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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Jul 25. 2021

3.2 영어책 읽기의 역사 (3)

나를 키운 영어들



유학 가기 전의 읽기


영어 읽기와 더불어 나의 영어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두 번째 시기는 신기하게도 유학을 가서 공부를 하던 시절에 앞 선, 유학을 준비하던 시간이었다.

대학도 다 졸업하고 부모님께 의지해 유학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나는 공부를 하면서 돈을 벌어 모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던 친구가 원어민 강사 대타 강사로 며칠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인연이 된 학원에서 풀타임 강사로 제안을 받았고, 그렇게 학원 강사로 1년 정도 일을 하게 되었다.

주중에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문법을 가르쳤고, 주말에는 외고와 과학고 재학생들에게 토플 대비 수업을 진행했다.


오후에만 수업을 하니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수업 전에는 수업 준비를 하느라 바쁜 생활이었다.

하지만 영어 수업을 준비한다는 것이 바쁘지만 재미있고, 무엇보다 후에 뒤돌아 보니 내게 큰 도움이 되어 있었다.

(이 부분은 뒤에서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공부법’이라는 내용으로 다시 다룰 예정이다.)


똑똑하고,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흡수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내가 공부했던 방식을 알려 주고 싶었다.

읽기와 콘텐츠를 통해 영어를 공부하는 방식을.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 수준에 맞는 책을 찾고, 그 책 안에서 가르칠 수 있는 부분을 연구해야 했다.

재미있게 본 영화 중에서 듣기나 이해력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는 파일을 구해서 부분을 발췌해 수업에 쓸 수 있도록 준비하기도 했다.


영어 학원 강사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모든 행위(책 읽기와 영화 보기)를 하면 할수록 일에서도 더욱 생산적이 된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는 아무리 잠깐 쉬는 시간이어도 책을 펼쳐 놓고 읽기에는 눈치가 보인다.

하지만 영어 학원 교무실에서는 수업 준비를 다 마쳐 놓은 뒤 수업 시간을 기다리며 영어 소설책을 읽고 있으면 그것은 수업의 일환으로 여겨졌다. (실제로 수업 준비를 위해 읽을 때가 많았지만.)

이에 더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늘 눈/귀에 익었지만 이런 표현, 이런 단어는 꼭 가르쳐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반복해서 보고, 읽고, 옮겨 쓰게 되니 나 자신의 공부가 많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논문 쓸 때의 읽기


석사 학위 논문을 쓰는 시기는 영어 공부에서 내게 가장 어려운 부분을 다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논문은 아카데믹한 글이다.

아카데믹한 글은 한국어로도 쓰기 어려운데, 영어로 만자가 넘는 글을 써야 한다니… 시작 전 생각만으로도 막막했다.


그동안 교환 학생으로 핀란드에서 공부하며, 유학생으로 호주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이미 영어로 여러 개의 에세이를 써내고 시험 답안도 써낸 경험이 있다.

하지만 논문은 단순히 영어로 쓴 글이 아니다.

주제를 고민하고, 자료를 찾고, 문장과 문단과 챕터를 쓰고, 검토하고,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영어로 하는 과정이었다!


극도로 긴장감이 높았던 이 시기에 나의 영어는 다시 한번 놀랍도록 성장했다.

많은 양의 학술 저서를 영어로 읽어야 했고, 영어로 끊임없이 생각하며 문장을 써야 했고, 때론 한국어로 생각한 문장들을 영어로 다듬어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논문 지도 교수를 영어로 설득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온라인으로 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다시 하라면 못하겠다…)



##

나만의 영어 읽기의 역사는 물론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요즘은 내가 어릴 때는 미처 하지 못했던 영어 그림책 읽기를 아이 덕분에 경험하고 있다. (이는 또 다른 엄청난 세계여서 언젠가 글로 남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는 역사를 배울 때 특정 시기를 구분하고, 한 시기에 일어난 어떠한 주된 활동/변화가 그 시기를 다음 시기와 다르게 하는 것인지를 배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그렇듯, 주변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 평범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보지 못한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심지어 다른 세대가 된 뒤에야 그 시기의 그 변화와 특징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깨닫게 된다.


내 영어 읽기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당시에 내가 어떤 큰 방향성을 가지고, 큰 기대를 품고 영어책을 읽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각 시기는 내 영어에 각자 기여한 부분이 크게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읽기 - 탐색의 시기: 내 취향은 무엇인가

고등학교 시절의 읽기 - 훈련의 시기: 다양한 소재의 다양한 글

교환학생 시절의 읽기 - 몰입의 시기: 좋아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마음껏

유학 가기 전의 읽기 - 가르치는 시기: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

논물 쓸 때의 읽기 - 훈련의 시기 2: 생각하고, 읽고, 쓰기의 레벨 업


각 시기에 영어 읽기가 가지는 의미, 영어를 어떤 태도로 대해 왔는가를 생각하면 대략 이 정도로 정리된다.

구석기시대를 지나와야 신석기시대가 올 수 있듯이, 나의 영어공부와 영어 읽기도 각각의 시기가 없었다면 그다음 시기는 진행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취향의 탐색 시기와 다양한 글을 읽어내는 훈련의 시기가 없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몰입해서 양적으로도 많이 읽는 시기는 결코 어려웠을 것이다. 또, 엄청난 양을 몰입해서 읽었던 시기가 없었다면, 남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물론 논문을 위해 영어로 생각하고 쓰는 시기는 불가능했을 것이 틀림없다.


몇 장에 걸쳐 ‘읽기’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읽기만으로 완벽한 영어가 가능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읽기는 언어를 습득하고, 학습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행위지만, 이것만으로 ‘외국어’가 최상의 단계로 올라가긴 어렵다.

왜?

외국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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