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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Jan 20. 2021

3.1.2 읽기가 언어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요?

그렇게 읽으면 안 읽는 게 나아요.


“읽기는 언어를 배우는 최상의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유일한 방법이다.”


크라센 교수의 <읽기 혁명 (The Power of Reading)> 책 표지에 등장하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 (특히 엄마들) 뇌리에 남은 문구다. 

너무 강렬한 문구다 보니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고, 써먹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사교육 시장에서는 이 문구가 아주 잘 먹힌다. 

난 이 문구가 잘 통하는 이유가 딱 하나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진 않았기 때문이라고. 


사실 이 책의 성격은 원 제목에 더 잘 드러난다. 

The Power of Reading: Insights from the Research

직역하자면, ‘읽기의 힘: 연구를 통해 알게 된 내용/통찰’ 정도가 되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를 통해 언어를 효과적으로 습득하는 방법’을 알려 주는 책으로 기대하고 읽었다면 끝까지 읽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읽기와 관련된 수많은 연구의 내용과 결과, 그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다양한 사실들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을 해라, 하지 말아라 하는 가이드를 받아야 안심이 되는 혹은 그것을 기대한 독자들이라면 어리둥절할 수 있다. 

(읽기를 주된 학습법으로 소개하며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면 난 오히려 우리나라 최승필 작가의 <공부머리 독서법>을 추천하고 싶다. 이 책 굉장히 좋은 책이다. 강추)


크라센 교수가 이 책에서 ‘읽기만이 최고의 언어 학습법이니,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책을 읽는 것이 단순한 암기나 문법 공부와 같은 방식의 언어 학습법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언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책 읽기를 통해서 어휘력 향상과 문체 향상 등을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내가 받아들인 가장 주요한 결론은 이렇다.


“아이들이 즐기면서 책을 읽을 때, 아이들이 ‘책에 사로잡힐 때’,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노력을 하지 않고도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 아이들은 훌륭한 독자가 될 것이고, 많은 어휘를 습득할 것이며, 복잡한 문법 구조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이 발달되고, 문체가 좋아지고, 철자를 무난하게 써낼 것이다.” (<읽기 혁명> 중)


많이 읽으라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즐기면서”, “책에 사로잡힐 때”라는 표현이 있을 뿐.

그렇다. 

그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읽기란 ‘voluntary reading’ 즉 자발적 읽기이다.


하지만 많은 영어 학원들, 특히 ‘리딩 (reading)’에 초점을 둔 곳들은 크라센의 앞선 유혹적인 문구를 정면에 내세우고 다독을 아이들에게 밀어붙인다. 


왜일까?

사교육 시장은 결과를 보여 줘야 하는 곳이다. 

그 결과가 당장 내 아이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 문장이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더라도, 길고 긴 읽기 목록을 내 아이가 다 읽었다고 체크되어 있다거나, 일정 기간 동안 50권을 읽어내서 상을 받았다거나 하는 결과물은 부모를 뿌듯하게 하고 재등록을 하게 한다. 


하지만 그 수많은 책을 읽고 퀴즈를 다 맞춘 아이에게 책의 내용을 물어보며 정말로 얼마나 이해했는지 확인해 봤을 때 그 결과는 어떨까?

퀴즈를 다 맞춘 것이 그 책을 진짜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위험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상을 받기 위해, 엄마에게 잘 보이기 위해, 퀴즈를 다 맞추기 위해 읽는 아이는 책을 건성으로 읽을 수 있다. 속독하듯이, 퀴즈를 맞출 수 있는 것들만 쏙쏙. 


이렇게 읽는 것이 습관이 된다면?

안타깝지만 더 고학년으로 올라가서 수준 높은 긴 지문을 읽게 됐을 때 진짜 실력이 드러날 것이다. 



엄마들은 자녀들이 ‘많이’ 읽는 것에 집착한다. 

사실 엄마들뿐 아니라 학교도 선생님도 그렇다.

학교에서 방학 숙제로 책 몇 권 읽고 독후감 쓰기와 같은 숙제를 보면 말이다. 

정성적인 것을 측정하기가 너무 어렵고 번거로우니 정량적인 것을 측정하는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지만 많이 읽는 것에 집착하다가는 안 읽는 것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만다. 

많이 읽기 위해 속독도 아닌 대충 훑듯이 읽는 습관은 정말 많은 부작용을 낳는다. 

일단 이 습관이 자리 잡아 버리면 훗날 시험 지문이나 중요한 문장/문단을 해석해야 하는 때에 그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좋아서, 몰입해서 책을 읽을 때에야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어휘를 자연스럽게 기억할 수 있고, 어려운 문법 규칙도 숨 쉬듯이 습득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읽기가 최고의 언어 학습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이 읽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어떤가 예상해 보자.


짧은 시간에 많은 책을 읽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대충 읽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은 딱 내 수준에만 맞는, 혹은 내 수준보다 낮은 책을 선택해 읽는 방법이다. 

딱 내 수준으로 책을 읽으니 훌훌 읽기도 쉽고, 많이 읽는다고 칭찬도 받는다. 

그런데 내 수준에 맞춰서 책을 읽는 게 뭐가 나쁘냐고?

‘내 수준에 맞는 책만’ 읽는 것이 문제다.


몰입해서, 너무 좋아서 읽는 아이들은 더 읽을 것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때 반드시 자기 수준에 딱 맞는 책만 고르지는 않는다. 

때로는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책을, 어떤 때는 훨씬 높은 수준의 책을 고르기도 한다. 

그리고 도전한다. 

읽어내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읽어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때 엄청난 학습 효과가 일어난다. 


내 수준에 딱 맞게 주어진 책만 많이 읽는 아이에겐 이런 기적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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