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운 게 뭔데? 도대체 나다운 게 뭐냐고!”

by 기주
드라마 속 최고의 빈도 대사가 있다.

“나다운 게 뭔데? 도대체 나다운 게 뭐냐고!”

정말 오글거리는 대사인데, 그 대사를 내가 쓰게 될 때가 오다니 참으로 간지러운 일이다.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이라……. 나는 아직 ‘나답게’라는 말이 가장 어렵다.

나는 30살이다. 어릴 때는 30살이 되면 본인만의 결론을 내린 채, 안정기에 들어서는 나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30살이 된 지금의 나는, 아직까지도 복잡하기만 하다.

3년 전, 나에게는 완벽한 ‘번 아웃’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유도 모른 채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술의 도움을 받아 수면 세계로 도피를 하곤 했다. 늘어진 내 모습을 본 친구는 학교에 있는 상담소로 질질 끌고 갔다. 어차피 정형화된 답변을 들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 가기 싫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신뢰가 전혀 가지 않았다. 그 사람이 날 얼마나 안다고 나를 변화시켜 주겠어?

하지만 처음 보는 상담가에게 이런 날 선 내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었다. 들어가기 전 표정관리를 하고,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문고리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내가 상상했던 상담가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밝은 웃음으로 나를 반길 줄 알았지만, 그는 달랐다. 그의 눈은 잔잔했고, 입에만 옅은 미소로 나를 반겼다. 오히려 그런 차분한 환대에 분위기는 더욱 평온하게 만들었다. 그는 먼저 작성한 문진표를 보면서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고 중간중간 미간을 찡그리기도 했으며, 또 가끔 그의 눈은 밝게 빛나기도 했다. 그의 얼굴 변화를 관찰하면서 나는 착실히 답변을 했다. 하지만 착실히 답변을 하면서도 내 앞에 있는 그가 대충 어떤 식으로 말을 풀어낼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

“힘드시겠어요. 그래요. 힘든 일을 잊을 수 있게 다른 취미를 찾아볼까요?”와 같은 답변 말이다.

하지만 그는 내 예상과는 다른 말을 꺼내놓았다.

“기주 씨는 17살에서 성장이 멈춘 사람 같아요. 본인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으신가요?”

그가 나에게 건넨 그 한마디는 내 모든 것을 다 무너뜨렸다.

“넌 왜 만날 집에만 있어, 좀 나가서 놀아.”
“넌 왜 친구들한테 먼저 말을 안 걸어?”
“너 되게 음침해 보여.”
“어차피 할 일이면 기분 좋게 해.”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내가 더 잘되길 바란다는 명목으로 훈수를 두곤 했다. 그 훈수를 나는 순진하게도 다 받아들였다. 결국 나는 불특정 다수의 살인과도 같은 언행으로 인해 나를 꾸준히 죽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그들의 훈수는 본인들이 내린 최선의 결론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내 생각으로 결론을 내려 실패를 하는 것보다는 그들을 따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주위 사람들의 인생의 결론을 고대로 베껴서 살기 시작했으니, 나에게는 내 생각의 결론 따위는 애초에 존재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의 훈수로 가득 찬 내 모습으로 굉장히 잘 지냈다. 비록 내 모습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빛 좋은 모양새를 온몸 가득 기워낸 내 모습이긴 했지만, 이전보다 사람들은 나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한 변화는 내 주위 사람들을 뿌듯하게 만들었다. 본인들의 말로 인해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만족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 눈에 더욱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자, 반짝거리는 친구들의 성격, 행동들을 하나 둘 관찰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점점 다른 이들의 만족을 위해 힘썼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오면 굉장히 피곤했다. 집에서는 더 나은 나를 설계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밖에서는 내 에너지를 펑펑 나눠주고 왔다.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줄수록 내가 힘들었지만, 아무래도 그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기주야 너 성격 되게 좋다.”와 같은 말은 나에게 훈장이었고, 나의 본모습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여러 차례 상담을 받으면서 나에게는 변화가 생겼다. 원래 알던 친구들은 나에게 너 왜 이렇게 변했냐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흔들리지 않고 나만 생각하면서 행동하자고 굳게 맘을 먹었다. 당연하게도 나를 찾는 사람들은 줄었지만 오히려 짐을 덜어놓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나는

“나다운 게 뭔데? 도대체 나다운 게 뭐냐고!”

를 외치기 시작했다. 나는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집에서 그림이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놀라운 것은 생각보다 내 성격이 모나다는 것.

“어우 쟨 왜 저러고 살아?”가 아닌, 이제는 그래도 네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행동하도록 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 100% 내 생각대로 행동한다고 확실하게 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해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는, 나 자신과 이야기를 해서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이러한 변화에는 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가 바뀌고 나이를 먹으면서 분명 또 내 생각의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또 사춘기, 오춘기를 넘어 육춘기까지 겪게 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이 다시 찾아온다 하더라도 오롯이 내 생각으로 가득 찬, 반짝거리는 나로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