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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Feb 25. 2021

3.1.5 취향, 쉽고도 어렵지만

전집이 쉬운 선택지라고 한다면, 책을 고르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무척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정확하게 자신의 취향을 고려한 옷이나 신발을 척척 골라 입고 신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한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세트로 구입하기도 한다.

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고르는 것이 어렵거나 귀찮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렇게 제공되는 조합이 최상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몸은 마네킹과 다르다.

일단 마네킹은 얼굴이 없는 경우가 많고, 몸매 또한 실재 인간의 몸과 무척 다르다. (아마도 모델의 몸과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마네킹이나 모델이 입고 있는 옷을 그대로 내가 입었을 때 완전히 다른 느낌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옷이나 신발을 고르는 데 있어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책을 고르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옷이나 신발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니 예리한 눈을 가진 전문가가 내게 잘 어울릴 만한 색상, 디자인, 스타일을 추천하기가 매우 용이하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은 어떤가?

우리는 모두 고유한 과거와 현재를 지니고 있고, 이것이 각기 다른 생각과 관심사를 만들어 낸다. 천만 관객이 본 영화가 정작 내게는 너무 지루할 수도 있고, 베스트셀러 도서가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생각이나 관심사는 외모나 체형처럼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떨 땐 나 자신도 모를 때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내 취향을 만드는 것과 내 취향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난 우리나라가 한 개인이 고유의 취향을 갖고 그것을 지켜나가기 무척 어려운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나”라는 개인보다는 “우리”라는 집단을 더 중요하게 키워온 역사가 있기 때문에, 개인의 취향을 내세우는 것은 오랫동안 “튀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요즘은 이런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어 정말 기쁘지만, 여전히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아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알려면, 우선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세상은 그걸 알게 되기도 전에 너무 많은 것들이 삶 속에 밀려 들어온다.

또래와 생활하면서 어떤 무리에 끼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너무 많은 이유들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하지 못하게 된다.

말하지 못하면서 스스로도 나 자신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쌓아가게 된다.


덧붙여, 부모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존재다.

다른 많은 것들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읽는 책에 있어서도 내가 선택한 것을 부모가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는 아이에게 무척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부모이기 때문에 더더욱 책은 추천하지 말고, 전집을 사서 다 읽으라는 무언의 압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추천도 하지 마라.

전집도 사지 마라.

그럼 부모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책을 읽어주기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책 읽기에 있어서 부모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는 이렇다.

첫째,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조용히 도와주고,

둘째,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셋째, 기다려 주는 것이다.



세 가지 모두 앞선 글들에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이지만 한 번 더 간단히 짚어 보자.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조용히 도와주는 것

부모가 생각하는 ‘좋은 책’을 추천하고 읽으라고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책을 선택해서 그 선택의 결과를 경험하게 해 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도서관에 가는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책의 세계 속에서 (게다가 공짜!) 내 눈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찾는 것, 그리고 그 책의 재미있거나 없음을 경험하며 환호하고 속상해하는 그 모든 과정을 경험할 기회를 아이에게 제공해 보자.

그렇게 한 번, 두 번의 선택이 쌓여서 아이가 자신의 책 읽는 취향을 깨달을 수 있도록.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집에 너무 신나고 재미있는 다른 요소를 최소한으로 만들면 가족 모두가 책을 읽게 된다. 부모인 나부터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은 좀 덜 보는 대신 월간지, 주간지라도 무언가 읽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도 너무 심심해서라도 책을 읽게 된다.

모든 육아서에서 추천하는 ‘잠자리 독서’도 당연히 좋다. 엄마나 아빠가 너에게 책 읽어 주는 이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말로, 표정으로 이야기해 주는데 그 시간을 싫어할 아이가 있을까?


기다려 주는 것

셋 중 가장 어려운 것. 그리고 우리가 제일 못하는 것이 바로 이거다.

기다려 주는 것은 가장 어렵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아이가 책을 제대로 골랐는지, 내용은 이해하며 읽었는지, 충분히 많이 읽고 있는지 너무 확인하고 싶다.

숨을 고르고, 한 발짝 물러서서 기다려 줬으면 한다.

책을 이미 좋아하는 아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기다려 주고, 책을 싫어했던 아이라면 “홈런 북”을 찾도록 도와주며 기다려 주는 것이다.

습관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사실은 모든 것이다.


솔직히 다른 건 할 수도 없고 해 봤자 소용도 없다.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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