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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Jan 14. 2022

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것

내가 누군가의 전부가 된다는 것

학창 시절 중 가장 힘들었던 때를 말해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고3 때라고 할 수 있다.

밤 11시에 자서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집에서 인강 두 개를 듣고 가장 먼저 등교해 영어단어를 외웠다. 수업시간에 충실히 공부하고 쉬는 시간엔 복습을 했다. 수험생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그것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재밌는 이야기가 끝없이 샘솟는 친구들을 타의로 물리치기 위해 야간 자율학습을 신청하지 않은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이른 저녁을 먹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아지에게 밥을 주었다. 사료 근처만 가도 정신을 못 차리던 아이가 내가 사료를 열고 밥그릇에 붓는 동안까지 꼼짝을 않더니 ‘밥 먹어’라는 말에조차 반응을 하지 않았다. 가만 보니 입 주변이 축축하고 숨소리가 거칠었다. 너무 놀라 바로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진실이 엄마 출근할 때도 이랬어?”

“응, 컨디션이 안 좋나 봐. 좀 더 지켜보려고.”

“병원 가볼까?”

“이제 늙어서 그래. 좀 보다가 안 좋으면 엄마가 내일 가볼게.”


그렇게 유독 길었을 밤이 지났다. 그 밤도 공부를 하긴 했던 것 같은데. 했었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가족 중 가장 먼저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진실이의 상태를 살폈고 늙은 동생은 어제보다 더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엄마에게 병원에 꼭 가보라는 당부를 단단히 해두고 등교했다.


“엄마. 진실이는?”

“엄마 아침에 너무 바빠서 병원 못 가고 출근했어. 걱정 마. 16살이 그 정도면 건강한 거야.”


점심을 거르고 교무실로 향했다. 온갖 거짓말을 어색하게 던지며 조퇴를 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꾀병인 걸 모르지 않았겠지만 다행히 조퇴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대로 집으로 가 진실이를 안고 근처 병원으로 달렸다. 하얀 네 다리가 종잇장처럼 팔락였다.


수의사는 방법이 없다는 말과 함께 잔인한 진단을 내렸다.

“지금 누가 목을 조르고 있는 기분일 거예요.”

아이가 숨을 쉬기 편하도록 주사를 놔주겠다 했다. 정신없이 반짝이는 동전지갑에서 사만 원을 꺼내 결제했다.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는 작은 생명체는 내 품 안에서 가슴을 부풀렸다가 조이며 힘겹게 숨을 쉬었다. 그런 아이를 안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목을 조르고 있는 기분’이라는 수의사의 목소리가 내 목을 조였고 숨이 막혀서 소리가 나지 않아 조용히 눈물만 쏟아냈다.




진실이는 다음 날 아주 작은 소란도 내지 않고 죽었다.

10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버림을 받은 아이였다. 가족 중 누구라도 이름을 부르면, 어디서든 뚱땅거리며 달려오는 아이였다.

집 안 어디도 차지하지 않던 3킬로짜리 생명이 떠나자 갑자기 우리 집이 휑하고 넓어 보였다. 그리고 그 허전함은 성인이 되려면 아직 몇 개월이 남아있던 어린 나에겐 상처이고 영원히 남을 감정의 흔적이었다.


나는 아직도 학교를 조퇴한 그날을 기억한다. 옆으로 누운 채 꼬리를 흔들던 진실이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한다. 가족이 돌아오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진실이가, 혼자서 버텨야 마땅한 낮시간에 갑자기 들어온 나에게 고맙다고, 반갑다고 외치던 그 꼬리의 경쾌함을 기억한다.

2009년 열아홉 나에겐 공부와 수능이 전부였지만 생의 모든 날을 누군가의 ‘일부’로 살아온 작은 마르티즈는 모든 순간에 그 누군가가 ‘전부’였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의 일이어서 온라인상에서 진실이의 사진을 찾기가 어려워 제목 이미지는 나의 두 번째 반려견 콩이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미리 전하자면 이 메거진은 나의 세 번째, 네 번째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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