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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Sep 22. 2020

1. 1 나의 1988

내 영어 첫걸음, 캐나다

[1988년, 캐나다에서의 1년]


나는 1988년부터 1989년까지 1년을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해밀턴이라는 작은 도시에 살았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입학 후 한 학기를 보내고

여름 방학에 가족이 다 함께 캐나다로 떠났다.

교수였던 아버지가 맥매스터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게 된 덕분이었다.


그때만 해도 영어 유치원 같은 것은 한국에 존재하기 전이었고, 영어 정규 교육 자체가 중학교 교과부터 시작되던 때였다.

그러니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와 3학년이었던 언니가 알파벳도 알 리 만무했다.

캐나다로 떠나기 전, 부모님은 최소한 이름 정도는 써야 한다고 생각하셨던지 그때 당시 공책에 열심히 내 이름을 영어로 쓰는 연습을 한 흔적이 남아 있다.

한글도 간신히 떼었을 때라 생각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연습한 페이지를 보면 알파벳을 문자로 인식하지 못한 티가 난다. (아무 생각 없이 그림처럼 따라 그린 것이 분명하다.)



캐나다에서 처음 학교에 간 날,

당연히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아직도 그 날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가지고 있는 옷 중 가장 예쁜 옷을 입고 가방에는 한국 학교에 갈 때 준비했던 새 연필이 든 필통, 공책과 12색 색연필까지 챙겨 넣었다. 교실에 가니 카펫이 깔려 있는 바닥이며, 1인용 책상이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들은 두 명이 함께 짝을 지어 앉는 초록색 낡은 나무 책상이었다.)


제일 먼저 등교해서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자니,

아이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고,

내 가슴은 쿵쿵 뛰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의 수가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학교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있어서, ESL (English as Second Language)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나는 오전에는 ESL 수업에 들어가서 영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일반 수업에 들어갔다.


ESL 수업은 머리가 하얗고 몸집이 자그마한 여자 선생님이 운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 반에는 못해도 15명 정도의 나와 비슷한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꼬물이들이 모여 있었고, 거의 대부분이 나처럼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었으니.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내가 영어로 편하게 말하게 되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 기억 속에서 언제부터인가 내가 영어로 말하기 시작할 뿐이다.

하지만 영어의 어떤 부분을 배운 바로 그 순간 중 기억나는 순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scissors (가위)라는 단어를 배운 순간이다.



ESL 수업에서 만들기 활동이 있었던 어느 날.

아이들과 선생님이 무언가 하고 있었는데, 여러 가지 문구가 들어 있는 바구니 옆에 서 있던 나에게 선생님이 말했다.

“나에게 #5$%^@를 줘.”


나는 (못 알아 들었으므로) 천천히 풀을 집어 선생님께 건넸다.

선생님은 “아니, #5$%^@ 달라고.”라고 말했고, 또 못 알아들은 나는 연필을 건넸다.

“아니 아니, #5$%^@, #5$%^@, #5$%^@!”


이후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내가 가위를 집어 들자, 전에 본 적 없는 환한 웃는 얼굴로 소리치는 선생님.

“그렇지! 그게 바로 scissors야!”


그렇게 scissors는 내가 이후로도 절대 잊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이렇게 한 단어, 한 단어를 천천히 익히고 연습해서, 한 단어가 문장이 되고, 6개월 정도 지난 후부터 영어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었을까?


사실 이 부분은 좀 조심스럽다.


여기까지만 읽고 성격 급한 분들이

“역시 영어는 조기 교육이 중요하구나.”

혹은 “역시 어릴 때 외국에 살아야 빠르게 익히는구나.” 같은 결론으로 빠르게 도달할까 싶어서다.


오히려 나는 “조기 교육보다 훨씬 중요한 부분”에 대해 시간을 두고 이야기하려고 한다.



언어학에서는 언어를 배우는 것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습득(acquire)과 학습(learning)이다.


여러 이론이 있지만, 일정 나이가 되기 전 외국어를 접하게 되면 외국어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모국어와 같이 습득이 가능하다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론이다.

워낙 보편적인 믿음이다 보니, 이를 바탕으로 엄마들은 아이를 조금이라도 어린 나이에 영어에 노출시키려고 한다.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새로운 언어를 빨리 습득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그렇게 습득한 언어를 어떻게 유지하는지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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