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T발 놈의 반성 일기
우리는 '왜'라고 묻는다. 그리고 '왜냐하면'이라고 답한다. 이 과정을 진실을 확인하는 행위라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찰스 틸리의 <왜의 쓸모>는 그 믿음을 순진하다고 말한다. 책에 따르면, '이유 대기'는 진실을 전달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관계를 설정하는 사회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가 내놓는 이유는 객관적 사실보다 누구에게 말하는지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유 대기에는 총 네 가지 방식이 있는데, 이는 각각 '관습(Conventions)', '이야기(Stories)', '코드(Codes), '학술적 논고(Technical Accounts)'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관습은 약속시간에 늦었을 때 '차가 막혀서 늦었습니다'와 같이 공적 관계에서 사용하는 사회적 답변이다. 이는 갈등을 회피하고 관계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윤활유다. 반면 이야기는 'A가 B해서 C하게 되었어'처럼 친밀한 관계에서 사용된다. 구체적인 인과를 해명함으로써 관계를 복구하거나 구축하는 게 목적이다.
코드와 학술적 논고는 상하관계나 전문가와 비전문가 같은 비대칭적 상황에서 작동한다. 코드는 의사나 변호사가 전문 자격과 규칙을 바탕으로 권위를 확립하고 판단하는 방식이다. 학술적 논고도 전문가가 사용하는 건 마찬가지지만, 전자에 비해 논리적인 인과관계에 기반해 객관적으로 정당화할 때 사용된다는 점이 다르다.
이유의 제시는 사회적 활동이며,
사회적 상황에 따라
타당한 이유가 달라진다
이 책은 이유가 진실을 담보해야 한다는 우리 강박을 뒤흔든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이유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리려 한다. 가령 동료가 '차가 막혔다'는 이유를 댔을 때,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식이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이는 무의미한 행동이다. 틸리의 관점에서 그 말의 진짜 목적은 이유가 아니라 당신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즉,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 아니라 적절성이다. 주어진 관계에 맞는 이유를 선택하는 게 핵심이라는 거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어려움을 토로하는 친구에게 '사람은 다 힘들어' 같은 의미 없는 위로를 하고, 전문가에게는 '제가 인터넷에서 찾아봤는데요' 답답한 소리를 하게 된다.
자, 이제 우리는 이유를 다르게 볼 수 있다. 누군가 당신에게 관습적인 이유를 댄다면, 그 사람은 당신과 관계를 현상 유지하는 게 목적이다. 반면 이야기를 건넨다면, 그는 당신과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전시키고 싶은 거다. 즉, 상대방의 이유는 그 사람의 생각을 보여주는 분명한 신호 중 하나인 셈이다.
책을 마무리하며 스스로 이유를 대하는 방식을 되돌아봤다. 솔직히 말해 영 엉망이었다. 일할 때 한정으로는 소위 T발 놈'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유를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뿐, 그것이 어떤 관계를 설정하려는 신호인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어쩌면 조금은 더 가볍게 대할 수 있진 않았을지 문득 반성하게 된다.
이유는 자기표현을 성립시키지만,
언제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