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작가 1달 후기
나의 '찍먹' 도전기 본격적인 스토리는 브런치 작가 신청 이야기로 열까 한다. 아무래도 이곳에 터를 잡고 한 달여간 이십여 편의 글을 올렸으니, 브런치에 대한 감상과 생각을 남겨두고 싶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한 달이 되었다. 여행이나 음식 고르기 같은 건 완전 즉흥파인데, 일이나 그림 작업하는 데 있어서는 슈퍼 J 성향(계획파)인 내가 완전 즉흥적으로 질러본 게 있으니, 바로 브런치 작가 신청! 내가 주장하는 "일단 해보고 아니면 말고!"의 실천적 예시랄까?
오래전부터 '브런치 작가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이 매 계절마다 살랑살랑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브런치 해보라고 권유하는 측근도 꽤 있었다.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늘 밀렸고 시간은 신나게 흘러갔다. 사실 지난겨울 스키시즌에 신청하려 했다. 다른 때보다 여유가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지. 하지만 웬걸? 막상 시즌 되니 나는 용평이다, 하이원이다 정신없이 스키 타러 다니느라 더 바빴고 작업하랴, 공부하랴, 일하랴, 전혀 짬이 나지 않더라.
게다가 나 같은 완벽주의자는 뭐 하나 하려면 기획하고 덤비는 스타일이라, 브런치 작가에 도전하려면 관련 팁이나 정보도 찾아보고 작가 소개 초고도 쓰고 이것저것 다 갖추고 신청할 것이 분명했다. (그 말인즉슨 그만큼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단 말.) 하지만 나는 늘 바빴고 잠이 부족했다. 내게 '아주 한가한 때'란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딱 한 달 전 나는 새벽에 컴퓨터를 켜고 급한 볼일을 처리했는데, 끝내고 윈도우 창 닫고 로그오프 누르기 일보 직전 '컴퓨터도 켰겠다. 브런치 한번 신청해 봐?'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신의 계시일지도?) 귀찮음과 호기심이 비슷한 밀도로 번갈아 올라왔고 1분 정도 고민하며 모니터를 노려봤다.
그래. 각 잡고 준비하다 언제 신청하냐?
그냥 되는대로 질러!
라고 생각하며 내 게으른 관성이 발목을 잡아 끄기 전에 다다닥 키보드를 두드렸다. 간단하게 소개도 올리고 프로필 사진도 하나 걸어놨다. 여기저기 살펴보니 <작가 신청란>이 보였다. 클릭했다. 질문들에 하나하나 답을 적었다. 쓰고 싶은 글 성격이나 주제가 비교적 명료했던 나는 떠오르는 대로 썼다. 이어서 글 링크를 첨부하란 주문도 나왔다. 온라인상 올라와있는 내 글 하나와 출판물 링크도 걸었다. "끝!" 그렇게 신청을 완료하고 빛의 속도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마음의 짐을 치운 듯 홀가분하고 후련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던 찰나, '브런치 작가 관련 영상 한번 찾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방 침대에 모로 누워 폰 불빛 때문에 가는 눈을 하고 유튜브에 키워드를 입력했다. 브런치 작가 신청에 대한 영상이 떴고 클릭!
5분쯤 지나고 나는 외쳤다. '오 마이갓! 서랍글 첨부! 나 그거 안 했는데?' <내 서랍>이라는 곳에 글을 세 편정도 넣어놓고 첨부해야 하는데 안 했더라. 다시 벌떡 일어나 PC를 켜고 접속! 다른 글 두어 편을 부랴부랴 추가했다. 미리 정보 찾아보고 신청할걸 약간 후회가 들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것.
이틀이 지나고, 새벽에 내 그림 넣은 명함 직접 디자인해 만든다고 캔바 붙들고 지지고 볶고 씨름했다. 예쁜 디자인 만든다고 생쇼 하며 밤을 꼴딱 새우고 컴퓨터를 닫으려다 브런치가 떠올라 앱에 접속했다. 어? 며칠 전에 본 내 프로필 세팅과 미묘하게 다른데? <작가 소개란>이 생겨있었고 키워드 선택란들이 떠있었다. 순간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바로 이메일 확인을 했다. 한 십분 전 이런 메일이 와있더라.
조사해 보니 재수는 기본이고 심하게는 10수 생도 있다던데, 한 번에 덜컥 합격이라니! '꺄! 올해 초부터 운이 억수로 좋은데?'라고 생각했다.
합격 이후 몇 개의 정보를 더 찾아보니, 카카오 브런치는 자기만의 뾰족한 기획력을 갖고 꾸준히 연재할 작가를 찾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컨셉을 갖고 한 권의 책처럼 맥락 있게 이어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작가를 선발하는 것 같았다.
브런치작가가 된 지 대략 한 달이 지났고, 그간 21편의 글을 발행했더라. 매일은 아니지만 나름 꾸준히 포스팅 흐름을 이어가려 노력한 것 같다.
브런치를 경험해 보니 내가 선호하는 롱폼(?) 글쓰기가 가능해서 좋았다. 스레드가 처음 나왔을 때 글쓰기 플랫폼이라는 광고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짧은 신변잡기식 글쓰기와 소통공간에 가까웠다. 물론 그 나름의 재미와 매력이 있다. 깊이 있고 긴 글을 쓸라치면 매번 글자 제한이 목에 가시처럼 턱턱 걸렸고, 글을 토막토막내서 올리는 것도 노동에 가까워서 스레드에 각 잡고 글을 쓰는 건 일치감치 포기한 터였다.
하지만 이곳 브런치는,
글쓰기 플랫폼으로써 내가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이 구비된 장소였다.
그래서 브런치에 대한 전반적 생각과 이곳 분위기, 그리고 브런치작가의 장점을 한 번 정리해 본다.
1. 다른 SNS 운영 경험을 통해 기록의 가치를 체감했기에
가끔 생각한다. 글, 사진,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내 삶은 희미한 기억으로만 존재했겠구나라고.
'기록하는 것이 기억하는 것이다'
라는 문구는 진실이었다.
2. I needed a creative outlet! 창의적인 탈출구가 필요해!
고만고만한 일상 속에서 내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창의적인 배출구를 갖기 원했다. 자유롭게 멋대로 짓고 허물었다 또 지을 수도 있는 나만의 온라인상 집을 소유하고 싶었다.
3. 환경을 세팅해서 내 글쓰기 근육을 키우고 싶었다
글쓰기를 일상 속 루틴으로 세팅하지 않으면 규칙적으로 정돈된 글을 쓰는 일은 요원해진다. 한 자라도 더 쓸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나를 강제하고 싶었다. (환경 세팅의 중요성!)
4. 관찰력을 기르고 싶었다
공기 중으로 산란해 사라지는 경험과 생각을 활자로 붙들어 두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심코 흘려버리던 주변을 세세히 관찰하고 뜯어보는 시선을 장착해야 했다. 마음이 동할 때 채워가는 매거진이나 날짜를 정해 연재하는 브런치북은, 나 자신과 일상을 좀 더 밀도 있게 들여다보게 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5. 나중에 출판을 위한 원고 저장소이자 글 포트폴리오로 기능할 수 있을 거란 생각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자료가 있다는 건 매우 편리한 일이다. 무엇보다 브런치가 좋은 점은 퇴고하기가 매우 용이하단 점. 나는 퇴고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번역가 활동하기 전 번역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으며 다양한 글을 쓸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여러 번 퇴고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브런치 플랫폼은 시간차를 두고 퇴고하기 좋은 시스템을 갖고 있다.
1. 자기 효능감과 성장하고 쌓아가는 자부심
여기에 남기는 기록은, 자체로 나에 대한 성찰의 기록이다. 내 성장 지표를 남기는 일. 매일 글을 올리진 못하지만 1주일에 최소 2번은 연재하려 노력하고 있다. 기록이 축적되는 것을 볼 때 자부심과 뿌듯함이 생긴다.
일명 "Small Wins" (작은 성공의 체험들)을 쌓아가는 느낌
브런치에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정기적으로 연재하는 일은, 곧 '또 하나의 내 세계를 만드는 일!'.
세상에 내 존재를 언어로 박제하고, 내 언어와 타인의 언어가 자유롭게 흘러 다니게 허락하는 멋진 일이다. 글쓰기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폐쇄적인 경험'이다. 실뭉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고 추상적으로 난립해 있는 사고를 정갈하게 묶고 정리해 주는 고마운 작업.
내 생각과 감정에 적절한 단어나 이름을 붙여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명료해진다. 그리고 나를 찍어 누르는 두려움이나 걱정도, 다룰 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줄어든다.
2. 확실한 글쓰기 훈련
긴 말이 필요 있나? 연재하려면 채워야 한다. 뭐라도 써야 한다. ㅎㅎ 정답은 없다. 논문도 아니고 숙제도 아니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쓰면 된다.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하다. 오래가려면 뭐니 뭐니 해도 즐겁고 재밌어야 하니까. 꾸역꾸역 억지로 하기 시작하면 망한다. 내가 지루해하지 않게, 부담스럽지 않게, 내 눈치 살살 봐가며 사탕도 주고 선물도 주고 어르고 달래면서 오래오래 이 글쓰기 여정에 나를 참여시켜야 한다.
3. '유유상종, 끼리끼리'는 여기서도 국룰
말 통하는 사람이 있듯 글 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도 우리는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다. 나와 공통된 관심사와 가치관을 지닌 분들이 자체발광하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들의 글을 읽으며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아간다. 다정한 브런치 작가님들은 라이킷도 아낌없이 잘 눌러주셔서 다음 연재를 이어나갈 연료를 잘 채워주신다.
기본적으로 텍스트를 좋아하고 텍스트에 익숙한 분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라 본질적으로 통하는 게 있다는 느낌이다.
4. 어디서도 쉽게 읽을 수 없는 멋진 글 선물이 매일 배달되는 점!
혜택 중 가장 큰 혜택! 나는 책을 읽는 일에도 사는 일에도 진심인데, 브런치에 접속하면 날 빵 터지게 하고, 찔끔찔끔 울리고, 먹먹하게 하며, 살포시 미소 짓게 하는 글들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글인데 당장 읽을 여력이 안 되면, 어떻게든 표시를 해놓고 나중에 찾아가서 읽는다. 이곳은 그야말로 좋은 글 보물섬이랄까? 브런치 작가님들 글을 읽다 보면 시간이 순삭(순간 삭제)이긴 하지만, 쇼츠나 유튜브 보며 쓸데없이 낭비하던 시간이 글 한자라도 더 읽는 시간으로 바뀌어서 좋다.
5. 기민해지는 관찰력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좋은 일상을 살아내려 노력하게 된다.
일상 속에 보석처럼 콕콕 박혀있는 글감들을 낚아채는 센스와 감각이 말도 안 되게 좋아진다.
잘 살아내서 그걸 쓰고,
또 쓰면서 살아내는 이 멋진 선순환!
6. 욕심내고 조급하면 스트레스 자동 예약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하루아침에 괴테나 헤밍웨이가 되겠다고 작심하면 안 된다. 내 브런치를 알차고도 보기 좋게 채워가는 과정은 절대적으로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기에.
아기를 키우듯 콩나물에 물을 주듯
한 번에 한 발자국씩만 전진할 수 있다.
즐겁지 않으면 다 무슨 소용. 내 속도로 내 숟가락 크기대로 그냥 전진만 하면 된다. 멈추지만 않으면 된다. 보폭은 중요치 않다. 내가 오늘 내디딘 작은 한 걸음은 반드시 나를 더 좋은 곳으로 옮겨놓을 테니.
사생결단하듯 하지 말고 놀이하듯 하자. 힘들고 지겨우면 쉬고,
또 열정이 차오르면 뛰어가고.
중요한 건 내가 이 공간을 놀이터로 인식하는 일. 그래야 오래오래 머무를 수 있을 테니.
7. "파레토의 법칙 (20 대 80법칙)"은 여기서도 작용하는듯하다
20%가 80%를 결정한다는 유명한 법칙이다. 이웃이나 팔로워가 아무리 많이 쌓여도, 대략 핵심 20%가 실질적인 소통과 의미 있는 관계로 이어진다는 것을 다른 SNS를 키워오면서도 깨달은 바 있다. 여기도 비슷하지 않을까?
이보다 더 많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일단 여기까지. 앞으로 두 달, 육 개월, 일 년 후에 또 후기를 남겨보면 재밌겠지?
인정한다. 때론 숙제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는 걸. 누워있고 싶은 욕망을 깨부수고, 나만의 언어를 만들고, 자판을 두드리는 과정은 분명 품이 드는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내 글을 쌓아가는 건 분명 가치 있는 작업이라 믿는다.
진짜 내 것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공간에서 우리는 다 기획자고, 창작자고, 작가이며, 편집자다. 이 플랫폼을 통해 나의 꿈에 날마다 정성껏 물을 주고, 나와 비슷한 '북소리'를 듣는 이들과 함께 배우고 성장해갈 수 있다.
나는 어제로 돌아갈 수 없어.
나는 어제와 다른 사람이니까.
그러니 더는 돌아보지도 후회하지도 않을 거야.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 이상 우리는 이전과 같지 않다. 매일 글을 쓰는 건, 매일 다른 내가 되는 것이니까. 결론은 이렇다. 어설퍼도 부족해도 머뭇거리거나 쓸데없이 기가 죽을 필요는 전혀 없다는 것.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귀찮음의 관성을 뚫고, 쉽지 않은 관문을 통과해서 카카오 브런치에 작가로서 자기만의 온라인 집 한 채씩 당당히 마련한 모든 작가님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승자고 멋진 분들이다.
꿈꾸는 미래의 내 모습에 닿을 때까지 꿈을 이룰 근거들을 하나하나 구슬처럼 모아가는 현재의 나를, 미래의 내가 '고맙다'라고 말해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전까진 즐기자. 쓰기 싫으면 제끼고, 또 보고 싶으면 찾아오고.
가볍게, 지겹지 않게. 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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