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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이 Oct 06. 2020

썰매장에서 생긴 일

믿어주는 것도 연습이다.  


지난 일요일. 새벽같이 잠이 깬 아이가 "엄마! 오늘 썰매장 가는 날 맞죠?! 얏호 신난다" 하며 벌떡 일어났다. 코로나 공포로 기나긴 여름을 집안에서 웅크리고 보낸 녀석이 안쓰러워 근교에 가볼만한 코스를 찾다 집에서 40분 거리에 사계절 썰매장이 개장한 것을 알게 되었다. 작년에 실내 썰매를 타본 적이 있는지라 아이는 사진을 보여주자마자 기억을 떠올리며 신나 했고, 그날부터 가는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게다.


실외라 해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시기라 새벽부터 바삐 준비했다. 1등으로 도착해 재빨리 몇 번 타고 사람이 몰리는 시기 즈음 여유로이 집에 돌아오자는 야심 찬 계획하에 가족 모두 일사불란하게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뒷좌석에서 쉴 새 없이 조잘대는 녀석의 목소리에서 오늘 일정에 대한 충만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나들인지라 녀석 못지않게 들뜬 우리 부부도 차창밖으로 펼쳐진 완연한 가을 색채, 풍경을 만끽하며 지루할 틈 없이 썰매장에 도착했다.  


썰매장에 다다르자, 우리보다 발 빠르게 도착한 사람들이 썰매 튜브 끈을 손에 쥔 채 차례로 무빙워크 쪽을 향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줄 선 사람들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는 발걸음 속에 내 눈은 바삐 2인용 튜브를 찾고 있었다. 그때, 다른 가족이 직원에게 2인용 튜브에 대해 묻는 소리가 들렸다. 직원은 안전의 이유로 1인 1 썰매 정책을 지키고 있어 아이도 반드시 혼자 타야 한다는 말을 전해왔다. 슬로프의 아찔한 경사와 100m가 넘는 길이로 가늠해 보았을 때 당연히 아이 동반 탑승이 가능할 거라 짐작하고 확인해보지 않았던 나는 그 순간 패닉에 빠졌다. 내 아들과 비슷한 또래로 추정되는 딸을 가진 바로 앞의 가족은 바뀐 정책에 당황하며 낯빛이 굳어지더니 고민하다 돌아섰다.


무빙워크를 타기까지는 몇 걸음도 안 남은 상황에서 나 역시 돌아갈지 아니면 아이를 혼자라도 태워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재빨리 아이 눈을 보고 물었다. "아들, 엄마랑 함께 탈 수 없대. 혼자 탈 수 있겠니?" 답이 정해진 물음이었다. 평소 겁 많은 쫄보 아들이 탄다고 대답 할리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들의 입을 통해 결론이 내려지면 썰매를 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실망감을 그가 감당하기 더 쉬울 것 같아 선택의 주도권을 넘겨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들은 내가 예상한 답을 보란 듯이 피해 "그럼~ 탈 수 있지 엄마!"라 답하며 생각지도 못한 자신감까지 내보였다. 뒤따른 행렬 때문에 내겐 더 생각할 시간이 없기도 했거니와, 예상 밖의 답에 적지 않게 당황한 상태라 그대로 튜브 끈을 아이 손에 쥐어준 채 일단 무빙워크에 태웠다.


나 역시 그를 뒤따라 무빙워크에 올라 옆에 펼쳐진 썰매장을 힐끗 보았다. 아들과 동반 탑승한다 해도 안전할 수 있을 거라 확신이 드는 코스의 길이나 높이가 아니었다.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썰매장의 안전성을 가늠할 수도 없었을뿐더러, 올라오며 만난 몇몇 안전 요원들도 갓 구한 신참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불안감은 높아지는 고도와 함께 증폭됐다.


아이가 자기 무게에 버금가는 튜브의 끈을 손에 쥔 채 무빙워크에 홀로 서있는 모습을 약 1m 간격을 두고 뒤에서 바라보았다. 녀석이 좀 늠름하게라도 서 있었다면 내 마음이 그리 산란하진 않았을 텐데, 높아지는 경사에 무빙워크가 흔들거릴 때마다 튜브와 함께 비틀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나 비틀거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그의 뒷모습은 "엄마 나도 (무섭지만) 할 수 있다고요"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높아지는 고도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문득 저 녀석을 혼자 태웠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고의 순간들이 내 머릿속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내가 겁이 난다 해서 녀석의 작은 도전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아들의 자신 있는 대답을 믿어보자며 쿵쿵 뛰는 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40개월 그의 생에 가장 떨리는 도전! 썰매 홀로 타고 내려오기 : )

정상에 도착해 안전요원의 설명에 따라 튜브에 아들을 앉히고 뒤쪽에 있는 빳빳한 손잡이를 잡으라 알려주었다. 팔을 뻗어도 닿지 않는 거리의 옆라인에 튜브를 내려놓고 나도 출발 준비를 마쳤다. 생각보다도 더 아찔한 높이에 덜컥 또 겁이 일었지만 아들에게 담대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낙하 전 몇 초 간의 시간을 이용해 아들에게 외쳤다. "아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튜브 손잡이를 놓쳐서는 안 돼! 알겠지?! 엄마는 우리 아들 잘할 거라 믿어! 신나게 타보자 얏호!"


내 얏호 함성이 끝나기도 전에 썰매 튜브가 무섭게 낙하하며 슬로프 위에 '척'하고 안착했다. 어떻게든 아들의 뒤를 따라가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줘야지 싶었는데, 무섭게 떨어지는 속도에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빴다. 게다가 아이의 몇 배는 무거운 내가 그를 앞질러 도착하는 것은 당연한 과학의 이치였다. 아들을 추월하여 내려가는 내 모습에 당황하여 뒤를 돌아보려 했으나 어느새 정신없이 땅에 '턱'하고 도착해버렸다. 도착하자마자 내 눈은 아들의 슬로프로 향했다. 녀석이 튜브 손잡이를 작은 손으로 꽉 잡은 채 긴장을 숨긴 얼굴로 멋지게 내려오는 모습을 확인하자 알 수 없는 감격이 밀려왔다.


"엄마! 나 멋있게 타는 거 봤어요? 썰매 엄청 재밌어요!"


아들은 아래에서 영상을 찍고 있던 아빠에게로 가서 와락 안겼다. 우리 부부는 감격에 가득 찬 얼굴로 아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감이 붙은 아들은 그로부터 두어 번을 더 타고 내려왔다. 녀석은 썰매가 정말 재밌다며 더 타고 싶다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녀석은 썰매 자체보다도 본인이 두려움을 이기고 홀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더 신나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가을이 되면 생각날 법한 시원한 추억을 쌓으려 기획한 나들인데 아들은 이곳에서 뜻밖의 모험을 통한 성공경험을 쌓아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늘의 작은 모험이 녀석에겐 얼마나 값진 것인지, 내 어릴 적 경험들을 반추하며 가늠해보았다. 나는 겁 없는 아이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겁은 많지만 그보다 더 큰 호기심으로 모험을 주저하지 않던 아이였다. 운동신경이라곤 1도 없었지만 정글짐 꼭대기까지 올라가 손을 떼보 기도 하고, 혼자 버스를 타고 가서 엄마 심부름을 해오는 등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두려움을 마음 깊이 숨긴 채 내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는 작은 도전들을 즐기는 아이였다. 걱정이 많은 탓에 모험 전엔 누구보다 불안해하던 나지만, 무사히 마쳐냈을 때 내가 느낀 짜릿한 성취감은 언제나 두려움을 이기고 행한 대가 그 이상의 것이었다.


무엇을 하지 마라 또는 하라라는 말씀 없이 늘 내 행동과 결정을 믿고 지켜봐 주신 부모님은 언제나 내 크고 작은 도전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갑자기 사회 경험을 쌓고 싶다며 뜬금없이 휴학계를 낼 때에도, 영문학도인 내가 갑자기 스페인어에 꽂혀 연고 하나 없는 마드리드에 무작정 떠날 때도 부모님은 언제나 나를 믿고 내 도전을 응원해 주셨다. 두려운 마음을 이기고 행한 도전들로 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자부심, 자긍심을 차곡히 쌓았고, 때때로 그 모험에 대한 대가도 치러보며 내 선택에 대한 책임감을 배웠다. 성공경험에서 얻어지는 짜릿한 성취감은 금새 휘발되는 종류의 것이었지만, 홀로 부딪히며 체득한 자부심, 자긍심, 책임감 등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어디서 무얼 하든 나를 지탱해 줄 자산으로 남았다.


지금껏 나는 그 같은 자산을 만들어 낸 원천이 내 용기 있는 도전 정신 정도로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오늘, 도전을 행하는 아이의 입장이 아닌 그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 입장이 되어 보며, 내가 수많은 도전들을 행하고 그로부터 나라는 단단한 자아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다만 내 용기뿐은 아니라는 사실을, 불안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를 지켜보면서도 한 번도 내 경험의 기회를 제한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용기 덕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가 썰매를 홀로 타겠다 결정한 순간부터 슬로프를 타고 내려와 땅에 착지하는 그 순간까지 어쩌면 아이보다 더 무섭고 두려웠던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경험은 아들에겐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지고, 마음의 불안을 이기고 무언가 도전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했겠지만, 내겐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아들을 믿어주는 법을, 아이가 홀로 자립할 수 있게 하는 경험들을 선물하기 위해선 매 순간 부모에게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돌이 갓 지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복직하던 첫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다시 신입이 된 것 마냥 정신없는 일과를 보내는 와중에도 마음 한켠이 오직 아들 걱정으로 둥둥거렸다. 아들이 엄마 퇴근까지 잘 버텨줄 수 있을까? 낮잠은 잤을까? 이유식은 잘 먹었을까?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진 않을까? 오만가지 물음과 걱정이 뒤범벅되어 쿵쿵대는 가슴으로 마음 졸인 하루를 보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마침내 아이를 찾으러 갔는데 녀석은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하루를 내 예상보다 훨-씬 잘 버텨주고 있었다. 아이를 집으로 태우고 오는 길에 깨달았다. 정서적으로 더 단단해져야 하는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을, 아이가 내게 갖는 믿음만큼 나도 아이를 믿어야만 한다는 것을.   


부모의 아이에 대한 믿음도 어쩌면 무수히 많은 연습을 통해 공고해지는 것이 아닐까. 아이의 성장 시기마다 도전의 종류와 크기는 각기 다르겠지만, 부모는 두 손에 땀을 쥔 채 그의 도전을 응원하고 지켜보는 일을 반복하며 서서히 믿음을 쌓아가게 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직 어려서 또는 아직 불안해서 라는 말로 아이의 기회를 제한하는 것이 당장엔 마음 편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팔순이 넘은 우리 할머니가 여전히 환갑이 넘은 우리 아빠를 걱정하시는 모습을 보면 제 아무리 자식이 장성해도 부모에게 온전한 믿음을 줄 수 있는 날은 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식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종류의 것이라 생각했는데, 부모의 용기를 바탕으로 매 순간 믿어주는 연습을 통해 차곡차곡 쌓아가는 종류의 것에 가깝단 것을 오늘 새삼 깨닫는다. 차곡히 쌓은 믿음으로써 불완전한 아이에게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는 순간을 꿈꿔본다. 그리하여 언젠간 아이가 내 품을 떠나도 훨훨 날아다닐 수 있도록, 그 모습을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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