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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빈 Sep 04. 2019

이름이 뭐예요?

영어식 이름이 꼭 필요할까요?



유학을 떠나기 전, 잠시 동안 이름으로 고민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종로로 영어학원을 매일 출근하던 시절에 수강생 대부분 영어 이름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고, 어학연수나 워홀을 다녀왔던 친구들도 다들 그럴싸한 영어 이름으로 불렸었다. 해외는 여행 말고는 직접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영어 이름을 스스로 지어볼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요새는 많은 한국의 스타트업 회사들이나 기업들이 수평적 구조 문화를 자리 잡게 하기 위해 상대방을 호칭할 때 직함을 달지 않아도 되는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사례들도 많이 보았다. 


예전에 몇몇 영어 이름은 가지고 있는 친구들에게 영어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곤 했다.(요새는 내가 영어 이름이 있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대부분의 대답은 외국인들이 나의 이름을 편하게 발음할 수 있게, 혹은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뒤로 유학을 가기 전까지 영어 이름을 뭘로 할지 많은 고민을 했었다. 인터넷에서 인기 있는 영어 이름도 찾아보고 내 이름과 비슷한 발음을 가진 영어 이름도 찾아보았다. 그러나 결국 이렇다 할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유학을 오게 되었다.


설레는 학교에서의 정규 첫 수업이 시작되고, 교수님이 출석부에 있는 이름을 한 명 한 명씩 호명하기 시작하였다. 익숙한 핀란드 이름을 지나서 어느새 외국학생의 이름들이 불리어지게 되었다. 여기는 학교가 북유럽에 있다 보니 학생 대부분은 다른 유럽 국가에서 왔거나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들이 영어의 발음 규칙대로는 발음이 되기 힘든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그때부터 교수님은 버벅거림과 함께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너 이름은 어떻게 발음해야 되는 거니? 나는 너희들 이름을 전부 제대로 불러주고 싶어"


비단 아시아에서 온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유럽에서 온 학생들의 이름도 헷갈린다 싶으면 전부 다 물어보았다. 영어 발음 규칙에 따라 발음되기 힘든 이름은 아시아뿐만이 아니라 유럽, 남미, 그 외의 다른 문화권도 마찬가지다. 물론 영어권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름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이름들이 훨씬 많다. 


몇몇 학생 중 발음하기가 꽤나 어려운 이름을 가진 친구들은 약간은 어색하게 불렸긴 하지만, 교수들이 긴가민가 하면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재차 물어보곤 했다. 어려운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교수들이 그 학생을 부르는걸, 혹은 이름을 외우려는 노력을 포기하진 않았다. 이런 일을 학교생활 내내 겪으며, 한해 두 해가 지나자 영어 이름에 대한 필요성은 그냥 사라져 버렸다. 이미 교수들과 학생들은 내 이름 그대로를 기억해주었다.


처음에는 내 이름을 다른 외국 친구들이나 교수들이 기억해주길 바래서 쉬운 영어 이름으로도 지어볼까 생각해봤었지만 오히려 내 원래 이름을 쓰는 게 더 좋았다. 우선은 내 이름 자체가 나의 정체성을 알려준다. 내가 어디서 왔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다른 외국학생들이 짐작할 수 있고 그런 게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영어식 이름보다 훨씬 더 그들의 기억 속에 각인될 수 있었다. 또한 이름을 외운다는 게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노력을 쏟으면 얼마든지 쉽게 외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우리는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도 내가 관심이 없고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그 사람의 이름을 전혀 못 외우듯, 영어식 이름을 쓴다고 더 잘 외워진다고는 생각이 안 든다. 오히려 외국 친구들이 그들에게는 좀 낯설 수 있고 기억하기 힘들 수 있는 한국 이름을 외워주고 불러준다는 게 더 고마웠고 신뢰감이 쌓이는 기분이 들었다. 3년 조금 넘게 살고 있는 지금도 영어식 이름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회사에서도 모두 다 그냥 내 이름으로 부른다. 다만 핀란드에서는 'J'를 '이'로 발음하기 때문에 내 이름은 종빈(Jongbin)이 아닌 용빈이 되곤 한다. 이제는 오히려 자연스러워져서 그냥 핀란드식으로 된 내 이름이려니 하고 지내고 있다. 회사에서도 영어 이름을 쓰는 외국인은 본 적이 없다. 이름이 불리는 방식이 핀란드식 발음으로 조금 변형되어 불리어지긴 하나,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일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식으로 불리어지는 게 더 정겨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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