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주도권은 소비자가 가지고 있다
지난 주말, 코로나가 끝난 것처럼 인파가 많다는, 마치 놀이동산을 연상시킨다는, 더 현대 서울에 부랴부랴 다녀왔다. 필로스토리에서는 지난 2018년부터 현대백화점 내부적으로 다양한 스토리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지난 2020년에는 현대백화점 리포지셔닝 프로젝트의 마무리 랩업 작업을 한지라 더욱 궁금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놀랐다. 그리고 기대 이상이었다. 더 현대 서울 곳곳을 둘러보며 마치 도쿄 긴자의 한 몰에 있는 듯한, 홍콩의 F&B 음식점과 미국의 숍을 구경하는 느낌이 들었다. 더 현대 서울의 가장 꼭대기 층 'Sounds Forest'에서는 파리의 라빠예뜨 백화점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거대한 몰 아니 무려 한국의 백화점에서 여행하는 기분이 들다니.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웠다.
2020년 현대백화점 리포셔닝 프로젝트는 바이브 컴퍼니(전 다음 소프트)와의 협업이었다. 그 프로젝트를 하며 바이브 컴퍼니 이사님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이브 컴퍼니는 끊임없이 사회 전반적으로 쌓인 빅데이터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그야말로 ‘의미 있는 의미’를 찾는 작업을 한다. 그들이 분석한 의미를 그들의 언어로 직접 듣는다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로웠고 그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이 '소비 패턴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제 가치소비에서
의미소비로 변화하고 있어요.
이 두 가지가 비슷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명백히 다르다. 가치소비는 세상 모두가 옳다고 말하는 가치에 대한 소비이고, 의미소비는 이것이 개인의 맥락으로 치환된다. 개인이 자신에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는 것에 소비를 하는 것이다. 이 소비의 패턴을 보면 사회적인 의미 구조가 '우리'에서 '나'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 많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실제로 데이터를 통해 이런 현상에 증명된다는 것이 재미있었고 그 데이터와 의미를 바탕으로 거대 유통의 씬이 새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밀레니얼 세대가 소비의 중심 역할을 하는 연령대가 되고 이제 모두가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있다.
백화점은 유통의 최전선이다. 유통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러한 소비 패턴의 변화를 몸으로 체득할 것이다. 이제 할인행사라든지 클리어 세일이라든지 하는 가격 경쟁으로는 사람들을 오프라인으로 불러 모을 수 없다. 스마트한 소비자는 이제 온라인에서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매력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으로 모이고 있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더더욱 사람들을 오프라인 공간으로 '나오게'하기 위한 강력한 이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 브랜드 컨설팅 펌 더 워터멜론의 우승우 차상우 대표님이 늘 말하는 것. (실제 이 주제를 바탕으로 2019년에는 라이프 브랜드 컨퍼런스를 열기도 했다.) 우리는 이것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소비의 패턴이 유통의 씬을,브랜드의 씬을 바꿔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의 중심으로 다가온 밀레니얼 세대는 어떤 의미를 입고 먹고 마시는가. SNS가 우리의 일상에 들어오고 침투하며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이제 누구나 가는 공간보다는 남들과 다른 '한 끗' 그러니까 SNS에 올릴 '이야깃거리'가 있는 공간을 찾아간다. 사람들은 이제 '핫한 것(누구나 가고 누구나 아는 것)' 보다도 '힙한 것(누구나 가지 않지만 자기만의 멋이 있는 것)'을 선호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 제품이 얼마나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는가 따져보지 않는다. 기술이 진보하고 이제 대부분의 제품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자리를 꿋꿋하게 지켜오며 만들어온 장인의 마음,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밤낮으로 논밭에서 시간을 보내는 농부의 철학처럼 하나의 물건이 나에게 오기 전까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궁금해한다. 이 마음과 철학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이들의 노고에 박수쳐주고 싶은 마음을 소비로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의미소비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소비할 때, 실제 물건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의미를) 살펴본다. 스토리가 소비의 주요한 요인이 된 것이다.
현대백화점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늘상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백화점이다. 실제 ‘문화 백화점’이라는 언어 아래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판교점이나 남양주 현대 프리미엄 아울렛의 모카 미술관은 그냥 등장한 것이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백화점에 와서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롭게 거닐며 문화를 즐기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번에 진행한 2020 리포지셔닝 프로젝트에서 필로스토리는 이제 백화점이 ‘100가지 물건’이 아닌 ‘100가지 이야기를 제안하는 곳’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백'화(물건)'점(百貨店)에서
백'화(이야기)'점(百話店)으로
100가지 이야기, 100가지 라이프 스타일. 더 현대 서울은 현대백화점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공용 면적의 30% 이상을 유휴 공간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부동산 임대업’으로 분류되는 백화점에게 공간은 곧 돈이기 때문이다. 더 현대 서울이 기존의 백화점과 다르다고 느낀 지점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새로운 언어로 새로운 의미를 제안하다
더 현대 서울의 기존 백화점과 가장 차별화된 점은 ‘언어’이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고한다. 언어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짓고 언어를 통해 관계 맺는다. 더 현대 서울은 기존의 백화점에 층별 사용하던 언어를 탈피하고 새로운 MD 그룹핑과 새로운 언어로 층별 라이프 스타일을 재정의하고 그 의미를 제안한다. 내가 ‘Floor Guide’를 보며 내내 감탄한 이유다. 현대백화점이라는 거대 유통 씬에서 기존에 하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더 박수쳐주고 싶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
일단 더 현대 서울을 방문한다면 가장 먼저 위층으로 올라가 내려오면서 구경하길 권한다. 5층으로 올라간 순간, 하늘이 보이며 마치 놀이동산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왜 놀이동산 같을까? 물론 줄 서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모습도 그렇지만 새로운 백화점의 경험이라는 ‘설렘’이라는 감정과 가까이에 ‘자연’이 있다는 환경적 요인이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 현대 서울 5층은 ‘Sounds Forest’다. 5층은 카페와 공원처럼 쉴 수 있는 공간이 대부분이다. 실내지만 마치 외부 정원에 있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고 곳곳에서 들여오는 새소리와 물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실제 공중정원과 커다란 분수가 5층부터 1층까지 쭉 설치되어 있다.
이제 사람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삶 대신 나에게 집중하는 삶을 택했다. 세상이 원하는, 누군가에게 멋져 보이는 삶보다 개인의 행복을 찾기로 결정한 듯, 많은 이들이 누군가의 롤모델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길 바란다. 바쁜 도시인들 그리고 밀레니얼 세대는 월급의 많은 부분을 지금,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경험인 여행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자연과 함께하는 캠핑과 등산을 즐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이 거대 유통 씬에서 제대로 드러난 사례가 더 현대 서울의 ‘Sounds Forest’라고 생각한다.
꽤 오래전 여름, 압구정 하늘정원에서 참새를 쫒던 아이들의 모습을 한가롭게 바라보던 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렇다. 기존 현대백화점은 ‘하늘정원’이라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 이미 가지고 있던 ‘하늘정원’을 더 현대 서울에서는 더욱 세련된 공원 문화로 재해석한 듯하다. 멀리서 보는 내내 파리의 공원들이 떠 올랐다. 물론 지금은 거기에 앉으려면 엄청난 기다림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돔 모양의 커다란 아치형 구조물을 보면 파리의 라빠예뜨 백화점이 생각나기도 한다.
더 현대 서울에 다녀온 사람들이 가장 재미있다고 말하는 층은 단연 지하 1층과 지하 2층이다. 특히 지하 2층 Creative Ground는 특히 MZ세대를 겨냥하여 아예 한층을 모두 매력적인 브랜드로 MD구성을 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드는 MZ세대의 개성과남다른 취향을 만족시킬
패션, F&B, 컬처 브랜드로 가득한 크리에이티브 공간
실제 우리들(이라고 쓰고 나라고 읽는다)이 열광하는 매거진 B의 편집숍이나 아시아 최초로 입점했다는 H&M 그룹의 프리미엄 브랜드 아르켓, 어른을 위한 문구숍 포인트 오브 뷰, 나이스웨더까지 장르불문 다양한 브랜드가 나란히 있다. 이곳에 가면 그야말로 눈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이것저것 뜯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주변에 스몰 브랜드나 신생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백화점이 그 브랜드에 꼭 그렇게 좋은 구조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브랜드를 입점시키는 구조를 만든 더 현대 서울 MD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구조를 새롭게 제안했거나 설득을 잘했거나 둘 중 하나겠지만 개인적으로 진심으로 응원하는 브랜드들, 오랫동안 함께했으면 좋겠는 브랜드들이 거대 유통씬과 상생하며 오래오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넓게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한다.
문센이 아니라 ‘컬처 하우스’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센터’를 이곳에서는 ‘컬처 하우스1985’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제안한다. 물론 이름만 바뀐 것은 아니다. 기존에 강의실 같았던 문화센터 공간이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컬처 하우스 공간으로 변화했다.
지금 밀레니얼 세대가 만들어가고 있는 ‘커뮤니티 문화’가 이곳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실제 취향관이나 트레바리, 넷플연가, Be my B, 내가 운영하고 있는 기록상점까지 우리는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새로운 ‘만남’을 기반으로 대화 그리고 커뮤니티 문화에 열광한다.
자신만의 브랜드로 새로운 살롱 문화를 만들어오고 있는 박지호 대표(전 아레나 편집장)님의 ‘심야살롱’이 이미 예약을 시작했고 거의 하루 만에 마감되었다. 더 현대 서울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심야살롱은 동양의 미를 가장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양태오 디자이너와 함께한다.
아마존의 테크 기술 사용화
마지막으로 가장 신기했고 재미있었던 언커먼스토어를 소개하고 싶다. 언커먼스토어는 아마존고의 기술을 현대백화점에서 상용화시킨 자체적인 브랜드로 입장하여 원하는 물건을 가지고 나오면 자동적으로 결제되는 시스템의 상점이다.
늘 뉴스로만 접하던 아마존고를 더 현대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언커먼스토어 안에는 수많은 카메라와 센서가 있다. 각각의 매대에는 무게를 재는 저울이 있고 실제 이 무게를 통해 어떤 물건을 구매했는지 기계가 감지한다. 재미있는 것이 물건을 집어 누군가에게 건네주는 행위가 이 안에서는 금지되는데, 마지막으로 들고 나온 사람이 아니라 처음 물건을 집은 사람에게 결제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 사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직접 집는 것으로. 아직은 작은 사이즈였지만 가장 신박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파리에 간다’라고 하지 ‘프랑스에 간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도쿄나 오사카에 가자’라고 말하지 뭉뚱그려 ‘일본에 가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Newyork, LA 그리고 Proto. 모두 시티 브랜딩이 잘 되어 있는 곳이다.
한국도 이제 국가 브랜딩 보다 시티 브랜딩을 바라봐야 한다. 실제로 ‘서울 Seoul’은 전 세계적으로 패션과 F&B 그리고 문화 면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로 한 밀레니얼 세대의 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과거 오렌지족의 역사를 지나 지금 우리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우리의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뜯어보며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지역의 다양한 문화가 파생되는 ‘로컬 문화’와도 연결된다.
이런 면에서 ‘더 현대 서울’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를 다시 바라본다. 일단 ‘백화점’이라는 프리미엄하지만 고루한 이미지를 떼어내고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붙였다. 서울의 마지막 백화점이라는 슬로건에서 실제 이 공간을 만든 사람들의 자부심마저 엿보인다.
이러한 자부심은 지하 1층 F&B Tasty Seoul에서도 느낄 수 있다. 이 이름만으로도 이 곳에 가면 ‘서울을 맛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단순히 한국 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고 글로벌적인 시선으로 다가갔지에 가능한 네이밍이다. 코로나가 끝나면 전 세계에서 하나의 랜드마크 관광지로서 그 역학을 톡톡히 하길 기대해본다.
사실 이번 더 현대 서울을 보며 이상하리만큼 기분 좋은 희망을 보았다. 거대 유통과 스몰 브랜드의 공존, 로컬 문화의 더욱 단단한 성장, 자연과 공존하는 삶, 새로운 테크의 진보까지. 내가 본 희망은 나의 작은 소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소비자가 있다는 믿음이다.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돈'이라는 실체를 통해 세상에 드러난다. 우리가 좋아한다면 캠페인처럼 말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기꺼이 좋아하는 것에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5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만의 문화를 쌓아온 현대백화점이 밀레니얼 소비자의 니즈와 만나 가장 매력적인 공간을 서울에 탄생시켰다. 물론 아직 아쉬운 부분도 있을 테지만 나는 이 공간을 통해 유통의 미래를 보았다. 소비자가 이끌어갈 유통의 미래. 지금, 우리가 입고 먹고 마시는 것들이 결국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라는 미래이다.
글 | 필로스토리 채자영
2021년 3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