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에드워드와 윌러비를 통해서 본 젠틀맨에 대하여
영국사회에서 젠틀맨(gentleman)은 지주 계급(gentry)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공작이나 백작 등의 귀족보다는 아래지만 농민이나 상인보다는 위인 상류 중산층 계급이다. 젠트리 계급은 땅을 소유하며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않는 남자들이었다. 스스로 일하지 않아도 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사는 사람들을 진정한 젠틀맨이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씨는 펨벌리의 아름답고 광활한 영지를 가지고 있어서 젠트리 계급에 속했다. 가문에서 상당한 부를 물려받은 젠틀맨이었다. 반면 그의 친구 빙리 씨는 새롭게 부를 얻은 신흥 부자의 젠틀맨이라 할 수 있다.
젠틀맨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입이 필요했다. 다아시 씨는 『오만과 편견』에서 연 수입 1만 파운드를 가진 매우 부유한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젠틀맨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상업이나 군인, 변호사 등의 직업을 가진 부유한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의 신분은 조금 낮게 여겨졌다. 갑자기 많은 돈을 벌어도 하루 아침에 교양까지 겸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마치 오늘날에도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전통 부자에 비해서 갑자기 벼락 부자가 된 이들을 조금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는 것도 비슷하다 할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소설에서 젠틀맨에게 중요한 것은 교육과 교양이라는 것을 강조해 보여준다. 단지 돈만 많다고 해서 젠틀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전 교육과 예의범절을 두루 갖춰야 하는 것이다. 고전문학, 역사, 수학, 예술 감심력, 복장, 춤, 식사 예절, 사교술 등 모든 것이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다아시 씨를 매우 오만한 사람으로 여기지만, 그가 가진 교양과 품격을 알아보면서 그가 진정한 젠틀맨임을 깨닫게 된다. 제인 오스틴은 무엇보다 정직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책임감 있는 사람, 그리고 도덕적 품위가 있어야 진정한 젠틀맨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 그럼『이성과 감성』에서 에드워드 페라스와 윌러비를 비교해 보면서 누가 진정한 젠틀맨이고 왜 어떤 이는 젠틀맨이 될 수 없는 것인지 자세히 알아보자.
메리언이 한눈에 반한 윌러비는 바튼 코티지에서 그녀를 보살피고 그녀의 가족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호감을 얻게 된다. 잘생긴 외모에 메리언에 대한 지극 정성, 그리고 그가 가진 재산 등은 누가 봐도 이들이 꼭 결혼할 것임을 예측한다. 이웃들의 신변잡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수다를 떠는 제닝스 부인에게도 이 커플은 매일매일 이야기거리가 되주고 있다. 그러나 윌러비의 정체가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그는 일말의 도덕적 관념이 없은 파렴치하고 비열한 인간임이 드러난다. 사실 이 일들이 드러나기 전에 엘리너는 윌러비가 진정한 젠틀맨이 아님을 암시하는 일들을 겪게 되고, 이것은 마치 소설 중후반부에 일어날 엄청난 일들의 복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독자들은 하게 된다. 다음에서 알 수 있듯이, 윌러비는 메리언과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이 있어도 전혀 감정을 절제하거나 자제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엘리너가 보기에 이 행동은 이성을 버린 행동으로 여겨졌다.
엘리너에게는 그들의 사랑이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바람이 있다면 너무 터놓고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정도였다. 한두 번은 메리앤더러 좀 자제하는 것이 어떠냐고 넌지시 말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메리앤은 하늘을 우러러 거리낄 것이 없는데 뭘 숨기느냐고 싫어했고, 나무랄 일이 전혀 아닌 그런 감정을 절제하려고 하는 것은 불필요한 노력일 뿐 아니라 상투적이고 그릇된 생각에 이성을 종속시키는 수치스러운 짓으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윌러비도 똑같이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늘 그들의 행동에 반영되었다. (74)
그리고 윌러비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바튼을 떠나야 할 때도 자신의 사정을 미리 알려주거나 근황을 알려주지도 않고 아무 말없이 떠나버린다.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이다.
"우리 윌러비가 지금은 바턴에서 몇 마일은 갔겠지. 엘리너." 뜨개질거리를 잡고 앉으면서 그녀가 말했다. "가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무거울까?"
"정말 모든게 이상해요.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버리다니!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인 것만 같아요. 어젯밤에 우리하고 있었을 때, 그렇게 행복하고 즐겁고 다정했잖아요? 그런데 겨우 십 분 통지를 하고선... 돌아올 기약도 없이 가버리다니! 우리한테 털어놓지 못한 무슨 다른 일이 일어난게 틀림 없어요."(104)
윌러비의 실체는 브랜드 대령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데, 제인 오스틴 소설에서 최악의 남자 주인공이라 할 만큼 그의 행동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것들이었다. 바람둥이 기질을 가진 윌러비는 순결한 소녀를 농락하고 비참한 상태로 버려둔 것이다. 도덕관념이 부재한 데다 그는 돈에 대한 집착도 강해서, 결국에는 메리언을 버리고 부유한 여성인 그레이 부인과 결혼을 한다.
"...그 사람은 어리고 순결한 한 소녀를 농락하고는 극도로 비참한 상태로 그대로 버려둔 것이지요. 마땅하게 갈 곳도 없고, 도움을 받을 데도 없고, 친구도 없고, 자기의 연락처도 없는 상태로 말입니다! 돌아온다는 약속을 남기긴 했다더군요. 그렇지만 돌아오지도 않았고 편지도 주지 않았고 구해 주지도 않았어요."(275)
반면 에드워드 페라스는 윌러비와 정반대로 도적적 관념도 강하고, 그의 인생에 돈이 중요한 요소도 아니었다. 사실 그가 원하기만 하면, 그의 어머니가 유언만 내리면 큰 재산을 물려받을 수도 있었다. 만약 윌러비처럼 돈이 중요했다면 그는 엘리너에게 관심을 표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루시스틸과 약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에드워드 페라스는 부유한 상류층 집안 출신으로서 "많은 재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사람의 맏아들"로 묘사되어 있다. 엘리너와 대시우드 부인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매우 조용하고 정직하고 겸손해서 그를 더 알게 되면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에드워드 페라스는 외모나 말솜씨가 특별히 빼어나서 이들의 호감을 샀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미남이 아니었고 매너도 친한 사이에서나 붙임성이 있었다. 그는 너무 소심한 나머지 자기 표현을 제대로 못했다. 그러나 일단 수줍음이 극복되면, 그의 몸가짐에서는 허물없는 다정한 마음씨가 묻어 나왔다. 워낙 이해력이 뛰어난데다 교육으로 더 단단해졌다. 그러나 그는 자기 어머니와 누나의 소망에 부응할 만한 능력도 기질도 갖추지 못했는데, 이들은 딱히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하여간 그가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서 우러러보는 인물이 되기를 원했다. ...에드워드는 거물들이나 쌍두 사륜마차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가정적인 안락과 사생활의 평온만이 그가 바라는 전부였다.
...
"그분(에드워드)에 대해서 더 알게 되시면," 하고 엘리너가 말했다. "어머니도 좋아하실 거에요."
"좋아하다니!"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랑에서 한치도 물러서고 싶지 않다."
"그분을 존중하게 될지도 몰라요."
"존중과 사랑이 어떻게 구별되는지 여태 몰랐네."(25-27)
에드워드 페라스는 엘리너에게 자신의 지난 과오와 실수를 고백하고 자신의 약점도 인정하는 면모를 보인다.
그는 이제 자기의 마음을 엘리너에게 다 털어놓았다. 온갖 약점들과 온갖 실수들을 고백하였고, 소년 시절 루시한테 처음 연정을 느낀 것에 대해 스물넷다운 의젓한 태도로 이야기하였다.
"저로선 어리석고, 하릴없는 끌림이었습니다." 하고 그가 말했다. "세상을 너무 몰랐던 탓이었고, 할 일이 없었던 까닭이었지요. 열여덟에 프랫 씨의 보호에서 벗어났을 때에 제 모친이 제게 무언가 할 만한 일거리를 주셨더라면, 제 생각입니다만, 아니 확신합니다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480)
무엇보다 젠틀맨으로서 지녀야 하는 핵심 소양은 도덕적 품위와 진실성이다. 비록 돈도 없고 사회적 성공은 없지만 에드워드는 끝까지 도덕적 책임을 지고자 한다. 그가 루시 스틸과의 어리석은 약혼을 지키려 한 것은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더라도 도덕적 책임을 지고자 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가 재산을 물려받지 못할 것을 알자, 바로 그를 버리고 로버트 페라스와 결혼하는 루시 스틸과 비교하면 그의 도덕성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고, 그에게서 젠틀맨으로서의 신사다운 성숙함을 발견하게 된다.
제인 오스틴은 이 소설에서 교양과 매너만으로는 진정한 젠틀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윌러비는 주변 사람들에게 교양과 매너를 갖춘 인물로 보엿지만 도덕적 결함때문에 완전히 무너지 인물이다. 반면, 에드워드 페라스는 조용하고 평범하지만 끝까지 도덕적 책임을 지고자 하고,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뛰어난 진정한 신사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