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디지털 리바이어던의 공포

위임된 신뢰와 감시자의 역설

by 김정덕


우리는 매일 기적 같은 '맹목적 신뢰(Blind Trust)'를 감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낯선 사람이 운전하는 차(타다/우버)에 서슴없이 올라타고, 얼굴도 모르는 호스트의 집(에어비앤비)에서 안심하고 잠을 청합니다. 더 나아가 곧 일상이 될 자율주행차는 이러한 위탁의 가장 극단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는 핸들에서 손을 떼고, 나의 생명과 가족의 안전을 전적으로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에게 맡깁니다.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이 기이한 믿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기계나 낯선 타인을 맹목적으로 믿어서가 아니라,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거대한 플랫폼과 시스템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플랫폼 기업들은 디지털 세상의 질서를 부여하고 보증하는 절대 권력, 즉 '디지털 리바이어던(Leviathan)'이 되었습니다. 리바이어던은 본래 성경에 등장하는 바다 괴물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맞설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신원 인증을 대행하고, 평점을 관리하며, 거래의 안전을 보증합니다. 우리가 은행 앱에 숫자로 찍힌 돈을 실제 재산이라고 믿는 것, 자율주행차가 나를 낭떠러지로 몰고 가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것. 이 모든 것이 거대 중개자(Intermediary)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 거대한 믿음의 대상이 우리를 배신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홉스의 사회계약과 디지털 투쟁

17세기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있다”고 설파했습니다. 법과 질서가 없는 야생에서는 누구나 서로를 공격하고 약탈할 수 있기에,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더럽고, 잔인하고, 짧다"고 묘사했습니다. 이 공포를 끝내기 위해 개인들은 자신의 권리 일부를 절대 군주(리바이어던)에게 양도하는 '사회계약'을 맺습니다. "나를 지켜달라"는 조건으로 복종을 맹세한 것입니다.


이 논리는 21세기 사이버 공간에서 완벽하게 재현됩니다. 인터넷이라는 무법천지에서 해킹과 사기의 공포에 떨던 우리는, 거대 IT 기업이라는 리바이어던에게 보호를 요청했습니다. 우리는 ‘회원 가입’ 버튼을 누르며 디지털 사회계약을 맺습니다.


하지만 홉스가 간과한 것이 있습니다. 계약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안전과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우리의 ‘데이터 주권’과 ‘프라이버시’를 그들에게 양도했습니다. 이제 리바이어던은 우리가 무엇을 검색하고, 어디에 있으며, 누구와 대화하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보호의 계약인가요, 아니면 현대판 ‘자발적 복종’의 계약인가요?


감시자의 타락과 단일 실패 지범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액턴 경(Lord Acton)의 이 서늘한 경고는 디지털 시대에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신뢰를 위임한 디지털 리바이어던이 타락하거나 무능해진다면 우리 삶은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로마의 풍자 시인 유베날리스는 일찍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퀴스 쿠스토디에트 입소스 쿠스토데스? (Quis custodiet ipsos custodes?)” “누가 감시자를 감시하는가?”


이 질문은 현대 보안의 가장 아픈 곳, 즉 '중앙화(Centralization)'의 약점을 찌릅니다. 우리는 지난 2025년 '국가정보관리원 화재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국가 데이터의 심장부인 센터 하나에 화재가 발생하자, 전 국민의 행정 서비스와 민원 업무가 일시에 마비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안 용어로 말하는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입니다. 또한,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 사태는 감시자가 내부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할 때, 그를 견제할 수단이 없는 개인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진 중앙 서버는 효율적이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블록체인: 권력을 쪼개어 모두에게 나누다

이러한 ‘신뢰받는 제3자(Trusted Third Party)’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기술적 혁명이 바로 ‘블록체인(Blockchain)’입니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는 비트코인 백서에서 “신뢰 대신 암호학적 증명(Cryptographic proof)에 기반한 시스템”을 제안했습니다.


블록체인의 인문학적 함의는 ‘신뢰의 탈중앙화’입니다. 기존에는 은행이라는 리바이어던의 금고 속에 장부(Ledger)가 꽁꽁 숨겨져 있었다면, 블록체인은 이 장부를 네트워크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복사해서 나눠줍니다. 해커가 장부를 조작하려면 전 세계에 흩어진 수만 개의 장부를 동시에 해킹해야 합니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것은 “사람은 믿을 수 없지만, 수학(코드)은 믿을 수 있다”는 냉소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발상의 전환입니다. 블록체인은 리바이어던(중앙 권력)을 죽이고, 그 권력을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에게 분산시킴으로써 ‘감시자를 감시하는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여기서는 특정 관리자가 주인이 아니라, 참여하는 모두가 감시자이자 주인이 됩니다.


신뢰하되 검증하라

그렇다면 우리는 홉스의 리바이어던(맹목적 신뢰)과 나카모토의 블록체인(기계적 검증) 사이에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요? 인간중심보안의 철학은 이 지점에서 냉철한 균형을 제안합니다. 바로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는 원칙입니다. 기술만으로는 신뢰를 완벽히 대체할 수 없습니다. 코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그 코드를 설계하는 것은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적 효율성을 위해 플랫폼과 시스템을 ‘신뢰(Trust)’하되, 그 권력이 부패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검증(Verify)’할 수 있는 투명성을 요구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개인이 매 순간 알고리즘을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위임된 검증(Delegated Verification)'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투명한 커뮤니티의 감시입니다. 우리가 리눅스(Linux)와 같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안심하고 사용하는 이유는 전 세계의 수많은 개발자가 그 코드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전문적인 외부 감사 기구의 역할입니다. 재무제표를 회계법인이 감사하듯, AI 알고리즘과 플랫폼의 공정성을 감시하는 '외부 감사 위원회'나 '디지털 옴부즈맨'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핵심은 이 검증의 권한을 신뢰할 만한 제3자에게 위임하되, 그 결과가 언제나 대중에게 투명하게 공개되는 ‘감시의 민주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 과도한 불신은 사회를 마비시킵니다. 건강한 디지털 시민은 시스템을 이용하되, ‘검증 가능성(Auditability)’이 열려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할 때 언제든 감시의 눈을 뜰 수 있는 ‘깨어있는 감시자’여야 합니다.


사유의 광장: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당신은 은행 창구 직원의 눈빛을 더 신뢰합니까, 아니면 스마트폰 뱅킹 앱의 암호화 코드를 더 신뢰합니까?

우리가 플랫폼 기업에 지불하는 수수료는 단순한 ‘서비스 비용’일까요, 아니면 서로 믿지 못해서 발생하는 ‘불신 비용’일까요?

만약 모든 기록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블록체인 세상이 온다면, 당신은 더 자유로워질까요, 아니면 또 다른 감시(투명성)의 감옥에 갇히게 될까요?


참고문헌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 《리바이어던(Leviathan)》, 김용권 역, 한길사, 2017

나카모토 사토시(Satoshi Nakamoto),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2008.

레이첼 보츠먼(Rachel Botsman), 《신뢰 이동(Who Can You Trust?)》, 이진원 역, 흐름출판, 2019.

유베날리스(Juvenal), 《풍자시(Satires)》, 김진경 역, 문학과지성사, 1999.

Don Tapscott, Alex Tapscott, "Blockchain Revolution", Penguin,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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