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할 때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대하여
나는 F다. 요즘 밈처럼 유행하는 '나 우울해서 빵 샀어.'라는 질문에, '왜? 무슨 일 있었어?'하고 되묻는 유형. MBTI를 맹신하는 건 아니지만, 나는 실로 누군가 저런 말을 한다면 응당 그 사람이 왜 힘든지를 먼저 궁금해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거기에 대고 '무슨 빵 샀는데?'라고 묻는 T를 나무라는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T가 '공감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나 우울해서 빵 샀어.'가 재밌는 테스트 정도로만 끝내면 다행이련만. 이 문제로 서로를 힐난하거나 '이거 봐, 난 이 유형이라 원래 이래.'라며 합리화하는 사람들을 보니 슬슬 의문이 들었다.
위로에 T냐 F냐가 중요한가?
나는 굳이 따지자면 'T의 위로'가 더 잘 먹히는 사람이다. 워낙 감정적인지라, 내 걱정을 덜어줄 해결책을 제시해 주거나, 이 문제가 별 일이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실질적으로 더 도움은 되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F의 위로가 도움이 안 되느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T형처럼 해결책만 주고, '별 일 아니야'라고 말해주면 그게 되냐고? 당연히 그것도 아니다. (어쩌라는 건가 싶지요?)
F형 위로
수능을 된통 망친 날, 나의 할머니는 수능의 시옷자도 모르셨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 시험인지도 모르셨다. 그렇기에 '다시 보면 되지.'같은 말도 한마디 못 해주셨다. 할머니는 그저 말없이 내 방문 앞에 찐 고구마나 김에 싼 밥을 놓아두셨다. 밥 한 숟가락 먹지 않고 방에 처박힌 날 보며, 본인이 더 곧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매일매일.
그 당시의 나는 '할머니는 내 속도 모르면서.'라고 철 없는 생각을 했다. 정작 할머니의 타들어가는 속은 모르고. ‘고구마라도 먹고 기운 차려야지, 고구마라도...' 하시던 방문 너머 할머니 목소리를 떠올리면 지금도 코 끝이 찡해진다. 할머니의 타 들어가는 걱정과 찐 고구마로 나는 고3 수능 실패를 극복했다.
T형 위로
회사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던 때였다. 스스로 일에 열정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답 없는 고민이 깊었다. 우울했다. 멀리 사는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던 중 이런 얘길 했다. "난 끈기도 없고, 일에 욕심도 없는 것 같아." 내 말을 가만 듣던 친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뭔 소리야?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너만큼 꿈 명확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 없는데?"
빈말이라곤 못하는 시니컬한 친구의 한마디에 나는 머리를 깡 맞은 기분이었다. "진짜로, 너 같은 사람 생각보다 별로 없어. 왜 고민을 해." 날 위로하려고 애써 포장한 대답이 아니었다. 내 고민에 공감해 주려고 꾸며낸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위로가 됐다. 이렇게 하던 대로 열심히 살면 되겠다- 하고 왠지 힘이 생겼다.
둘 중 누가 더 좋은 위로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마 누구의 위로도 결코 틀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둘 다 나를 생각해서 한 말과 행동이라는 건 분명했으니까.
공감은 못해도 날 위해 최선의 답을 고민해 주는 T가 있는가 하면, 네 고민은 네 것일 뿐, 심각하지 말라며 대충 조언하는 T도 있다.
좋은 해결책은 못 내어줘도 더 들어주고, 배려해 주고, 신경 써주는 F가 있는가 하면, 앞에서 공감은 해줄지언정 그 순간뿐인 F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또 '좋은 T' vs '나쁜 T', '좋은 F' vs '나쁜 F' 따위로 나누는 짓은 하고싶지 않다. 나 또한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겐 좋은 F형 위로를 하지만,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겐 나쁜 F형 위로를 하니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매순간 무수히 다른 내가 된다.
위로할 때 중요한 건 결국 진심
아무튼 그래서 나의 경험상 T형 위로든 F형 위로든, 중요한 건 위로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 위로가 진심으로 나를 신경 써서 해주는 말이라는 게 느껴진다면 그걸로 좋은 위로였다. 누가 뭐라든 나는, T냐 F냐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위로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