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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영 Nov 08. 2017

너를 보내며.

우리가 함께한 189일

2017년. 2월. 24일. 

1000일이 넘는 여행을 하고 너가 한국으로 돌아간 날.


그 날을 기준으로 313일의 여행기간 중 189일을 너와 함께 했다.

21개국 중 13개국이 너와 함께 한 여행이었다. 

분명 인천을 떠나는 비행기에는 나 혼자였는데, 이제는 너없이 내가 여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16년 4월 18일 인천공항에서보다, 오늘이 더 무섭다. 너무너무 두렵다. 


잠깐 졸다가 눈을 떴을 때, 햇빛을 가려주며 눈앞에 떠있는 너의 손바닥이 좋았다. 

날 놀려서 결국은 짜증을 내게 만들어놓고 활짝 웃어서 생기는 주름이 좋았다. 

마지막남은 음식을 항상 내 입으로 넣어주던 너의 마음이 좋았다. 

"지영아 내 얘기 들어봐봐." 하면서 날 귀찮게 하던 너의 집요함이 좋았다. 

"하지마!" 해놓고 실망한 내 표정을 보고는 "아냐, 해! 넌 다해도돼!" 하던 너의 다정함이 좋았다. 

내 무릎을 베고 안좋은 꿈을 꾸는지 찡그려지는 너의 얼굴이 좋았다. 

아주 작은 일에도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해주는 너의 목소리가 좋았다. 

내 손에 들려있는 쓰레기를 늘 가져가는 너의 세심함이 좋았다. 

처음 보는 음식은 먼저 맛보고 내가 좋아할지싫어할지 귀신같이 맞추는 기미상궁인 너가 좋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 먼저 앞서 걸어가는 너의 뒷모습을 쫓는게 행복했다. 

너의 첫표정을 보고 첫마디를 듣는게 나라는게 행복했다. 

너의 하루가 시작될 때 그 옆에 내가 있다는게, 너의 하루끝을 내가 함께 나눌 수 있다는게 행복했다. 

목이 늘어난 잠옷을 입고 부운얼굴로 아침밥을 함께 먹어도 괜찮은 편안함이 행복했다. 

너와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낯선 새로운 길이 주는 설렘이 행복했다. 

무더운 한여름에, 겨울처럼 차갑던 내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와, 봄으로 물들여준 너와 함께 보내는, 특별한 가을 날이 행복했다. 


보고있어도 보고싶다는 말은 아직까지 이해하지 못하나, 같이있어도 보고싶어서 걷다가도, 멍하다가도, 자다가도 느닷없이 너를 쳐다보았다. 

하루에도 몇번씩 뜬금없이 너에게 반해 멋있다, 사랑한다 속삭였다. 


이제는 떠돌이생활을 끝내고 꼬박 3년만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너를 배웅하며, 너의 앞날을 온맘다해 응원하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는지.

우리가 다시 보는 날에 분명 기약이 있다는걸 믿음에도 나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이제 내 코 푼 휴지는 누가 버려주지. 

음료수캔은 누가 따주고, 통역은 누가 해주지. 

너가 없으면 이제 내 등은 누가 긁어주냔말이다. 


너의 과거가 나 없이 잘 돌아갔어도,

너의 미래계획에 내가 빠지더라도,

너의 지금이, 너의 현재가 내것임에 고마웠다. 


천천히 다 여행하고 돌아오라고 말해주는 너에게 나는 그저 이것이 우리의 이별이 아님을 알기에 괜찮노라고 얘기해야한다. 

나는 괜찮다. 

이것은 우리의 이별이 아니기에. 


조심히 돌아가요. 내 사람. 

곧 다시 만나요.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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