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 ‘토이’ 푸들
스물한 살
이제 막 다이어트를 시작해 예민할 데로 예민해진 나는 그날 저녁 약속이 있었고, 오랜만에 친구와 외식을 해 그즈음 들어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평소였으면 집에 온 가족이 다 있어야 할 시간인데 문을 열자 집안이 깜깜했다. 진실이가 없어서 좋은 점은, 오래도록 집을 비워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진실이가 아직 살아있었다면 엄마와 아빠가 약속이 있다는 고지로 내 행복한 저녁시간을 망쳐놨을지도 모른다. 좋은 점을 찾아냈다는 게 죄스러웠지만 사실이었다. 쓸쓸하지만 편했고 슬펐지만 자유로웠다.
그런데 샤워를 하는 동안 엄마 아빠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고, 씻고 나왔더니 진실이가 있었다. 나는 기분 좋은 비명을 내질렀다.
진실이를 똑 닮은 하얗고 작은 아이였다. 조금 크게 뭉쳐놓은 눈덩이 같은 강아지는 낯선 환경이 무서운지 소파 옆 구석자리에 웅크리고 누워있었다.
엄마 가게 단골손님의 지인이 하얀색 토이푸들을 여러 마리 낳았는데 가장 못생긴 한 마리가 남아있어서 엄마가 분양을 받아왔다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강아지 농장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와 다르게 귀 안이 더러웠고 그 귀를 완전히 치료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 사랑이, 초롱이 같은 세상 유치한 이름을 쭉 줄지어 읊는 엄마의 작명 목록 중 나는 그나마 무난한 '콩이'를 골랐고 그렇게 콩이는 콩이가 되었다.
강아지와 함께 산 경력(?)은 있지만 엄마 젖을 더 먹어야 할 작디작은 아기강아지는 처음이었다. 콩이는 걸을 때마다 마룻바닥에 미끄러져 다리가 빠졌고, 사료를 먹지 않아 공복토를 수시로 했으며, 내 이불이며 부엌 발판 등에 자꾸만 소변 실수를 했다. 낮시간에 집을 비울 때면 두고 나간 내 안경을 씹어놓거나 사서 한 번밖에 쓰지 않은 고가의 카메라를 깨트려놓기도 했다. 주먹만 한 콩이를 때릴 수 없어 땅바닥을 탕 탕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럴 때면 이유를 알리 없던 콩이는 나를 피해 소파 밑으로 도망을 갔다.
겁이 많고 적응이 느린 콩이는 거의 한 달을 밤마다 울었다. 온 가족이 잠을 설쳤다. 괜히 강아지를 또 데려와 편안하고 조용했던 집안이 오줌으로, 뜯긴 벽지로, 요란한 짖음 소리로 엉망이 됐다. 솔직히 그럴 수 만 있다면 돌려주고 싶었다. 치료와 검진, 접종으로 내 용돈이 자꾸만 나갔다.
입이 까다롭고 앙칼진 사고뭉치 콩이는 우리의 돈과 애정을 먹고 무럭 자라 딱 진실이만큼 커졌다. 그러자 가만 생각해보니 ‘토이’ 푸들이라는 말이 불편했다. 콩이는 진실이를 잃고 우울했던 우리 가족의 기쁨이었고 적적했던 부모님의 막내아들이었고 미국으로 유학 간 오빠 때문에 졸지에 외동이 된 나의 동생이었지, 절대로 '장난감'푸들이 아니었다. 이 한 줌의 작은 생명체에게 내가 느끼는 책임감과 조건 없는 사랑은 절대로 '토이'라는 '종'에 맞는 감정이 아니었다.
콩이가 성견이 될 때쯤부터 반려동물등록이 필수적으로 시행되게 되었고 나는 병원으로 달려가 콩이의 보호자로 이름을 올렸다. 살아있는 누군가를 평생 보호해야 한다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몸속에 평생 김지영이라는 이름을 넣고 살아갈 그 아이를 위해 나는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