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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지 Oct 27. 2024

아빠.

CHAPTER1. 아빠와 에스컬레이터

 생각해 보면 아빠와 추억이 참 많습니다. 모든 사람을 올려다봐야만 했던 아주 어린 시절 아빠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 앞에 섰는데 빨간 버튼이 이뻐 보여서 꾹 눌렀어요.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멈췄고 많은 사람들이 웅성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아빠는 당황한 얼굴로 저를 어깨에 둘러업고 뛰셨어요. 아주 어린 나이였는데도 그 상황이 재밌어서 아빠에게 안겨 까르르 웃던 기억이 납니다. 



CHAPTER2. 아빠와 함께 간 서점과 10만 원어치 책

  글을 읽고 쓰게 되기 시작하던 무렵부터 아빠는 늘 저를 서점에 데려가셨습니다. 시내에 아주 큰 서점에 가서 몇 시간씩 이 책, 저 책을 보다가 아빠가 사고 싶은 책을 가져오라고 하시면 열 권 정도의 그림책을 호기롭게 쿵하고 내려놓았던 기억이 나요. 아빠는 그런 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며 아무 말 없이 책을 사주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그림책보다는 더 좋은 책을 사라던지 잔소리를 하셨을 법도 한데 아빠는 그런 법이 없이 늘 묵묵히 제가 골라온 모든 책을 사주셨어요. 그렇게 한 번 책을 사면 10만 원 이상씩 나왔던 것 같아요. 그 시절에 그 돈이면 적은 돈이 아닌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에게 참 감사합니다. 


 그때부터였는지 저는 학창 시절 내내 공부도 곧잘 했고 지금까지도 책 읽는 것과 서점 가서 책 구경하는 것을 참 좋아해요. 서점에 가면 마치 아빠가 '딸, 어서 와.' 하며 반겨주는 기분이 듭니다. 고등학교 시절 사춘기를 겪을 때에도 엄마와 싸우고 울며 집을 나가면 아빠와 갔던 서점에 가서 이 책 저 책 두리번거리거나 시디 플레이어에 연결된 헤드셋을 쓰고 엄마는 내 마음도 모른다며 눈물을 훔치곤 했어요. 그러다 결국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집에 들어갔답니다. 



CHAPTER3. 아무도 없는 동부 간선도로를 달리다. 

 중학생 정도 되자 아빠의 일상이 보였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아빠는 가장 먼저 방에서 푸시업과 윗몸일으키기를 하시며 아침을 시작하셨어요. 저녁에는 퇴근 후 항상 러닝을 하셨고 주말 아침 6시에는 친구분들과 10킬로 이상씩 항상 뛰고 오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대단하다는 것을 몰랐어요. 하지만 제가 커갈수록 특히 직장인이 된 후에는 아빠의 그런 생활패턴과 부지런한 모습, 성실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모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고 존경스러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어요. 아빠가 지금까지 풀 마라톤을 52회가 넘게 완주하셨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너무 놀라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에 두 눈이 동그래지고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중학생 때는 러닝 하러 가시는 아빠를 따라 종종 집 근처 강을 함께 달리고는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 동부 간선도로인가 새로 생겼는데 아직 개통을 안 해서 차가 다니지 않는 것을 발견했어요. 아빠는 저에게 오라고 하시더니 그 도로를 올라가서 달리시는 거예요. 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작한 달리기는 이내 아빠와 마주 보며 까르르 웃음꽃을 피우며 이렇게 큰 도로에 아무도 없이 아빠랑 둘이 달리다니 정말 신기하고 신난다면서 뛰어다녔습니다. 


 도로 위 조명도 없이 깜깜한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이었지만 아빠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무서울 게 없던 그날 밤. 밤공기를 가르던 저의 머리카락과 빛나던 눈동자가 저의 마음속에 새겨졌어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크고 작은 러닝 대회를 나가게 되면 꼭 아빠에게 자랑을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아빠는 한결 같이 말씀하십니다. "딸, 무리하지 말고 항상 천천히 재밌게 풍경도 보면서 즐기며 뛰어."

'일등해, 기록 세워'가 아닌 다 괜찮으니까 그냥 무리하지 말고 즐겁게 하라는 아빠의 말씀이 마치 인생을 그렇게 살아가라는 말로 들려서, 잘하고 있으니까 힘들지 않게 행복하게 지내라는 말씀 같이 느껴져요. 그래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안정감이 들면서 행복해집니다. 



CHAPTER4. 아빠와 함께 북한산 정상에서 마주한 새해 일출

 고등학교 시절 아빠와 산을 많이 다녔습니다. 큰 절이 있는 산 둘레길을 걷는 다던지 가끔은 산 정상까지 오르기도 했어요. 단풍이 들어가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가을이나 겨우내 깊은 땅 속에서 잠을 자다 올라오는 푸릇한 잎이 살짝이 보이며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주 추운 12월 31일의 겨울이었습니다. 


 엄마는 사고로 다리를 다치셔서 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아빠와 저는 산 정상에서 해돋이를 보고 엄마에게도 영상 통화를 하며 함께 새해를 맞이하자고 당찬 계획을 세웠어요. 바람은 아주 차가웠지만 해돋이를 보기 위해 빠르게 올라가는 저의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어요. 행여나 해를 놓칠까 점점 하늘이 밝아질 때마다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마침내 아빠와 정상에 올라 떠오르는 엄마에게 서둘러 영상 통화를 걸고 엄마와 아빠, 저 셋은 함께 빛나는 해돋이를 맞이하며 새해의 기쁨을 함께 했습니다. 어느 산이었는지, 정확히 몇 년도의 새해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날 아빠와 함께 세운 목표를 달성하고 환하게 웃으며 웃었던 그 겨울의 기분 좋은 찬 바람은 아직도 볼을 스치는 듯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CHAPTER5. 대학교 수시 시험장과 아빠 그리고 볼펜

 학창 시절 차로 픽업은 대부분 엄마가 많이 해주셨었는데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학교 수시 입학시험 응시를 위해 아빠가 차로 대학교에 데려다주셨어요. 시험을 보러 올라갔는데 펜을 안 가져온 거예요. 창문으로 "아빠! 펜 놓고 왔어요! 내려갈게요!" 다행히 아빠 차에 있던 볼펜으로 시험을 잘 볼 수 있었어요. 시험을 보러 가는 학생이 볼펜을 놓고 가다니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확실한 건 중요한 시험을 보러 가는 길이지만 아빠와 함께 했기 때문에 두렵지도 심하게 긴장되지 않았어요. 늘 저의 뒤에서 따가운 해를 가려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아빠라는 존재가 든든하게 느껴졌기 때문인가 봐요.  


 대학 시절에는 아르바이트할 시간에 공부를 더 하라는 아빠 말씀에 따라 아르바이트는 안 했지만 공부는 잘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왜인지 책만 피면 졸음이 쏟아졌던 것 같아요. 등록금을 낼 시기가 되면 미루고 미루다가 임박해져서야 "아빠! 오늘까지 등록금 내야 된데요!"하고 아빠에게 전화하면 금세 해결해 주시곤 했어요.  


그 당시에는 그 돈이 얼마나 비싸고 소중한 돈인지, 말 한마디로 등록금을 내주시는 아빠가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랐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강의 시간에 졸았던 과거의 저에게 꿀밤을 주고 싶습니다. 



CHAPTER6. 남편과 아빠의 첫 만남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30대 초반에 들어서자 아빠는 저의 결혼에 대해 걱정하신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전 남자 친구이자, 저의 현 남편을 처음 아빠에게 소개하게 되었어요. 저와 그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서 있었고 멀리서 아빠가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오시더니 인사도 채 하기 전에 남편을 번쩍 안아 들어 올리셨어요. 아빠보다 15cm는 더 큰 남편이 공중으로 부웅 들어 올려졌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정말 반갑다고 하셨습니다.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아빠에게 이런저런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퍽이나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었어요. 아빠는 술도 잘 안 하시고, 담배는 아예 안 피시며, 매일 운동하시고 독서를 좋아하시는 말 그래도 모범생이세요. 그런데 저의 남편도 똑같이 술, 담배 안 하고 매일 운동하고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거든요. 젊은 나이에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이 무척 기특했던 모양입니다. 만족, 만족, 대만족! 하는 표정에 제가 다 뿌듯했어요.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빠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참 흐뭇했습니다. 



CHAPTER7. 아빠와 가끔 데이트 

 결혼 전 매일 아빠와 함께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결혼한 뒤로 가끔 아빠 생각이 나면 갑자기 보고 싶어 졌어요. 그럴 때면 전화 통화도 하고 아빠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서 주말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얼마 전에는 남편과 광화문에서 아빠를 만났어요. 처음으로 같이 인생 네 컷 사진도 찍고 종로에 유명한 식당에서 삼계탕도 먹고 광화문 근처를 산책하며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아빠가 사진도 많이 찍어주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서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셋이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요즘 하는 운동과 책에 대해 대화를 나눴어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있으니 그곳이 천국처럼 행복하고 따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빠는 아직까지도 매일 아침 운동하시고 주말마다 러닝 하시며 일도 정말 열정적으로 하세요. 정말 성실하시고 치열하게 사시다 보니 가끔은 데이트 신청을 해도 바쁘시다며 미루시기도 합니다. 다음에는 꼭 만나자고 약속을 했는데 올해 가을이 가기 전에 꼭 아빠랑 남산 산책을 하고 싶어요. 



CHAPTER8. 걱정 많은 아빠, 항상 노력하는 아빠,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아빠 

 아빠는 항상 걱정이 많으셨어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특히나 평소에도 준비성이 철저하셨던 아빠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준비로 걱정이 유난히 많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아빠는 항상 치열하게 뭔가를 하고 계셨습니다. 각종 공부도 열심히 하시고 운동이나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하셨어요. 제가 볼 때 아빠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가고 계셨어요. 그런데 아빠는 항상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점이 안타까웠어요. 

 

나이 불문 아빠처럼 성실하게 항상 운동과 자기 관리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은 소수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아빠에게는 저와 동생처럼 잘 자란 두 자녀가 있고 아빠도 원하는 활동을 하시면서 살아가실 수 있는 건강이 있으시니 얼마나 행복하신 것인지를 말씀드리곤 해요. 제가 바라는 건 아빠의 웃는 얼굴이기 때문이에요. 

 아빠의 웃는 모습을 많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아빠가 얼마나 가진 것이 많으신지, 얼마나 행복한 삶의 요소를 많이 갖고 계신지를 잘 알도록 해드리고 싶어요. 


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존경스러운 사람이 바로 아빠입니다. 

저의 영원한 슈퍼맨이자, 가장 닮고 싶은 롤모델이에요. 



CHAPTER9. 아빠가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저는 아빠에게 받은 것이 참 많다고 생각해요. 건강한 신체, 바른 마음, 성실한 태도, 넘치는 사랑. 차마 다 쓰지 못할 만큼 많은 것들을 받았지만, 아빠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이에요. 


 제가 크면서 아빠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우리 딸, 사랑한다. 우리 딸은 모든 일이 잘 되어 간다. 우리 딸이 원하는 건 뭐든지 이루어진다!"라는 외침이에요. 퇴근하고 오시면, 함께 러닝을 하다가도, 눈만 마주치면 저에게 항상 저런 말을 해주셨어요. 단단히 세뇌당한 거죠. 


 그런 시간들이 쌓여가자 어느새 저는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어요. 긍정적인 마음으로 항상 모든 일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모든 일은 더욱 잘 되기 위해 일어난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저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태도를 갖게 되었어요. 



CHAPTER10. 이제 제가 곁에 있을게요. 

나에게 책 읽는 법과 천천히 즐기며 달리는 법, 등산하는 즐거움을 가르쳐 주신 아빠. 

대학입시, 결혼식 나의 중요한 일에 항상 곁에 있어주시고 응원해 주신 아빠. 

나를 믿어주고 나의 남편까지 사랑해 주시는 아빠.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단단한 씨앗을 심어주신 아빠.  


아빠가 힘들 때 위로가 되어드릴게요. 

아빠 곁에 항상 제가 있을게요. 

사랑해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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