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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지완 Feb 15. 2016

인도차이나에 관한 단상

아무도 사지 않아도 어디에나 있는 것

인도차이나 반도에는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이 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곳을 고르라면 역시 내게는 캄보디아다. 내게 각인된 캄보디아의 풍경은 붉은 흙길이다. 그 길에는 잎이 넓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서 있어야 하고 그 길 위로 스쿠터 소녀들과 자전거 엄마들이 지나가는 것이다. 친구의 스쿠터 뒤에 탄 소녀는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자전거 앞에 아이를 태운 엄마는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를 막아주려 아이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달리는 스쿠터 위 소녀의 절묘한 균형감도 그렇지만, 그 위에서 뭔가 적고 있는 모습은 정말 평화스러웠다. 햇빛이 비치면 아이에게 햇빛을 가려주려 뻗은 엄마의 손바닥 양산 사이로 내리는 햇살도 아름다웠다. 전체 캄보디아 국민의 삼 분의 일이 죽었다는 킬링 필드의 나라에서 그런 평화를 느끼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그 순간이 나의 캄보디아 풍경이다.


라오스 또한 흙길이지만, 국토 대부분이 산악 지형인 탓에 캄보디아와 같은 평원의 맛을 볼 수는 없다. 나름 멋진 경치들이 있지만, 처음 라오스에 갔을 때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라오스 사람들 얘기를 침이 마르도록 했다. 누군가는 길거리에 카메라를 두고 왔는데 다시 갔더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오토바이 여행을 하던 독일 친구는 헬맷을 두고 다녀도 돼서 정말 좋다고도 했다. 라오스는 역시 사람이 최고다. 시장 경제를 받아들여 사람들이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상한다.


캄보디아는 태국과도 그랬지만 베트남과는 계속해서 침략과 응전을 했던 역사가 있다. 이제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최빈국이 되어 버린 캄보디아를 두고 베트남 사람들과 서로 비웃는 말이 있다고 들었다. ‘돈만 알고 예의 없는’이라고 캄보디아인들이 베트남인을 이야기하면, 베트남 사람들은 ‘돈도 없는 것들이 자존심만 있어서’라고 한다든가? 어쨌든 베트남은 캄보디아보다는 가볍다는 느낌이다.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서로 가진 매력의 포인트가 다를 테니까.


태국은 아주 큰 나라다. 스페인과 비슷한 크기라고 했다.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스페인이 차지하고 있으므로 그렇다면 태국의 영토는 정말 크다. 그리고 문화적으로 방콕 남부와 치앙마이를 중심의 북부 문화는 아예 다르다. 거기다가 동북부 잇산은 크메르 민족이고 문화도 달라서 이렇게 보면 태국이 정말 하나의 나라일까, 생각하게 된다. 


어쩌다 TV를 틀면 정부의 공익광고가 나온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지만, 공익광고는 영어 자막을 덧붙여 주기도 해서 내용을 알 수 있다. 태국 국기와 왕과 왕비의 젊었을 적 모습이 오버랩하며 ‘우리는 하나’를 외친다. 반어적으로 하나로 뭉쳐지기는 힘든 국가를 말하는 것 같다. 모래알을 뭉치려는 국가 권력과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국민 사이의 줄다리기를 보는 느낌이랄까.


개인적인 성찰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영향인지 타인에 관해 간섭은 별로 하지 않는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조금만 깊은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손사래를 치며 머리 아파한다. 태국에서 친구 사귀기는 쉽지만, 깊은 사이로 발전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소설이나 인문학책은 찾기가 힘들고 잡지는 어디에 가나 널려있다. 새로 개업하는 식당에서는 연일 잡지에 게재할 사진과 인터뷰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아무도 사지 않는데 어디에나 있는 것. 잡지와 공익 광고와 먼지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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