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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음 Nov 27. 2020

네가 부잣집 아이면 좋았을 텐데

네가 부잣집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양껏 실감하게 된다. 내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란 참 신기한 존재이다. 다른 사람이 하면 미쳤나 싶을 말들도 엄마 입을 거치므로 애틋한 뜻이 된다.


“나 지금 좋은데.”

“부자 엄마 만났으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니가 잘하는 거 다 하고.......”


엄마는 내가 재주 많은 아이라 생각했고 돈이 없어서 앞길이 막혔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달랐다. 나는 재주 많은 아이였지만 그게 드러나는 아이는 아니었다. 재주꾼이란 부채 같은 면을 지니기 마련이다. 한껏 접혀 있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엔 자신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내게로만 파고들다 나를 견딘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치열하여서 재주 발굴은 뒷전이었다. 이 사태에 누구 탓과 누구 덕이 있는지 모르겠다. 나의 성년엔 어쩐지 공치사랄 게 없었다.


사실 내겐 ADHD(주의집중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는 가벼운 정신과 질환이 있다. 가볍다는 형용사를 붙여도 ‘정신과 질환’ 이란 표현은 무겁기만 하다. 돈과는 상관없는 불편과 불구 어디쯤 내가 있었다. 누군가 나를 불편한 사람으로 본다면 그것은 옳고, 뇌과학적 불구로 본대도 그 또한 옳았다. 재주 많은 아이가 ADHD라는 건 모든 재능에 0.1을 곱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약간의 축복 0.1에 아쉬운 저주 0.9를 섞은 것과도 같았다.


그러므로 내 생애 최고의 악재는 가난이 아니었다. 내가 나라는 것, 그 어떤 의술이나 마술로도 나 아닌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 엄마아빠가 너무 사랑하는 나를, 나 자신은 정작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절망케 했다. 나는 늘 성질을 부리거나 예민하게 굴었는데 결핍을 티 냈던 것인지 자기애에 미쳐버린 것처럼 보이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후자라면, 엉망일지언정 그건 효도였다. 어쨌든 부모님은 사랑하는 딸자식이 실은 제 자신을 가장 혐오하고 있음을 모를 거였다. 부모님은 때로 누가 날 이유 없이 싫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나를 좋게만 좁게 보는 방식으로 사랑해주었다.


나 역시 내가 너무 좋은 반면 너무 싫기도 했다. 죽이고 싶다가도 맨날맨날 살려주고 싶었다. 누구도, 부모님도 그 어떤 위안도 심지어 가난도 나와 나 사이에 끼어들 순 없었다. 가난이란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거라던데. 어린 날이 많이 궁핍했나 되새겨 보자면, 궁핍이 아니라 궁지에 몰렸던 것이라 정정하게 된다. 늘 멍하고 사건에 휘말리고, 바로 잡으려다 더 크게 실수하느라 하루를 다 쓰는 나에겐 많은 금전보다 많은 뇌세포가 절실했다. 부자라는 건 적은 시간을 많은 돈으로 치환하는데 익숙한 종족인 듯했다. 그런 이유로 내겐 매일 잔돈 같은 여유조차 남지 않았다. 돈으로 바꿔낼 만큼 시간을 신묘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재주’가 결국 내겐 없었다.


어쩌면 나는 가난을 이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능한 사람은 쉽게 간교해지니까, 내가 가난에 무능을 의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꿈꾸고 실행해야 할 시간에 침대에 파묻혀 있었던 것, 사람과 사랑에 생긴 편견을 의심하지 않은 것, 궁금한 분야를 전혀 공부하지 않은 것...... 등등에 대해 가난은 좋은 핑계였다. 돈이 없어서 곤란하기도 했지만, 곤란한 일들의 범인으로 돈을 모함한 적이 훨씬 많았다. 그렇게 되면 내 인생의 범인은 다시 나였다.


피하고 싶은 모든 상황에서 “돈 없어.”라는 말은 필요 이상으로 결백해 보인다. 그러나 세상에는 나보다 가난하게 출발해서 나에 비할 수 없는 것들을 쟁취한 사람들의 일화가 더 많았다.


한때는 마인드조차 일종의 재화이고, 내 몫으론 그런 것도 하나 주어지지 않았다는 원망까지 했다. 하지만 원망이란 0.1의 보잘것없는 재주들까지 깡그리 소멸시키겠단 다짐이어서, 정말로 가난한 인간이 될까 봐 그만두었다. 돈도 부동산도 없는 나이기에 오히려 지킬 게 확실했다.


나는 이제 부모님께도 지겹게 들어온 말을 돌려주고 싶다.


“딸내미가 부자였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지금도 행복해.”

“부자 딸 덕 봤으면 지금 일도 안 하고, 넓은 집에서 좋은 차 굴리고.......”


어차피 내 유년 시절은 지나갔다. 가난이 무슨 색인진 몰라도 어린 날의 그 색깔은 아닐 거다. 나중에 더 어른이 된 후 돌아보면 그제서야 가난이 찍고 간 방점들이 선명히 보일지 모르겠다. 그래도 부모님의 노년은 아직이니까 과거보다는 미래에 사로잡히려 한다. 가난이나 가난한 부모님이 창피한 적은 없었지만, 난 이제 자연스럽게 많은 돈을 원하게 되었다. 가난이 내 인생을 펴주길 바랐던 엄마의 마음처럼 나도 돈으로 부모님의 주름을 펴고 싶은 마음이다. 엄마의 소원을 반대로 생각하는데 왜 또다시 가난이 양껏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내 입 안에서 굴리는 “가난”은 엄마 음성으로 듣는 “가난”보다 슬프지 않아서, 심심한 금요일 저녁에 계피 사탕처럼 음미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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