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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Oct 06. 2020

아로니아 와인 맛이 어때요?

처음 담근 아로니아 와인

작년 가을에 수확한 아로니아를 쌓아놓고 고민을 했다. 저 많은 아로니아로 무엇을 하지? 공급 과잉이라는 아로니아를 작년에도 캐어버렸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나무에서 수확한 양이 제법 되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아로니아 식초 만들기'였다. 식초라면 오래 숙성이 될수록 더 맛이 깊어지는 법이니 (가격도 덩달아 비싸지고), 일단 아로니아 식초를 만들어놓기만 하면 판로를 고민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큼직한 통을 8개나 구입하였고 정성을 들여 아로니아 와인을 담갔다. 식초를 만드는 과정은 먼저 으깬 아로니아로 와인을 만들고 (알코올 발효), 만들어진 와인을 다시 식초로 변환시켜야 한다 (초산 발효). 아로니아는 발효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므로 이번에는 특별히 와인 제조용 효모도 구입하여 넣어주었다.


남들은 와인을 담근 지 2주만 지나면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 술 냄새가 난다고 하던데, 내가 만든 와인 대부분에서는 시간이 지나도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때만 해도 와인 제조는 실패했는 줄 알았다. 그래서 효모균을 더 넣어주고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만들어 놓은 양도 많았으니 그냥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대충 갈아놓은 아로니아에 효모를 넣어주었다. 흰 거품 같은 것이 와인 제조용 효모균이다.

시간이 약이라고 2주가 아닌 3개월이 지나자 술 냄새가 솔솔 나기 시작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환경 (특히 온도)에 따라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는 시간에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그때에도 아로니아 와인은 무늬만 술인 것 같았고 별 맛도 없었다. 


남들은 와인 제조까지는 쉽다고 하던데 나는 첫 단계에서부터 삐꺽거렸으니 그 어렵다는 두 번째 단계 (식초 제조)로는 아예 넘어가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작년에 만든 아로니아 와인은 저장고에 남겨진 채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얼마 전 손님이 찾아오셨고, 대화를 나누던 중에 아로니아 와인 이야기가 나왔다. 문득 작년에 담근 아로니아 와인 생각이 났다. 그래서 와인 맛이 어떨지 평가를 받아보기로 했다.     

     

한 평생 술독에 빠져 사셨고 (현재도 진행 중임), 술이라면 지금도 한가락하신다는 분의 평가다. '단맛도 전혀 없고, 깔끔하고, 약간 드라이한 게 고급 와인 마시는 느낌'이라고 하신다. 와인 맛을 잘 모르는 나는 그냥 '고급 와인 맛'이라는 좋은 평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선물용으로 만들어 본 아로니아 와인. 멋진 상표도 없고 플라스틱 병에 담긴 아로니아 와인이지만 맛은 좋다고 하신다.

그런데 문제는 밥보다 술을 더 좋아하시는 분의 평가니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도 세 차례나 다른 애주가분들께 시음을 부탁드렸는데, 다들 평가가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와인 만들어서 팔아도 될 것 같다'라고까지 말씀을 해 주시니 단순히 와인 얻어먹겠다고 하시는 말씀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한 것이, 남들이 그렇게 말을 해주니 와인 맛을 모르는 내가 맛을 봐도 정말 괜찮은 와인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올해 추석에는 몇몇 지인들에게 내가 만든 아로니아 와인을 선물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무슨 결정을 하려면 아내와 수 차례 대화를 하며 절충안을 찾는다. 예전 같으면 내 마음대로 결정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올해도 수확한 아로니아가 아직도 저온 저장고에 남아 있는데, 그 아로니아로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해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아로니아의 시음 평가를 듣고서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아내와 단 한 번에 의견 일치를 봤다.     

     

"남은 아로니아 몽땅 다 와인이나 담그자!"  "좋지!"     

     

아무래도 우리 집 사과 과수원은 접고 아로니아 와인이나 만들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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