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좌표는 거부한다! 미니 2집 < Delulu Pack > 발매
키키(KiiiKiii, 지유-이솔-수이-하음-키야)는 2025년 케이팝이 새롭게 찾아낸 원석 같은 존재였다. 독특한 감성의 'I Do Me'와 이른바 '젠지미(Gen-Z美)'를 앞세운 키키는 데뷔와 동시에 화제의 중심에 등장했다.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낸 이들에겐 "신인상 싹쓸이"라는 화려한 결과물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두 번째 미니 음반 <Delulu Pack>은 앞선 활동곡 'I Do Me', 첫 번째 디지털 싱글 'Dancing Alone'과는 전혀 다른 느낌과 방향성을 앞세워 또 한번 케이팝 팬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경쾌한 팝 댄스에서 1980~90년대 레트로 사운드로의 과감한 변신을 통해, 지난 1년 동안 정해진 틀에 구애받지 않는 음악을 들려줬던 이들은 UK 개러지 하우스 장르를 녹여낸 '404 (New Era)'로 "좌표를 없애고 자유를 찾아 떠난" 다섯 소녀의 당당한 성장기를 그려냈다.
아이브, 우주소녀, 씨스타로 대표되는 기존 스타쉽 선배들의 음악과는 구별되는 키키만의 개성 넘치는 사운드는 <Delulu Pack>에서도 여전히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뮤직비디오로 선공개된 첫 트랙 'Delulu'는 망상을 뜻하는 단어 ‘Delusion’을 귀엽게 표현한 신조어를 제목으로 사용했다.
1990년대 홍콩 영화의 선두주자 왕가위 감독의 필터링 가득한 영상미를 연상시킬 만큼, 세기말적 느낌을 2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세대의 취향에 맞게끔 재해석한 인상을 심어준다. 속도감 있는 디스코 비트를 배경 삼아 툭툭 내뱉는 멤버들의 보컬이 묘한 중독성을 선사한다.
뒤이어 등장하는 이번 신보의 타이틀곡 '404 (New Era)'는 자유분방하지만 늘 주체적인 나를 찾아 나선 키키의 일관성 있는 콘셉트를 가장 잘 표현한 음악으로 손꼽을 만하다. 인터넷 웹 브라우저에서 표시되는 404 에러 코드를 "좌표 없이 존재하는 자유"로 의미를 부여해 키키다운 엉뚱발랄함을 극대화했다.
"Everyday 내 방식대로 해 / Take my time, bring it on"
"404 백지를 내도 백 점 / 404 안 떠 Radar radar / 404 Not Found in the system / 404 The new era era"
가사를 통해 표현되는 이야기의 흐름은 'I Do Me', 'Dancing Alone'이 전달했던 메시지를 단절 없이 계승한다. "결국 내가 가는 길이야"라고 외쳤던 데뷔곡으로 자신감을 얻고, 두 번째 활동을 통해선 "나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젊은 세대답게 어떤 제약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나다운 삶을 찾으며, 친구와 두 손 맞잡고 앞만 보고 달려갔던 키키는 신곡에서 한 단계 발전된 자유로움을 표현한다.
뮤직비디오의 구성 또한 흥미롭다. 새해 소원을 빌던 소녀들은 오픈카를 탄 클럽 DJ가 되었다가, 때론 록스타나 재즈 디바로 변신한다. 뒤이어 플래시 몹을 펼치는 댄서로 탈바꿈한 키키는 어둠 속 길거리를 질주한 끝에 아름다운 풍경의 언덕에 도착한다. 'I Do Me' 속 배경과 연결되는 MV 엔딩은 데뷔 때의 초심을 잊지 않겠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반면 사운드의 조합은 또 한 번의 변신을 이뤄냈다. UK 개러지 하우스 장르를 통해 요즘 해외 트렌드를 적극 반영한 클럽 음악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케이팝 프로덕션 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런던 노이즈(LDN NOIZE)의 편곡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평행 세계 속 키키를 만난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이어지는 수록곡들 또한 전작과의 연결성과 새로움이 공존한다. 공개와 동시에 많은 팬이 추천곡으로 거론하는 'UNDERDOGS'에선 제목처럼 약자로 분류되던 이들이 화끈한 역전승을 거두는 통쾌함을 노래한다.
몽환적인 느낌을 안겨주는 힙합 트랙 '멍냥'과 'Dizzy', 에픽하이 타블로와 협업한 카카오페이지 웹소설 <Dear.X: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OST 'To Me From Me' 또한 저마다 강한 개성을 내뿜으며 듣는 이들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제2의 'I Do Me' 혹은 해외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Dancing Alone'과는 전혀 다른 질감을 녹여낸 '404'의 깜짝 등장은 키키가 결코 하나의 단어,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팀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일명 '유기농 소녀들'이라는 애칭을 부여받았던 1년 전 이맘때의 좋았던 기억을 뒤로하고, 훌륭한 성장을 이뤄낸 키키의 이번 신보는 더욱 듣는 재미를 선사한다.
요즘 케이팝 산업의 시계는 예전보다 2~3배 이상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과거였다면 2~3년에 걸쳐 이뤄졌을 법한 변화가 1년 혹은 이보다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치열한 경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이곳에서 '404'는 케이팝의 새로운 성공 코드가 되어줄까? 험난한 케이팝 세상에 '키키'라는 이름을 강하게 새겨 넣었던 신예들의 두 번째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