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 때, 당시 집사님이던 엄마는 교회에 신들린 성도가 있다고 했다. 그 성도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선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신병을 앓고 있었고 무당이 되지 않기 위해 교회에 나왔다고 한 것 같다.
어느 날 엄마는 그 성도에게 점을 봤다고 했다.(엄마의 믿음은 경계가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무라고 했고 나는 금이라고 했다.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 쓰는 직업을 가질 거라고 했다.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나는 30여년동안 꿈이나 인생의 목표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물 흐르듯 살았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처럼. 바위가 가로 막으면 막힌 대로, 세찬 바람이 물길를 가르면 갈라지는대로. 길이 어떤 모양이든 그 끝이 어디에 놓여질까 궁금해 하지 않았다. 의지나 노력은 상실한채로 세상을 원망했다.
2017년, 사람을 잃고 나에 대해 궁금해졌다. 나를 모르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나는 뒷산으로 올랐다. 나무와 대화하고 꽃 사진을 찍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흐릿했던 내가 선명해지는 걸 느꼈다. 잠들 수 없는 밤엔 나의 미래를 그려보고 어둠속에서 시를 썼다.
그러다 나의 눈을 들여다 보며 내 꿈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생겼다. 두려웠고 행복했고 불안했고 즐거웠고 슬펐다. 몇 번의 담금질을 겪고 두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밤을 견디기 위해 썼던 시들을 모아 공모전에 제출하고 당선 소식을 받았다. 책 값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작은 문예지는 어쩔 수 없다고.
당선을 기뻐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이상하게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15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는 늦깍이 학생이 되었다. 나의 의지가 나를 쓰는 사람이 되게 하고 있다.
신들린 성도의 예언대로 나는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을 지도.
이제는 아무렇게나 흘러내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내가 만든 길로
느리지만 선명히 길을 찍어 나가려고 한다.
그 길마다 어떤 것들을 써내려 갈 것이다. 뒤돌아 보고 싶게 만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