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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박 Oct 05. 2024

아버지의 집은 어디일까?

2024년 10월 5일 토요일

2024년 10월 3일 개천절은 목요일이었다. 10월 4일은 샌드위치 데이. 회사는 이 날을 공식적인 Day-off로 정해서 직원들에게 휴가 사용을 권유했다. 나는 담당이라는 직함으로 작은 조직을 이끌기 시작하면서 휴가나 공가를 마음대로 쓰기가 쉽지 않다. 마침 4일쯤은 건강검진으로 공가를 사용해도 괜찮을 듯 싶었는데, 회사가 지정한 권장휴가일과 일치해서 다행이다 싶었다.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일에 걸친 연휴인 듯 연휴 아닌 기간 동안 잠도 푹 자고 밀린 업무도 검토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늘 내 뜻대로 실행되지 않는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이모, 이모부와 외가 식구들이 모여 외조부모님의 수목장에 가는 갑작스러운 계획이 개천절에 끼어들었다. 지난주에 뇌에 션트 수술을 받고 퇴원하신 아버지가 나가실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 엄마는 상관없다고 했고, 수술 때문에 머리도 삭발하고 후유증으로 눈과 목에 멍이 들어버린 아버지는 캡 모자를 쓰고 친척들을 만나러 나갔다.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난 친척들은 아버지가 예상했던 것보다 건강해 보이신다며 안심하는 듯했다. 아버지는 알츠하이머와 지난주 퇴원하신 상황 상 술을 드시면 안 된다. 그러나 만남이 반가우셨던 외삼촌과 이모부는 아버지에게 막걸리를 한두 잔 권하셨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더 이상의 막걸리는 안된다고 외삼촌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 점심 께 끝날 줄 알았던 우리들의 모임은 저녁 식사까지 이어졌다.


점심과 저녁 사이 큰외삼촌 댁에서 다과를 하며 온 가족이 모처럼 회포를 풀었다. 피로를 느끼신 아버지는 손님방에서 낮잠을 주무셨다. 아버지는 낮잠에 드신 지 30분도 안돼서 가족들이 수다를 떨고 있는 거실로 나오셨다. 손님방에서 걸어 나오시는 아버지의 표정이 무척 낯설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이 사람들은 누구인지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었다. 엄마와 나는 얼른 아버지를 소파이 앉히고 여기가 큰외삼촌 집인 걸 알아보겠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곧바로 상황을 알아채고 안심하시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오늘… 무탈하게 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나는 회사 업무를 검토해야 했었는데, 조용한 가운데에서 일하기가 싫었다. 침대 위에 수첩과 종이들을 펼쳐놓고 스탠바이미에 최강야구를 틀어놓은 채 슬슬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 모두 점심 후 낮잠에 드신 듯 방 밖은 고요했다.


고요한 와중에 깨어나신 아버지가 내 방 문 밖에서 물으셨다.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거니? 이모와 이모부는 어디 가셨고? “


이모와 이모부를 만난 건 3일, 즉 그저께인데 헷갈리신 것 같았다. 우리가 그저께 만나서 헤어졌고 판교 호텔에 머무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여기가 어디인지 아시겠냐고 여쭤봤다.

“여기는 우리가 얻어둔 곳 아니니?”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가 우리 집인데 모르시겠냐고 다시 여쭤봤다.

“여기가 상현동이라고? 나는 우리가 얻어둔 별장인 줄 알았다.”


알았다며 다시 거실로 향하시는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다시 한번 아버지에게 그저께의 일부터 오늘까지의 일을 설명드리고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말씀드렸다. 안방과 화장실이 어디인지 여쭤보니 모두 알고 계신다. 같이 일어서서 창밖을 살펴보자고 하니 바깥 경치가 무척 낯설어서 다른 곳이라고 생각하셨단다.

“요즘 정말 기억력이 나빠졌다. 내참…”


자리에 앉아 TV를 보시겠냐고 여쭤봤다. 그러자고 하셔서 TV를 틀었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또 말씀하신다.

“엄마한테 이제 그만 집에 가자고 해라.”


다시 여기가 우리 집이라고 차분히 설명드렸다. 아버지는 조금 전과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상현동이 아니라 별장인 줄 알았고, 집안 구조는 기억나지만 바깥 경치는 낯설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다시 기억력이 전과 같지 않다고 대답하신다. 나는 차분히 아버지가 알츠하이머 진단 후 뇌수술을 받아 회복 중이시라고 설명드렸다. 확진이냐고 물으시는 아버지의 반응은 매우 차분하다.


곧이어 손톱을 깎으시는 모습은 지극히 정상이다. 깎은 손톱을 버리려고 움직이시는 아버지에게 괜찮으신지 여쭤보니 괜찮다고 하신다.


동생의 권유로 알쓸인잡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알츠하이머에 대해 이야기한 장면을 찾아보았다.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소설을 쓴 김영하 작가의 말 중 인상 깊은 대목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기억과 관련된 질병에 걸렸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이들의 감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상 시청 후 읽어본 살인자의 기억법에도 치매 환자에게도 감정은 살아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문득 여기가 어디인지 왜 내가 여기에 있는지 어리둥절했던 아버지의 감정이 궁금했다. 아까 그 순간이 기억나시는지 그때 어떤 기분이셨는지 여쭤봤다. 잠시 혼란스러웠던 것 같은데 무섭거나 불안하지는 않으셨다고 한다. 워낙 알은체 하시기를 좋아하시는 타입이라, 그때의 상황과 기분이 기억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는 최대한 아버지의 표현을 믿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의 생각과 기분을 기억하는 유일한 사람은 아버지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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