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리 May 25. 2021

3.2 영어책 읽기의 역사 (2)

고등학교 시절의 읽기

고등학교 시절의 읽기


앞서 말했다시피 나는 외국어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는 영어 수업 시수가 일반 고등학교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교과목도 다양해서 대략 기억나는 것만도 영어 듣기, 영어 독해, 영어 회화 등이었는데 그 많은 수업 중 나의 읽기에 가장 큰 변화를 준 것은 오전 보충 수업 시간에 진행되었던 ‘리더스 다이제스트’ 읽기였다.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작은 사이즈의 월간지 혹은 주간지였던 것 같다.

무척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었고, 영어 선생님은 그 안의 기사들을 복사해서 학생들한테 나눠줬다.

그 영어 기사를 공책에다 그대로 해석/번역하는 것이 숙제였다.

그리고 오전 보충 수업 시간에 방송으로 혹은 수업 시간에 숙제였던 해석한 내용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사실 그 수업 시간은 무척 곤혹스러웠다.

오전 보충 수업 시간은 8시 정도였던 것 같은데, 매일 반복되는 야간 자율학습에 이어 집에서 몇 시간 자지 못하고 나와 들어야 하는 수업이니 졸음이 쏟아지고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 시기의 이러한 읽기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대부분의 한국 고등학생들이 그러하겠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책을 읽는 것이 사치로 느껴진다.

가장 길게 읽는 것은 수능 언어영역 지문일 정도.

책을 정말 좋아하는 나도 고등학교 생활을 하며 책을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것은 숙제였지만 결과적으로 장문의 다양한 소재의 글을 읽어내는 좋은 연습이 되었다.

지겹다고 느껴지는 숙제였지만 나도 모르게 긴 문장과 긴 호흡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키워진 것이다.

이 시기의 이런 훈련이 없었다면, 대학에서 전공 서적을 영어로 읽으며 공부하거나 긴 소설책을 자연스럽게 읽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학습을 적극 추천하지는 않는다. 이 숙제 때문에 영어를 영영 싫어하게 된 친구들도 있었다. 내게는 효과적인 훈련법이었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방식의 학습법은 아니다.)




교환학생 시절의 읽기


대학교 3학년에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시절 서울대학교는 다른 사립대에 비해 교환학생을 갈 수 있는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렇다 보니 영어권 국가들은 경쟁률이 꽤 높았다.

교환학생을 꼭 가고 싶은데 학점은 그리 높지 않았던 나는 나름대로 고민 끝에 핀란드 헬싱키 대학교를 지원했고 운 좋게 선발되었다.

하지만 막상 교환학생을 가 보니 여러 상황이 내가 상상했던 것 과는 많이 달랐다.

영어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과 대학 강의를 영어로 듣고 과제를 영어로 써내는 것은 아주 많이 다른 것이었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에서의 생활도 쉽지 않았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게 핀란드의 기후는 견디기 어려웠고, 겨울이 되어 해가 짧아지자 우울한 기분도 많이 들었다.

다행이었던 건, 헬싱키의 서점에서는 영어책 코너가 꽤 방대하다는 점이었다.

이 시기에 내게 가장 많은 것은 시간이었다.

전 세계 각국에서 교환학생을 온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도 집에 오면 길고 긴 어두운 저녁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엄두가 안 나서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던 긴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시간들은 내가 영어책을 가장 많이 읽은 시기가 될 수 있었다.

이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인 John Irving과 Ian McEwan의 소설 거의 대부분을 읽었고, 그 밖에도 책을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갑자기 엉뚱하게 발견하게 되었다.


그 전에도 영어 공부를 쭉 해오긴 했지만, 내가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영어로 쓰기였다.

영어로 말은 자신 있게 하면서도, 이메일을 영어로 써야 하거나 과제를 써서 내야 하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고 문법적으로 맞을지만 걱정되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영어로 교수님께 이메일을 쓰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라? 오늘 왜 이렇게 영어 문장이 술술 써지지? 내가 이런 문장도 쓸 줄 알았던가?’


얼마 뒤 과제로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도 생각만큼 어렵지 않게 써졌다.

내가 그동안 영어로 읽은 많은 글들이 내 안에 녹아들었다가 내가 쓰는 문장으로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물론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영어로 말하면서 지낸 것도 큰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꾸준히 영어책을 읽은 그 시간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3.2 영어책 읽기의 역사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