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창 Jan 18. 2024

색각이상



  다들 각자의 삶을 (그럴듯하게) 드러내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겸손이 미덕' 같은 말은 정말 once upon a time,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나 쓰였던 것 같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런 세상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면서 조금도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냥 숫자로 말하는데, 그만큼 명확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몇십 억대(혹은 몇백억 대) 자산가, 백만 구독자 유튜버 같은 표현이 일상적이다. 세상이 변해가는 건 당연한 일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흐름에 발맞추는 것이 조금씩 버거워진다. 


  생 택쥐페리가 어린 왕자의 입을 빌려 말했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어른들에게 '창가의 제라늄 꽃, 지붕에는 비둘기, 분홍빛의 벽돌집'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엇을 '몇 십만 프랑, 몇 평'으로 이야기하면 단박에 받아들인다던 장면 말이다. 그 책이 세상에 나온 게 1940년대의 일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다 똑같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만약 달라진 게 있다면 나일 것이다. 슬슬 '가격은 시장이 판단한 재화의 가치를 표현한 거니까 그 집이 그만한 값이 나간다면 분명 충분히 좋은 집일 거야, 굳이 외관을 설명하지 않는다고 해도 숫자는 정직하게 많은 걸 말해주는 법이지' 하는 식으로 자연스럽게 어른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어린 왕자보다 어른에게 쉽게 감정을 이입한다. 어린 왕자가 떠나간 뒤 남겨진 세상에는 어른의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중이지만, 그렇다고 자랑하고 싶은 일이 아예 없지는 않다. 묵직한 인생의 무게가 양 어깨 위에 느껴지기는 하지만, 월급이 나오는(요즘 들어 제때 안나오는 경우가 많아 걱정이다) 직장이 있으니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가 턱밑까지 차오른 상태는 아니다. 소소한 소비의 욕구를 억누르기도 하고, 가끔씩 그런 욕망을 채우는 작은 즐거움도 느끼면서 산다. 굳이 시시콜콜 자랑하듯 드러내며 살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래도 책을 읽거나 진지하게 음악을 듣는 건 애써 숨기지 않으려고 한다. 책을 사고 몇 장 읽다가 졸음이 쏟아져 결국 기억나는 문장은 하나 남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아무리 삐딱한 사람이라 해도 '저 인간, 책을 또 사는 걸 보니 돈이 넘쳐나는 모양이군!' 하는 생각은 쉽지 않다. 기껏해야 '내가 너를 아는데 잘난 척 하기는' 하는 정도일 것이다. 그런 자랑은 크게 세상에 해가 되지 않을 것 같다. 한두 명이라도 '흥, 저런 녀석도 책을 저만큼 읽는데 나도 질 수 없지'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면 뭐 그것 또한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실 책을 그리 많이 읽는 편도 아닌데(당연한 얘기지만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수는 없고, 내 인생의 큰 부분은 음악을 듣거나 연습하는 데에 쓰인다), 제법 책을 많이 읽는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 듯하다. '요즘 어떤 책 읽으세요?', '읽을만한 책 하나 추천해 주세요'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 걸로 봐서는 분명하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인데, 찾아보니 원제는 [All The Beauty In The World: The Metropolitan Museum And Me]였다. 제목을 제법 많이 바꿔버린 건데, 역시나 출판사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떤 공기가 둘러싸고 있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나]로는 지금의 절반도 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잘 팔린 베스트셀러의 원제목을 거의 흔적도 남지 않게 뒤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약간 씁쓸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미술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라 저자가 덤덤히 쏟아내는 미술과 미술사 이야기에 조금 눌리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건 내 문제고 책 자체는 아주 좋았다. 사실 에세이집은 다들 각자의 삶에서 겪은 고만고만한 이야기를 담기 마련이니까 어떤 면으로는 맥이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 작가의 경우에는 이십대 중반에 겪은 형의 죽음과 그 충격으로 인한 퇴사(전 직장은 그 유명한 잡지 '뉴요커' 였다고 한다)를 겪었고, 그 후에 조금은 뜬금없이 미술관 경비원으로 취직하여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 제법 극적이어서 읽어가기에 제법 긴장감이 있었다. 미술관에서 근무하며 겪는 여러 주변 사람들과 관람객들 사이의 에피소드만으로는 이런 책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적록색약인데, 이걸 발견하게 된 건 초등학교 사오 학년 때쯤의 미술시간이었다. 옆자리에 앉은 짝이 "은창아, 너 왜 나무를 이런 색으로 칠해? 깔깔깔"하고 놀렸고, 그 소리를 들은 담임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선생님 책상으로 불러서는 색맹 검사지를 하나씩 넘기면서 이게 무슨 숫자로 보이니? 하고 물었다. 이런저런 비슷한 색깔과 크기의 작은 원으로 뒤섞인 그 두꺼운 카드들을 넘기며 대답하던 장면은 아직도 명확하게 기억난다. 몇 장을 넘기고 나자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카드들이 나왔고, 잘 모르겠다는 내 대답을 듣고 선생님은 사십팔, 이십육 이런 식으로 나직이 말씀하셨었다. 그리고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도 없이 자리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니 미술 시간이 좋을 리 없었다.


  다행인 건, 대학생이 되어 어떤 계기에서였는지 색각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전 인구의 몇 퍼센트, 그중에서도 남성은 팔 퍼센트였나가 색각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난 다음이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많아서 살짝 놀랐었다. 강의실에 나 말고도 한둘은 더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수롭지 않은 투로 내가 색각 이상자임을 말하고 나니 두 명의 동기생(남자였다)이 자기도 색각이상이라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낄 일은 거의 없는데, 지하철 노선이 4호선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좀 쉽지 않긴 하다.


  그러니 미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차피 나는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된 셈이다. 나는 내 눈에 이렇게 보인다, 그걸 통해 이런 감정을 느꼈다 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가능한 사람인 것을 인정해 버렸다. 그게 아주 가끔씩이라도 미술 작품을 접할 때 조금의 불안함도 없이 그냥 그 자체로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어차피 작가가 그리려고 한 세상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자유를 주었다. 제대로 이해하는 기회는 어차피 내게 주어지지 않았으니 나는 마음껏 오독해 버리면 된다는 생각에는 아주 작은 쾌감이 있었다. 


  책이건 영화건 공연이건, 미리 예습해 가는 것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일상의 경험에서 벗어나 새로운 걸 경험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니, 잘 준비해서 마음껏 누리려는 생각에 잘못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무방비 상태로 접한 작품이라도 그 대상을 관찰하고, 또 그걸 경험하는 내 자신을 관찰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다. 모르면 감상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모르는 상태로 감상하면서 느껴지는 걸 느끼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요즘은 공연 감상을 돕기 위해 이런저런 정보를 전해주는 재즈 클럽들이 있다. 밴드와 멤버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는데, 가끔씩은 사장님의 설교 비슷한 분위기가 되는 경우도 있기도 한 모양이다. 어떤 곳에서는 재즈 연주가 대체로 어떻게 구성되는지, 언제 박수를 치면 좋은지 등등 재즈 공연 감상의 팁 같은 걸 알려주기도 한다. 처음 재즈를 접하는 관객의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만들어 주려는 배려일 것이다. 산만하던 관객들에게 '여기는 와인과 음식만 즐기는 곳이 아니랍니다, 이제부터 무대 위의 연주를 감상해보시죠' 하는 메시지가 은연중에 전달된다.


  한두 곡 연주를 마치고 멘트를 하는 밴드 리더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편한 마음으로 즐기시면 되고, 재즈는 즉흥 연주가 중심이 되는 음악이니 마음껏 환호하며 박수를 쳐 주는 것이 연주자들이 더 좋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고 말이다. 그러면 꽤 경직된 듯하던 관객의 분위기가 풀린다. 박수소리가 확실히 커지고 종종 환호성이나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드럼 솔로가 있는 구간에서는 여지없다. 드러머는 그런 관객의 호흡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인지, 더 빨리 손과 발을 움직이고 큰 소리를 낸다.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포스팅에 태그되는 건 대체로 그런 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금 엇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설득력 없는 대사를 어쩔 수 없이 내뱉어야 하는 어색한 연기 같기도 하다.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가볍게 발을 구르고, 딱딱 핑거 스냅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몸이 자연스럽게 비트에 반응한 결과가 아니라, 그저 머리에서 이렇게 움직이며 듣는 게 제대로 즐기는 것이라는 싸인에 따른 것이 보인다. 음악의 흐름과 무관한 환호성이 섞여 나오기도 한다. 마음껏, 듣는 이가 소리 지르고 싶을 때면 주저 없이 소리를 질러도 된다고 그들은 배웠다. 하지만 어색하다. 힘이 많이 들어간 초보 연기자 같다. 


  소리에 얼마든지 감정이 담긴다는 것은 자동차의 클랙션 소리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빵과 빠앙, 빠아아앙, 빵빵빵이 다 다르고, 우리는 그 소리 뒤에 감정을 담고 해독해가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니면 너무도 공손하게 구성된 존대어로도 얼마든지 모멸감을 들게 할 수 있지 않나 말이다. 백화점이건, 관공서이건 마트에서건 말이다. 문제는 그 언어에 얼마나 익숙한가, 그래서 그 미묘한 억양의 차이에서 의미를 캐 낼 수 있는가의 차이이다. 무대위에서 박수를 많이 받아 본 이들은 그 박수 소리에 어떤 감정이 담겨있는지 제법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적록색약인 저도 미술관에 가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굳이 박수를 치지 않아도 마음은 얼마든지 전달된답니다, 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