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시작하기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한 코워킹 스페이스. 나는 한국 스타트업 대표와 마주 앉아 있었다.
"우리 웹사이트 보셨죠? 어때요?"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한국어 사이트. 그 다음 영문 사이트.
같은 회사 맞나?
한국어 사이트는 "AI 기반 HR 솔루션"이라고 했다.
영문 사이트는 "Innovative Talent Management Platform"이었다.
한국어 사이트의 대표 사진은 정장 차림이었다. 영문 사이트는 청바지에 후드티.
회사 소개 영상도 달랐다. 심지어 제품 스크린샷조차 다른 버전이었다.
"어느 게 진짜예요?"
대표는 잠시 말을 잃었다.
이것이 내가 목격한 첫 번째 브랜드 붕괴였다.
그리고 마지막이 아니었다.
그 팀만이 아니었다.
뉴욕에서 만난 또 다른 한국 스타트업.
그들의 한국어 사이트는 "20년 업력의 검증된 기술력"을 강조했다.
영문 사이트는 "YC-backed disruptive AI startup"을 자처했다.
미팅에서 투자자가 물었다. "So, are you an established company or a startup?"
대표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그들은 각 시장이 원하는 것을 주려 했다.
한국 시장은 안정성을 원한다고 생각해서 "검증된"을 강조했다.
미국 시장은 혁신을 원한다고 생각해서 "disruptive"를 외쳤다.
하지만 브랜드는 카멜레온이 아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정하지 못하면, 시장도 당신을 정의하지 못한다.
그리고 정의되지 않는 브랜드는 기억되지 않는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 20년 경험이 있었고, 유명 글로벌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도 선정됐다.
하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강조하려다 둘 다 잃었다.
투자자는 이렇게 말했다. "I don't know what you stand for."
샌프란시스코의 한 데모데이. 한국 헬스테크 스타트업이 피칭하고 있었다.
"Our founder's mother suffered from dementia..."
나는 6개월 전 서울에서 들었던 그 팀의 IR을 떠올렸다. 그때는 "창업자의 개인적 경험"이 없었다.
시장 데이터와 기술 설명뿐이었다.
피칭이 끝나고 질문 시간.
투자자가 물었다. "That's a powerful story. How is your mother doing now?"
창업자가 당황했다.
"Actually, she passed away two years ago."
"I'm sorry. So you've been working on this for two years?"
"No... we started six months ago."
정적.
"Wait. So you started this business a year and a half after she passed?"
무엇이 문제였는가?
그는 "미국에서는 파운더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그래서 스토리를 '추가'했다. 하지만 스토리는 장식이 아니다.
어머니의 치매는 사실이었다. 그가 슬펐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 회사를 만든 이유는 아니었다. 실제로는 시장 기회를 보고 시작한 회사였다.
시장에 따라 스토리를 껐다 켰다 할 수 없다.
한국 투자자에게는 "시장 데이터"로, 미국 투자자에게는 "어머니 스토리"로 접근했다가, 둘 다 잃었다.
투자자 한 명이 미팅 후 나에게 말했다. "Good product. But I don't trust the founder."
이스라엘의 한 투자사. 한국 B2B SaaS 스타트업이 피칭 중이었다.
슬라이드는 완벽했다. 폰트 하나하나, 색상 톤, 그래프의 정렬까지. 마치 디자인 에이전시 작품 같았다.
15분 동안 대표는 슬라이드를 넘기며 읽었다.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눈은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피칭이 끝났다.
투자자가 물었다. "Nice deck. But tell me, off the slides—why are you passionate about this?"
대표가 당황했다. "Ah... it's on slide 3... let me go back..."
"No, don't go back to the slides. Just tell me. In your words."
그는 말을 잃었다.
그들이 놓친 것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그들은 "완벽한 준비"로 칭찬받았다.
깔끔한 슬라이드, 정확한 수치, 완성된 메시지. 그것이 전문성의 증거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스라엘 투자자들은 다른 것을 봤다.
그들은 열정을 봤다. 아니, 열정의 부재를. 완벽하게 암기된 대본을, 연습된 제스처를,
진짜 확신 없이 읽어 내려가는 슬라이드를.
"You prepared well. But do you believe in this?"
미팅이 끝나고 그 투자자는 내게 말했다.
"In Israel, we trust mess over polish. At least mess is real."
완벽함과 진정성은 때로 반대편에 선다.
미국의 한 스타트업 컨퍼런스. 한국 팀의 부스 앞.
그들의 배너에는 큰 글씨로 적혀 있었다. "We are a global, diverse team"
부스에 서 있는 사람들. 모두 한국인 남성. 20대 후반-30대 초반.
한 참가자가 물었다. "Where is your team from?"
"We have offices in Seoul, and we're expanding to..."
"No, I mean your team members. Where are they from?"
"Oh, all Korean. But we're hiring globally!"
참가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갔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그들은 거짓말하지 않았다. 정말로 글로벌 확장을 계획 중이었고, 해외 채용도 열려 있었다.
하지만 브랜드는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재의 증거다.
"We are"는 현재형이다. "We will be"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아직 글로벌 팀이 아니라면, 정직하게 말하라.
"We're building a global team"이라고.
또는 다르게 프레이밍하라. "Korean team with global ambition." 이게 더 진정성 있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그 팀은 단 한 명의 투자자와도 후속 미팅을 잡지 못했다.
이 네 가지 순간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모두 '표면'만 봤다는 것이다.
첫 번째 팀은 웹사이트 '텍스트'만 번역했다. 브랜드 정체성을 번역하지 않았다.
두 번째 팀은 '스토리 포맷'을 따라했다. 하지만 진짜 스토리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세 번째 팀은 '완벽한 피칭'을 준비했다. 하지만 투자자가 진짜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네 번째 팀은 '글로벌 브랜드' 같아 보이려 했다. 하지만 브랜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실패하지 않았다. 아직은. 제품은 좋았고, 팀도 훌륭했다.
하지만 그들의 브랜드는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수십 개의 스타트업과 일하며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것을 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것은 '실행'의 문제가 아니다.
웹사이트를 더 잘 만들면? 스토리를 더 잘 쓰면? 슬라이드를 더 다듬으면?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은 '이해'의 문제다.
브랜드를 단어의 집합으로 보는가, 아니면 의미의 시스템으로 보는가. 문화를 번역 대상으로 보는가, 아니면 해석 대상으로 보는가. 진정성을 '느낌'으로 보는가, 아니면 '일관성'으로 보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는 반복된다.
그래서 나는 더 깊이 파고들기로 했다.
표면적 해결책이 아니라, 본질적 이해를.
실수 목록이 아니라, 작동 원리를. '어떻게(how)'가 아니라, '왜(why)'를.
브랜드는 어떻게 의미를 만드는가? 문화는 왜 미적 코드를 다르게 읽는가? 진정성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다음 편부터는 이 '왜'를 파고든다.
브랜드가 진짜 작동하는 방식. 문화가 감각을 만들고, 감각이 의미를 만들고, 의미가 신뢰를 만드는 과정.
실전 경험에서 철학으로, 그리고 다시 실전으로 돌아오는 여정.
브랜드의 본질을 탐구한다.
[다음 편 예고]
"미학이란 무엇인가: 브랜드를 위한 재정의"
많은 사람들이 미학(aesthetics)을 '예쁜 것을 만드는 학문'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브랜딩을 디자인 문제로만 본다.
하지만 미학의 본질은 전혀 다르다.
미학은 **'의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달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리고 브랜드는 바로 그 '의미 생성 시스템'이다.
이스라엘 베잘렐 미술대학에서 히브리어로 미학을 공부하며 배운 것.
한국, 이스라엘, 미국을 오가며 발견한 것.
왜 같은 브랜드가 다른 문화에서 다르게 읽히는가. 왜 번역된 브랜드는 진정성을 잃는가.
왜 완벽한 브랜드가 신뢰받지 못하는가.
브랜드 스토리텔러이자 미학자의 시선으로, 브랜드의 표면 너머를 탐구한다.
Jayjay
Cross-Cultural Brand Strategist |
Policy and Theory of ART M.A., Bezalel Academy Art&Design Academy, Jerusalem
여러 시장을 오가며 한국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해왔다.
한국-미국-이스라엘-동남아 비즈니스 생태계를 오가며 브랜드의 미적 정체성과 크로스보더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는 브랜드 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