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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을 읽는 100가지 방법

35. 제인 오스틴에게 셰익스피어란?

by 제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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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은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좋아했다. 그의 희곡들을 여러번 읽고 암송할 정도였고, 가족들과 있는 자리에서도 셰익스피어를 함께 읽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녀가 보낸 편지들에도 셰익스피어 작품의 구절들을 인용한 부분이 있다. 『맨스필드 파크』에는 마치 셰익스피어 희곡에 대한 헌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여러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등장하고 등장 인물들은 그의 작품으로 연극을 올리기도 한다. 『헨리8세』 희곡 뿐만이 아니라 『한여름밤의 꿈』대사도 인용된다.


"아! 에클스퍼드 같은 극장과 무대 장치만 있었어도 뭔가 해볼 수 있을 텐데." 두 자매도 같은 소원을 피력했고, 세상의 쾌락이란 쾌락은 다 섭렵한 헨리 크로포드도 아직 이런 재미는 맛본 적인 없는지라 공연 이야기에 반색을 했다. "바보 같은 짓일지 몰라도." 하며 그가 말했다. "정말 지금 기분 같아선 여태까지 나온 어떤 인물이든 흔쾌히 맡을 수 있을 것 같군요. 샤일록이나 리차드3세부터 주홍색 외투를 입고 삼각 모자를 젖혀 쓴 소극의 노래하는 주인공까지 뭐든 상관없어요. 어떤 역이든 마다하지 않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183)


"나도 장담하지. 오히려 그 반대일걸. 우리 아버지만큼 젊은이들이 재능을 발휘하는 걸 좋아하고 장려한느 분도 없잖아. 연기나 낭독, 암송 같은 것을 언제나 아주 좋아하셨다고. 우리가 어렸을 때도 적극적으로 권장하셨잖아. 우리가 바로 이 방에서 아버지를 즐겁게 해 드리려고 줄리어스 시저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사느냐 죽느냐' 대사를 읊은게 한두 번이 아닌걸! 어느 해 크리스마스 휴가 때는 저녁마다 '내 이름은 노르발이었다.'를 암송하곤 했고."(188)


버트람 자매와 헨리 크로포드, 예이츠 씨는 비극 편이고, 톰 버트람은 희극 편인데, 사실 희극 편이 그 혼자만은 아니었다. 예의상 내놓고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메리 크로포드도 같은 쪽으로 기울어 있는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톰의 단호함과 힘 정도면 연합군 따위는 필요 없어 보였다. 게다다 이 타협 불가능한 대난제는 차치하고라도, 전체 등장 인물은 소수이되 하나같이 최고 수준이고 여성 주역도 셋이나 되는 작품이 필요했다. 명작이란 명작은 다 검토해 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햄릿』도 『멕베스』도 『오셀로』도 『더글라스』도 『도박박사』도 비극파조차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연적』,『추문의 학교』, 『운명의 수레바퀴』,『상속인 소송 사건』 등 수많은 작품이 더욱 열렬한 반대에 부딪혀 줄줄이 탈락했다. 어떤 작품을 들이 밀어도 싫다는 사람이 나왔고, 이쪽 아니면 저쪽에서 끝없이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했다. "아니, 그건 절대로 안돼.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는 비극은 하지 말자고, 등장인물도 너무 많고..."(194-195)


제인 오스틴 시대에 상류층 사람들은 자신의 교양과 문학적 감수성을 드러내기 위해 셰익스피어를 주로 읽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즐기는 방식은 연극 대사를 낭송한다든지, 역을 나누어 연기를 연습해 본다든지, 가족과 함께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문학을 통한 삶의 성찰이 일상에 스며드는 방식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와 연극에 지나친 열정을 가진 이들도 있었는데, 이것이 때로는 주변 사람들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맨스필드 파크』의 톰 버트람의 친구인 존 예이츠는 자신의 집도 아니면서 남의 집에 와서 연극을 하자고 부추기면서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극장 놀이(연극)에 지나치게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그의 행동은 세련된 모습이라기 보다는 허영심 많고 흐들갑스러우며 다소 경박한 모습이다.


예이츠 씨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것은 웨이머스를 떠난 후 많은 사람이 모여 놀기로 한 다른 친구 집으로 갔으나 그 모임이 갑자기 해산되는 바람에 그리된 것이었다. 그는 실망한 김에 얼른 맨스필드 파크로 왔고, 해산된 모임이 연극 모임이었던 까닭에 머릿 속에 온통 연극 생각 뿐이었다. 그도 그 연극에서 배역을 하나 맡았는데 공연을 이틀 앞두고 주인댁의 근친 한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되고 같이 공연하기로 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된 것이다. 행복과 명성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었는데, 콘월주 에클스퍼드에 있는 레이븐쇼 경의 시롤 저택에서 공연된 소인극을 칭찬하는 긴 신문 기사가 실리고, 그래서 모든 출연자들이 적어도 일 년 열두 달은 불후의 명성을 누리기 직적이었는데, 눈앞에 다가온 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예이츠 씨는 입만 열면 그 이야기만 했다. 에클스퍼드와 그곳에서 하려 한 연극, 무대 장치와 의상, 리허설과 주고받은 농담들 이야기로 입에 침이 마를 날이 없었으며, 그 경험을 자랑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180)


톰 버트람과 예이츠는 버트람씨의 집을 개조하면서까지 연극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여준다. 이는 버트람 경의 허락을 받지 않은 것이니 패니나 에드먼드에게는 매우 걱정되는 부분이다.


"그런 건 모두 매가 책임질 거다." 톰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버지 집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을 거고, 아버지 집을 간수하는 일에 내가 아무려면 너만큼 신경을 안 쓰겠냐. 내가 방금 말한 대로 조금 개조한다고 아버지도 뭐라 하시지는 않을 거야. 책장을 옮기고 문을 따 놓고 기껏해야 한 주쯤 당구실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걸 가지고 탓을 하실 리 없지. 차라리 왜 당신이 떠나시기 전에 비해 조찬실보다 이 방에서 더 많이 지냈느냐 아니면 이쪽에 있던 누이들의 피아노를 왜 저쪽으로 옮겼냐고 탓을 하실 거라고 말하지그래. 도무지 말이 안되잖아!"(189)


이 소설을 찬찬이 읽어보면 예이츠나 톰 버트람, 크로포드 남매가 셰익스피어나 연극을 즐기는 방식은 단순히 재미와 허영을 위해서다. 반면, 문학 작품을 다소 진정성있게, 고전적 취향을 가지고 존중하면서 읽는 인물은 패니 프라이스와 에드먼드 버트람이다. 패니는 소설 전반에 걸쳐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고,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학 작품을 정서적으로 진지하고 깊이있게 감상하는 인물이다. 연극 소동이 있었을 때도 셰익스피어와 연극 예술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패니는 여염집에서 올릴만한 연극 작품인지 찬찬히 살펴보면서 매우 놀란다. 마리아나 줄리아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욕만 있기에 작품에 대한 진지한 분석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혼자 남게 되자 그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탁자에 놓인 극본을 집어 들어 그동안 수없이 들었던 작품을 직접 읽어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호기심에 휩싸인 채 열심히 읽어 내려갔지만, 중간중간 놀라며 잠시 읽기를 멈추곤 했다. 이런 때 이런 작품을 고르다니, 여염집 무대에 이런 작품을 올릴 생각을 하고 또 다들 좋다고 하다니! 그녀가 보기에 애거사와 어밀리아는 서로 이유는 다르지만 여염집에서 연기하기에는 너무나 부적절했다. 애거사는 처한 상황이, 그리고 어밀리아는 하는 대사가 얌전한 여성이 연기할 만한 인물이 전혀 아니었으니, 사촌 언니들이 이를 뻔히 알면서도 자청했다고는 차마 믿을 수 없었다. 에드먼드가 알면 틀림없이 야단을 칠 텐데, 그렇게 해서라도 언니들이 하루빨리 정신을 차리기를 패니는 간절히 바랐다. (203)


결국 제인오스틴이 이 소설에서 셰익스피어 작품들과 연극 상연 등의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작품을 제대로 보는 눈,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시와 허영을 위해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태도와 문학적 감수성, 교양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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