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용 상담 일기
그토록 기다렸건만 100일의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다. 예민했던 우리 아들은 자는 것, 먹는 것 그 무엇하나 쉽지 않았고, 그를 돌보는 일에 나는 몸은 물론 정신까지 탈탈 소진되어 매일 지쳐갔다. 그때 주변의 육아 선배들은 내게 “그래도 누워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 라고 따뜻한듯 잔인한 위로를 해 주었다. 그 말의 의미와 깊이를 그때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다. 그땐 잘 자주기만 하면, 잘 먹기만 하면 아이에게 더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았다.
누워있던 아이가 어느새 내게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만큼 컸다. 웃음과 울음으로 밖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했던 아이가 어느새 자기 감정을 또박또박 말하고 글로 적어낼 수 있을 만큼 컸다. 이제야 나는 알 것 같다. 아무리 레벨 업을 해도 어려워지기만 하는 육아라는 퀘스트를 매일 매일 마주하며 그 당시 육아 선배들이 내게해 준 위로가 진심이었음을. 바라는 것은 오로지 몸과 마음이 튼튼한 아이일 뿐인데도 그것이 이토록 어려울 줄 몰랐다. 남편과 나의 어린시절을 반추해가며 우리가 어떻게 자랐는지를 되짚어보면, 이토록 몸과 마음을 건강히 자라게 해준 부모님에게 매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부드러이 어루만져주면 너무 유약해질까, 강단있게 키우자면 너무 거칠어질까를 염려한다. 남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잘 지키는 아이로 자랐으면 하는 모순적인 바람도 가져본다. 공부에 목매지 않는 엄마인데도 남들 하는만큼은 해줬으면 하고, 그 조차도 너무 아이에게 압박이 될까 두려워 한다. 이렇게 수많은 감정과 바람이 얽혀있으니 육아가 어렵다고 느껴질 수 밖에.
그렇게 모래알 같은 자잘한 걱정과 바람을 뒤로하고, 내가 진정으로 아이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나와 남편의 지붕 없이도, 언젠간 그런날이 오는 그 순간에도 아이가 단단하고 자존감 높은 독립적인 개체 잘 자라나 자신의 행복을 찾아 기꺼이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 결론은 단순했지만 그것을 향한 방법은 나역시 배워본적 없이 체득한 것이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애초에 상담소를 처음 찾은 것은 아이의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나와 남편, 우리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더 가깝다. 항상 나의 일부 또는 남편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우리 아들이 어느새 보니 나와 남편과는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들을 좀 더 잘, 그리고 깊게 이해하고 싶어졌다. 남들의 생각, 시선에 크게 개의치않고 내 방식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나는 남을 이해하려데 에너지를 크게 쏟지 않는다. 그런 내게 누군가를 깊게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는 오로지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 한정되는 욕구인 것 같다.
상담소에 종합심리검사라 불리우는 풀배터리 검사를 요청하였으나, 먼저 사전 상담부터 진행했다. 사전 상담에서는 아이 그 자체 뿐만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 부모의 양육 방식 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에 대해 파악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 한주의 시간을 갖고 풀배터리 검사를 진행하였다. 나는 검사 이전에 아이 및 주양육자 관련한 약 800개의 문항들을 체크하고 제출하였다. 검사는 아이 단독으로 약 2시간 40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검사를 마치고 나온 아이는 모든 것을 쏟아낸 얼굴로 베시시 웃으며 배고프다고 말했다.
사전상담 및 풀배터리 검사 결과를 들으러 그 다음주에 다시 상담소를 방문했다. 아들은 언어이해, 지각추론, 작업기억 등 지적 능력을 측정하는 부문에서는 우수하나, 처리속도, 사회적 인지, 융통성 등의 면모에서는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결과 자체에 대한 인지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한 변화의 노력이라 했다. 어떤 기질과 성격이든지 그것에는 장단점이 함께 수반되기 마련이고, 타고난 기질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우리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시간당 10만원에 달하는 상담 세션을 5회 결제하였다.
상담의 효용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말과 행동과 지도 방향을 스펀지 처럼 흡수하는 아들에게 보다 나은, 보다 적합한, 보다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키우는 방법을 알고싶은 열망이 있었다. 부모 밑에서 자라기만했지 우리도 부모의 역할은 맡아본적은 처음인지라, 그리고 그러한 교육은 한번도 받아 본적이 없는지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는 결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결정을 올해 제일 잘한 결정으로 생각한다.
상담은 매 회차마다 아이 45분, 부모 15분 나누어 받는것을 원칙으로 하나, 좋은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우리에게 할애되는 시간도 늘 거의 30분에 달한다.
이하는 3회까지 상담한 내용 및 그 상담으로 인해 내가 느낀 바를 정리한 내용.
1) 아이의 학교생활 등 일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아이의 감정을 이끌어 내줄 수 있는 대화를 권고
- 아이가 자신이 부모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
-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들을 느끼는지 본인이 아는 것이 중요하며, 그를 통해 아들 역시 다른 사람들이 처한 맥락이나 그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음
예시 X) 축구에서 골을 못넣었구나~ 다음에 잘하면 되지
예시 O) 축구에서 골을 넣지 못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 많이 속상했겠구나, 대회 나간다고 엄청 설렜었는데 생각보다 실력발휘를 못해서 슬프지? 엄마도 그런적이 있어서 이해해
2) 아이에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을 권고
- 아이에게 너무나 포커스드 된 엄마 아빠 때문에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아직 케어받고 있고 이것이 자존감 문제와 연계될 수 있음 ex)학원 혼자다니기
- 스스로 주어진 상황에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며 아이는 스스로 자신감을 갖고 독립적인 개체로 성장
- 아이에게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부모가 하나하나 일러주다보면 융통성이 부족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방해
-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보다는 좀 더 관망, 지지, 격려를 해주는 역할이 필요
- 어떤 상황이든지 이렇게 하는 것이 좋아~ 라는대화의 방식보다는 열린 결말(?)로 남겨두는 대화를 통해 스스로 주어진 또는 주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줄 수 있음
- 아이는 지도/감시/양육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고 있는 독립적인 개체임을 인지하고, 설사 다르거나 틀린 방향으로 가더라도 그라는 존재 자체를 지지할 필요가 있음
3) 아이는 그 자체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기
- 아이는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성향임. 이것은 그의 기질의 일부이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님.
- 기준을 낮추고 내려놓으라는 식의 조언은 그에게 하등 도움이 될 수 없음
- 그 성향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이나, 아들은 그 완벽주의로 성취압력을 주지 않아도 내적동기로 인해 스스로 챙겨 하는 아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
- 어떤 기질이든지 그 기질의 부정적인 면 보다는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고 대신 부정적인 면을 상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부모로써 그 기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
- 예를 들면 아들이 주중 내내 학교에서 완벽주의로 자신도 모르는 스트레스가 누적되었다면, 그것을 주말에 해소해줄 수 있는 기저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 아들은 수확의 기쁨이 자신에게 꽤나 큰 기쁨이라 답을 했으므로, 주말농장 등 흙을 밟고 수확을 할수 있는 체험 등을 할수 있으면 좋을 것으로 사료됨. 할배적 기질로 자연과 함께하는 경험들이 그에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으로 권고
- 아이에게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해주려 노력하고, 그것에 앞서 아이는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 열심히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존재 자체로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항상 알려줄 것.
4) 아빠는 자신의 감정을 좀 더 드러내고, 엄마는 감정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
- 아빠는 아이와의 대화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솔직하게 드러내고 공유할 것을 권고
- 엄마는 조금 더 일관된 감정을 표출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엄마의 감정 높낮이가 크면 아이가 엄마 눈치를 보게될 수 있음
이외에도 많은 것들을 느끼고 지도 받았지만, 결국 그 기저에는 아들을 그 자체로 좀더 존중하라는 메시지가 깔린것 같다. 난 내가 충분히 그런면에서 열려있으며 개체로써 존중하는 엄마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똑바로 보기가 어렵고 변명하기 바쁘다. 그러나 나는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장점은 비교적 서로를, 그리고 그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려 노력하며,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지적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태도라 생각한다. 혼자였다면 너무 막막했을 길을, 남편과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고 대화하며 걸을 수 있어 든든하다. 우리의 사랑과 관심으로, 우리 아들이 계속해서 지금처럼 잘 자라주었음 하고,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해 주었음 좋겠다. 그러기위해 더 많은 노력과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준비가 완료된 것 같다.
앞으로 상담을 얼마간 더 하게될지는 모르겠으나, 이미 우리의 많은 행동양상, 대화방식이 변화했음을 느끼고 이것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준다. 6세 이후, 그러니까 혼자 밥도 먹고, 샤워도 하고, 응가도 처리하는, 제법 인간다워져 물리적인 도움을 별로 주지 않아도 되는 시기 이후 부터, 정신적인, 교육적인 측면에서 많이 방황했던 나의 육아관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잡히는 느낌이다. 위에 정리한 내용만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고 늘 내가 하고 있던 방향인줄 알았지만, 상담을 통해 나를 그리고 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 사실 나는 저 말들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위의 글이 단지 글자 하나하나, 활자가 아니라 마음으로 의미가 다가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노력해야지 싶다. 그 첫 초석이 상담이었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이만큼의 가르침을 얻게된 것 만으로도 너무 뜻깊고 행복하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리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 너를 낳아 참 다행이다. 너가 없었다면 너는 물론이고, 나를 그리고 우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늘 존재 자체로 무한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