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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리 Oct 11. 2020

1.3 부모님의 영어공부

나의 엄마는 예순다섯이시다.


엄마의 대표적인 모습을 묘사한다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모습”이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부지런히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틈 날 때마다 정말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다. 그리고 일기를 쓴다.

이런 엄마의 모습은 1-2년 된 것이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늘 그래 왔다.


우리 가족이 캐나다에 사는 동안 엄마는 어떻게 지냈을까?

엄마는 구세군(Salvation army)을 통해 영어 수업을 들었다. 마가렛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분께 영어를 배웠는데, 한국에 오고 난 뒤에도 선생님과 몇 번 편지를 주고받으셨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그냥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런 엄마의 모습이 내겐 큰 용기가 되고 이후에도 어떤 이정표가 되었던 것 같다.

낯설고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서 성장하고 있는 어린 내게, 어른인 엄마도 성장을 위해 무언가 노력을 하고 있다,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그런 메시지가 되었달까.


한편, 아빠는 집착에 가까운 노력과 관심을 영어에 기울여 왔다.


교수라는 직업 때문에 아빠 주변에는 박사학위 소지자와 교수가 당연히 많다. 그리고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도 꽤 있다.

교수들은 가르치고 연구한다.

교수라는 직업이 하는 다양한 일들 중 연구해서 영어로 논문을 쓰고, 그 논문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가해 발표하는 것이 특히 어린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릴 땐 아빠의 학회 참석이 종종 찾아오는 가족 여행의 기회에 지나지 않았다. 가족을 항상 우선시 한 아빠는 어딜 가도 항상 가족들과 함께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전문가들 앞에서 쉽지 않은 영어로 논문을 발표하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손발이 얼어붙을 만한 긴장되는 상황이다.


아빠는 부유한 집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바로 난 지방 대학 교수 자리에 취직하셨다고 했다.

외국에 처음 나와 본, 평생 문법책으로만 영어 공부를 했던 아빠는 얼마나 더 긴장이 되었을까.

게다가 교환교수로 지내는 1년 동안 수업도 연구활동도 모두 영어로 진행했을 텐데, 아빠가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그 시절 영어의 영향력을 느껴서였을까?

우리에게 영어 공부를 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빠는 스스로도 영어 문법책을 늘 가까이 두고 영어 공부를 했다. 내가 좀 크고 난 뒤에는 내게 틈틈이 영어 문장을 주며 문법적인 설명을 부탁하시곤 했다.

오랜 외국 생활을 한 언니가 결혼한 뒤론 독일인인 사돈댁에 이메일을 쓰시고는 표현이나 문장을 묻기도 한다.



이렇게 나이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책을 보고, 공부를 하는 아빠와 엄마 모습을 보면서 내 생각과 몸에도 이런 습관이 스며든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꼭 해야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늘 하는 것”으로 내 삶에 독서와 공부를 자리 잡게 해 주신 부모님께 항상 감사하다.

큰돈을 재산으로 남겨주는 것만큼, 좋은 습관을 갖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물론, 부모가 되어 보니 간단하게 생각되는 그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부모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런 잔소리가 절대 아니다.

모범을 보인다고 아이가 그대로 따라 하지도 않는다는 걸 나 또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하는 것, 그리고 지속적인 습관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하루에 세 끼를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우리가 매일 같이 생활 속에서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주위에 두고 살고 있고,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하게 되기 때문이다. 습관을 만드는 것이 그만큼의 노력이 든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려면 매일의 삶에서 숨 쉬듯 목도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바른 자세를 갖는 습관, 골고루 먹는 습관, 책 읽는 습관, 영어 공부를 하는 습관 등 많은 이들이 자녀가 갖춰 주었으면 하는 습관들이 그만큼 갖추기 어려운 습관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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