 넘었지요. 그러니 그만큼 오래된 단골손님, 즉 가게와 함께 늙어가는 손님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옷에 대단한 열정을 갖고 계시고, 엄청난 멋쟁이이기도 한 단골 할매는 십 년 전만 해도 가게에서 옷을 꽤 구입하는 손님 중의 하나였지만, 갈수록 옷을 구입하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대신 액세서리를 사곤 했습니다. 아흔이 넘어도 블랙을 고수하며, 가죽바지와 재킷을 입고 미처 펴지지 않는 굽은 등과 고목 같은 손가락, 흐린 막으로 뒤덮인 잿빛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요.
한낮의 해가 너무 뜨거워 거리에 아무도 없던 여름날이었어요. 아래위 블랙으로 장착한 잿빛 눈의 할매가 가게에 들어왔습니다. 땀으로 범벅된 할매의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에 빈약한 머리카락 몇 가닥이 붙어 있었지요. 옷을 하나 집어 든 할매가 입어보겠다고 했습니다. 피팅룸에 안내해 드리니 옷을 혼자 입고 벗을 수 없으니 도와 달라고 하십니다. 얼떨결에 나는 할매의 땀에 젖어 축축한 옷을 벗겨드리고, 그러는 동안 할매는 아이처럼 고분고분 만세 동작을 하고 계셨어요. 비쩍 마른 몸에 살가죽이 마치 녹아내리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흐르고 있었는데, 순간 내 앞에 선 할매의 존재가 인간이 아닌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와닿았습니다. 이내 정신을 차리니 할매는 땀에 젖은 몸에다 가게의 새 옷을 끼워 넣고 있었습니다. 걸음이 불편한 할매를 거울까지 안내해 드리고는 괜찮다고, 나쁘지 않다고 칭찬 비스무리한 말을 하는데 도저히 내 입에서 "예쁘네요, 너무 잘 어울려요."라는 문장이 튀어나오지 않았습니다. 축축한 저 옷을 팔아버려야 하는 건 분명한 사실인데, 내가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 말을 한 들 할매가 과연 믿을까 싶었습니다. 옷을 다시 벗겨 드리는데, 여태껏 단 한 번도 막상 나는 내 할머니들의 벗은 몸을 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긴 어디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존재의 가치와 직업적 의무와 니체와 칸트와 키에르케고어와... 수많은 생각들로 번뇌에 휩싸이고 맙니다. 할매가 사지 않겠다는 축축한 옷을 양 손가락 끄트머리로 겨우 잡고서.
이제 잿빛 눈의 할매는 자신의 딸을 데리고 가게에 들르기 시작했어요. 딸도 나이가 많아 예순이 넘은 마담이었는데, 할매가 이거 저거 입어봐라 할 때마다 고분고분 말을 들었지요. 나는 할매가 한참 오지 않을 때면 소식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럴 때쯤 할매가 쇼윈도에 짠 하고 나타났는데, 올해는 반년이 넘도록 할매를 보지 못했어요. 언제 돌아가신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연세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나이가 들어 파리를 떠나 다른 곳에서 삶을 보내겠다고 인사를 하러 오시는 마담도 있습니다. 우리의 오래된 단골 마담 도미니크. 도미니크 아줌마는 늘 남편과 함께 다니는 잉꼬부부였어요. 커트 머리에 다소 보이시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입어보는 옷마다 남편과 우리에게 의견을 묻고 예쁘다고 하면 활짝 미소를 짓는 사랑스러운 분이었지요. 올 때마다 옷을 많이 사는 분이라 좋아하기도 했지만, 여유 있게 기다려주는 남편과 아줌마의 모습을 보는 게 좋았습니다. 저렇게 나이가 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도미니크 아줌마는 가게가 아주 바쁜 날이면 아줌마가 괜히 나서서 나를 도와주려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손님들의 옷매무새를 고쳐주고, 말 상대가 되어 주기도 했어요. 나는 성가시기보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도미니크 아줌마를 다시 만난 건 아주 오랜만이었어요. 그간 사장님에게 아줌마 소식을 전해 들었었지요. 남편과 이혼을 했다는 소식에 너무도 놀랐습니다. 오랜만에 본 아줌마는 살이 10킬로그램이나 빠져 아주 핼쑥한 모습으로 내게 Au revoir (안녕)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곧 브르타뉴로 이사를 간다면서요. 파리가 지긋지긋해진 아줌마는 아무 연고가 없는 그곳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브르타뉴는 프랑스 서쪽 끝, 대서양을 끼고 있는 지역인데 바다와 자연이 아주 아름다운 곳이에요. 하지만 평생을 번잡한 파리에서 파리지앵으로 살아오신 아줌마가 브르타뉴에서 잘 적응하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줌마와 제 눈에 눈물이 고였어요. 우리는 얼싸안고 비주를 했습니다. 아줌마는 내 시할아버지와 호베르 아저씨 다음으로 내 뺨에 뜨겁게 뽀뽀를 한 사람이에요. 나는 뺨을 다시 닦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안부를 나누기로 했어요. 아줌마는 혹시 브르타뉴에 놀러 오게 되면 연락하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지요. 걸어가는 아줌마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 깊이 그녀의 새로운 삶을 응원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다시 볼 일도, 주고받은 이메일을 쓰게 될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나는 도미니크 아줌마를 글로 남겨두고 싶은 걸지도 모릅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잊어버린 수많은 인연들이 있었어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약속들을 했던가요. 다시 만나자, 편지를 쓰겠다, 곧 연락할게.
도미니크 아줌마와 아흔이 넘은 잿빛 눈의 할매와 퐁토슈 가의 할망구들, 나를 괴롭히기도 또 감동을 주기도 했던 수많은 사람들.
글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나의 마담들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