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 에필로그

신뢰의 씨앗을 심는 당신에게

by 김정덕

우리는 긴 여정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나날이 높아지는 기술의 성벽 뒤에서 역설적으로 더 위태로워지는 디지털 세계를 목도했고, 그 해법을 찾아 복잡한 이론과 낯선 개념의 숲을 탐색했습니다. 이 책이 끝나는 시점에서 ‘인간중심보안’과 ‘보안문화’라는 개념이 여러분의 생각에 새로운 무게로 자리 잡았길 기대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나열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기존의 통제와 불신, 과도한 규정에 기대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람에 대한 신뢰와 잠재력에 주목하고자 했습니다. 오랫동안 “인간은 가장 약한 고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는 이 시기, 우리 조직을 지키는 진정한 힘은 여전히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저의 보안 여정은 1991년 한국전산원(현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에서 보안관리 표준화 업무를 맡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1995년 중앙대학교에 자리 잡은 후, 약 30년간 보안관리 연구와 교육에 집중해왔습니다. 보안을 단순히 기술적 이슈가 아니라 사회와 기술이 맞물린 비즈니스 이슈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도입과 보안 거버넌스 확산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2015년 산업보안학과와 융합보안대학원 설립을 계기로 ‘인간 중심’의 보안 연구와 교육을 본격화할 수 있었습니다. 2021년 정년과 함께 팬데믹을 맞으며 창립한 ‘인간중심보안 포럼’에서 여러 전문가와 나눈 고민의 결실이 마침내 이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되니, 마음이 더없이 가볍고 기쁩니다.


보안은 더 이상 기술과 규정의 집합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모두가 함께 만드는 ‘문화’이자 서로를 향한 ‘신뢰’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 책에서 제안한 ‘CORE TRUST’ 모델은 신뢰 기반 보안문화를 구축하는 실질적 이정표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각자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동료의 작은 실수를 이해로 감쌀 때, 복잡한 규정 이면의 실제 어려움에 먼저 귀 기울일 때, 그리고 보안을 ‘나의 일’이자 ‘조직의 가치’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신뢰의 문화가 싹틀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여정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익숙한 관성과 보이지 않는 저항이 때로는 당신을 지치게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해 주십시오. 가장 큰 변화는 언제나 가장 작은 발걸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동료에게 건네는 따뜻한 격려, 안전을 위해 실천하는 작은 습관 하나가 바로 우리 조직의 미래를 바꾸는 작은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제 아내와의 인연도 어느덧 40년이 넘었습니다. 결혼할 당시에는 아내를 제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세 명의 손주를 얻으며 비로소 깨달은 것은, 상대를 바꾸려 할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장점을 배우고 나 자신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지금도 문득 제 본성이 튀어나오곤 하지만, 아내의 장점을 닮으려 노력하며 조금씩 변해가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보안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정만 지키면 된다’, ‘보안은 내 일이 아니다’, ‘사고는 운이 나빠서 생긴다’는 안일한 생각은 반드시 변해야 합니다. 조직의 생존이 걸린 디지털 세상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구성원 모두가 ‘인간 방화벽’이 되어야 합니다. 문화의 전환은 어렵고 더딘 길이지만, 서로 배우고 변하고자 하는 마음과 실천이 모여 작은 성공을 거듭한다면, 문화는 반드시 바뀔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단순한 참고서에 그치지 않고, 변화의 길에서 방향을 잃을 때마다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실질적 안내서, 힘이 되는 동반자이길 바랍니다. 기술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환경에서, 우리는 더욱 안전하고 신뢰받는 디지털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신뢰의 씨앗을 심는 여러분의 첫걸음에 진심으로 응원과 감사를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집필 과정에서 큰 힘이 되어준 가족과 ‘인간중심보안 포럼’ 회원들께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갓 세상에 나온 손녀가 저에게 가르쳐준 ‘돌봄’의 마음이야말로, 복잡하고 차가운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를 지켜줄 가장 근본적인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저는 사랑스러운 손녀가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에서 가장 인간적이고 강력한 보안의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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