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갑(玉匣) 속에 잠든 제왕의 오명
有鳥焉, 其狀如鴟而人手, 其音如痺, 其名曰鵂, 其名自號也, 見則其縣多放士.
"(남산에) 새가 있는데, 그 생김새는 올빼미(수리부엉이)와 같은데 사람의 손이 있다. 그 울음소리는 메추라기와 같고, 이름은 '휴(鵂)'라고 하며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이것이 나타나면 그 고을의 선비(관리)들이 많이 쫓겨난다."
《산해경》 남산경 中
오래전, 중국 광저우(광동성)에 있는 '남월왕묘(南越王墓)'를 방문했을 때의 기억입니다.
지하 궁전으로 이어지는 입구에 들어서자, 남방 특유의 덥고 습한 공기와 함께 묘한 긴장감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중원의 양식과는 확연히 다른, 이국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의 벽화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압도한 것은 무덤의 주인, 남월왕이 입고 잠든 '옥으로 만든 수의(옥갑, 玉匣)'였습니다.
수천 개의 옥 조각을 붉은 실로 엮어 만든 그 화려하고도 기이한 갑옷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전율과 함께 고대 문헌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옛 중원 사람들은 동남쪽 해안가에 사는 이민족들을 일컬어 '조이(鳥夷, 새를 부리는 오랑캐)'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새를 토템으로 숭배하여 깃털로 옷을 해 입거나 화려하게 장식하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옥갑과 '새를 숭배하는 사람들'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겹쳐지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생전의 왕이 이 번쩍이는 옥갑을 두르고, 화려한 깃털 장식을 한 채 사람들 앞에 섰다면... 멀리서 그를 본 사람들은 그를 인간이 아닌 무엇이라 불렀을까?"
이 기억은 《산해경》 속에 박제된 괴조 '휴(鵂)'의 정체를 푸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었습니다.
기록은 휴를 '올빼미(혹은 부엉이)'를 닮았다고 묘사합니다. 왜 하필 부엉이였을까요?
남월(오늘날의 광동, 베트남 북부) 지역은 전통적으로 조류(새)를 토템으로 숭배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남월왕묘에서 출토된 유물들에서도 새 문양이 다수 발견됩니다.
당시 남월의 왕은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형형색색의 깃털로 장식된 거대한 관(Headdress)을 썼을 것입니다. 중원 사람들의 눈에, 화려한 깃털 장식을 머리에 이고 망토를 두른 왕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올빼미가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새인데 사람의 손이 있다"는 기괴한 묘사는 남월왕의 복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박물관에서 보았던 그 옥갑(Jade Suit)을 떠올려 봅니다. 온몸을 옥 비늘로 덮은 왕이 소매 밖으로 손을 내밀어 지팡이(왕의 권장)나 칼을 쥐고 있는 모습.
멀리서 보면 몸통은 깃털과 비늘(옥)로 덮인 짐승(새) 같은데, 거기서 쑥 나온 것은 분명한 '사람의 손'이었습니다. 이 이질적인 결합이 중원의 기록자들에게는 "사람 손이 달린 괴물 새"라는 공포스러운 이미지로 각인된 것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새가 나타나면 선비가 쫓겨난다"는 구절입니다. 이는 괴물의 능력이 아니라, 당시의 '국제 정세'를 반영합니다.
한나라 초기, 남월은 한나라와 대립하던 강력한 독립 왕국이었습니다. 한나라 조정 입장에서 남월은 반역의 땅이자, 중원의 불만 세력이나 죄인들이 망명하는 도피처였습니다.
즉, "남월왕(휴)이 영향력을 미치는 곳에서는 (한나라의) 올바른 선비들이 설 자리가 없다"거나, "그곳에 현혹되면 조정에서 쫓겨난다"는 식의 정치적 흑색선전(Propaganda)이 '괴조의 저주'로 둔갑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박물관의 옥갑 속에 잠들어 있던 왕의 침묵을 깨고, 《산해경》의 문장을 다시 써 내려갑니다.
"남쪽 남월 땅에는 위엄 있는 왕이 다스리는데, 그는 조상의 영혼을 잇기 위해 화려한 깃털 관을 쓰고 옥으로 만든 갑옷을 입는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올빼미와 같으나, 손에는 권위를 상징하는 지팡이를 쥐고 있다.
그의 세력이 강해지면 한나라의 관리들은 그 위세에 눌려 설 자리를 잃고 물러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