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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Apr 03. 2023

워킹맘의 나 홀로 여행 - 자기만의 방

여자사람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혼자만의 여행

애 키우는 여자 사람 엄마에게
왜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할까요?


방점은 ‘자기만의’
A woman must have money and a room of her own if she is to write fiction.
버지니아 울프의 유명한 말입니다.

여성이 소설/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정도로 해석되겠죠?
하지만 그뿐이 아닐 것입니다.
저 문장 속 단어들은 여러 가지로 치환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말이죠.

여성이 제대로/제정신으로 살아가려면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돈/능력과
자신만을 위해 쓸 수 있는 공간/시간/마음이 있어야 한다.

맞아요.
여기서 방점은 돈과 방이 아니라 '자기만의' 즉 ‘자신만을 위한’에 있습니다.


살아가느라 시간이 없고
없는 시간은 돈으로 산다.

많은 워킹맘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돈을 벌고, 경력을 놓치지 않고,

사회에서 내 자리를 찾아보려고 일을 하고
사회와 가정에서 요구되는 역할에 맞게 엄마 노릇도 하다 보면
이 두 가지를 저글링 하느라 시간은 늘 모자라고
모자란 시간을 그나마 좀 덜 모자라게 하기 위해 (시터에, 편리한 배달 서비스에, 세탁소/청소 업체 등 생활 편의 서비스에) 돈을 씁니다.


그러나,
일하는 여자 사람 엄마들이
돈을 쓰는데 유독 인색한 순간이 있으니
그건 바로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사야 하는 순간입니다.

아이의 영어 유치원, 한글 학습지, 새로운 장난감에 돈을 아끼지 않고
(바람직하게도) 눈 딱 감고 지르는 명품가방, 가족 호캉스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도
자기만의 '시간'을 위해
시터를 불러 아이를 봐달라고 하고
혼자 밥을 먹거나, 산책을 가거나, 여행을 가지는 않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하죠.


시간은 눈에 띄는 무언가를 당장 선사하지 않고
애를 두고, 산더미 같은 집안일을 두고
특별히 무언가 하는 게 아니라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고 하면 남들이 뭐라 할지도 신경 쓰이고
그렇다 보니 왠지 사치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에 이미 답이 있어요.
"왠지 모르게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정확히 이유는 모르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정말 값비싼 무언가라는 것을 이미 우리는 알고 있는 것 아닐까요?

-
여자 사람 엄마는
임신을 한 그 순간부터 혼자가 아니게 됩니다.

결혼까지는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소수의 문제 있는 남성 제외) 성인 두 사람이 함께 살더라도 각자의 생활을 유지하며 필요할 땐 혼자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뱃속에 나와 다른 그러나 향후 수십 개월(그중 9개월은 문자 그대로) 한 몸으로 지내야 하는 생명체가 생기는 순간부터 여자 사람 엄마는 혼자가 아닙니다.

밖에서 일하는 여자 사람 엄마여,
출산/육아 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복귀했을 때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나가기 힘든 만큼
회사에서 육아휴직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받는 차별에 열받는 만큼
오랜만에 일하느라 고생스러운 만큼
왜 그만큼
비밀스럽게 안도감과 만족감이 들었는지 아나요?

그건 비로소 수개월 만에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대중교통에 몸을 실을 시간
혼자서 핸드폰으로 웹툰 보며 느긋하게 똥 눌 시간
혼자서 카페에서 라떼 시켜놓고 잠깐 기다릴 시간
그리고 가끔 혼자 밥 먹으며 멍 때릴 시간.

사람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원래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혼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혼자여야 내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고
숨을 고를 수 있습니다.

육아라는 노동이 힘든 이유는 육체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소모가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주 7일 동안 나를 필요로 하는 작은 사람이 존재합니다.
그 작은 사람이 필요로 하는 바를 위해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고, 끊임없이 생각이 그를 향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버리게 되는 건 나를 위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사람은 언젠가 크죠.
그리고 나를 떠납니다.

그때가 되면 이미 늦습니다.
작은 사람에게 온 정신이 향하느라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사람을 위해 버린 많은 나를 위한 것들이 더 이상 복구가 안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되도록 빨리,
여자 사람 엄마들은 시간 사치를 누릴 필요가 있습니다.


궁극의 사치

혼자 하는 여행


혼자 하는 여행은 시간 사치의 궁극이지 않을까요?


여자 사람 엄마가 혼자 여행을 하면?
얻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은 당연하죠.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자기만의 방도 며칠간 생깁니다.
어른 혼자만 할 수 있는, 그동안 작은 사람에게 맞추느라 하지 못한 여행지에서의 다양하고 사소한 것들을 할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이 걸어 다니기.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독특한 음식들 맛보기 (특히 맵고 짠!).
한 자리에 오래오래 앉아 멍 때리기.
길거리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음 내킬 때 언제든 숙소로 돌아와 쉬기.

그런데 이것들 말고도 덤으로 얻어지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바로!

공동 양육자(남편)의 육아력 상승.
그리고 작은 사람과 남편의 본딩 상승입니다.

2일이나 3일, 아주 길면 5일 정도.
아침저녁으로 남편 혼자 작은 사람을 온전히 돌봄 해야 하는 시간 동안 둘이서 우당탕탕 지내겠지만, 뭐 어떤가요?! 내가 그 자리에 없으니 내가 모르니 괜찮습니다. (원래도 나 없이 잘하는 남편이라면 더더욱 감사할 일이고요.)


그러나 그 시간을 지나며 둘은 서로를 더 사랑하게 될 것이고, 나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깨달을 것이며, 나는 혼자만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 준 상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오랜 시간을 지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압니다.
여자 사람 엄마에게 혼자 하는 여행이 얼마나 실현하기 어려운 것인지.

그렇게나 여행을 좋아하던 저도,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시작으로 10년 간 단 한 번도 혼자 여행을 하지 않았/못했습니다.

돈이 필요하고,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공동 양육자(들)의 이해가 필요한 일.

아이에게 엄마가 며칠은 없어도 되는 날은
생각보다 빨리 옵니다.
그때가 되면,
일이 바쁘고 좀 눈치가 보여도
혼자 하는 여행을 작게 준비해 볼 것을 권합니다.

길지 않아도 됩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돼요.

그저 혼자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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