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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호 Nov 03. 2022

필름이 끊긴다는 것

  나는 술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집에는 술이 매우 많이 쌓여있다. 맥주, 소주, 위스키, 와인, 보드카 등등 가리지 않고 술을 사다 모아 두었다. 기분에 따라, 사람에 따라 술의 종류를 바꿔가며 마시기도 한다. 그리고 한 번 마실 때 다른 사람들에 비해 꽤나 많은 양을 마시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술을 마시는 걸 본 사람들은 강철 체력이라고 많이들 말한다. 단순히 술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술자리나 사람들과의 만남도 좋아하기 때문에 술 약속을 전혀 거절하지 않다 보면, 많이 마실 때는 일주일에 4~5회 마시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요새는 운동하는 게 아까워서라도 술자리를 좀 많이 자제하는 편이다. 나름 최대 주 2회만 마시자는 기준을 세워놓고 꾸준히 지키고는 있다. 

  그러다 어느 토요일, 친구들과 생일 파티를 열게 되었다. 친한 친구들 중에 나와 생일이 일주일밖에 차이 나지 않는 친구가 있기에, 매년 같이 생일 파티를 해왔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같이 하기로 했고 토요일 오후 4시에 연남동에 모여서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 3시에 선릉역에서 진행되는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 늦게 참여하게 되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구로 쪽 방향으로 가는 동기의 차를 얻어 타고 출발했다. 하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차가 너무 막혔고, 40분을 갔음에도 고작 지하철 5 정거장 정도의 거리밖에 갈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도중에 내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홍대입구역으로 향했다. 연남동에 도착하자 친구들에게 전화가 왔다. 이미 시간은 5시 정도였기 때문에 친구들은 1차를 끝내고 나갈 예정이니 2차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2차 장소 앞에서 친구들을 만났으나, 가려했던 술집은 이미 만석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른 가게를 찾았다. 친구 한 명이 위스키를 사들고 왔기에 위스키 콜키지가 되는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약 15분 거리의 고깃집을 찾아내었다. 다 같이 고깃집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친구가 가져온 위스키를 뜯었다.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사 온 위스키였다. 갓 딴 위스키 치고는 알코올 향도 세지 않았고 향이 좋았기 때문에 다들 위스키를 소주 마시듯이 홀짝홀짝 마셨다. 그렇게 2차에서 1시간 만에 위스키 한 병을 다 비우고 고기로 배도 든든하게 채웠다. 그러가 친구 하나가 말했다.

  "자, 3차는 어디 가지? 오늘 생일자가 둘이니까 둘이서 하고 싶은 거 하고 가고 싶은데 가자."

  그러자 생일인 친구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아무 데나 괜찮은데? 술만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결정은 나의 몫이었다.

  "그래? 그럼 나는 노래를 부르러 가고 싶으니까, 준코 같은 노래주점을 가자."

  "그래 그래."

  부랴부랴 홍대 근처의 노래 주점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 간 곳은 대기시간이 무려 2시간이라고 했다. 다시 20여분을 걸어서 다른 노래 주점에 들어갔다. 2시간을 계산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안주 2~3가지와 맥주, 소주를 시켰다. 다들 이미 술을 좀 많이 마셔서 그런지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고, 늦게 도착한 나는 소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2시간여를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나니 이제 슬슬 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1시간을 연장하고 계속해서 소주를 들이켰다. 나중에는 다들 취했는지 탬버린을 흔들며 춤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합 3시간여를 신나게 논 후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너무 피곤했던 나는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님과 신나게 대화를 하면서 집에 도착했고, 너무 피곤했던 나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그렇게 그날은 끝이 났다.


  그리고 이틀 뒤 월요일, 우리는 토요일에 쓴 비용을 정산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보통 모임을 가질 땐, 한 명이 계속해서 돈을 내고 나중에 그 사람에게 돈을 송금해준다. 그래서 그날 대표로 정산을 했던 친구가 각자 송금해 주어야 할 금액을 잘 정리해서 단체 카톡방에 올려주었다. 

  '1차 술집 각자 N원, 2차 고깃집 각자 M원, 3차 노래주점 각자 X원, 4차 양꼬치 각자 Y원'

친구가 보낸 카톡을 본 나는 놀라서 물었다.

  "나는 4차를 가지도 않았는데 돈을 내라고??"

  그러자 친구들이 말했다.

  "? 너 4차 갔잖아 뭔 소리야."

  "ㅋㅋㅋ 쟤 기억 못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당황해서 말했다.

  "야 무슨 소리야 노래주점 나와서 바로 택시 타고 갔는데?? 4차는 무슨 4차야."

  "야 쟤 기억 못 하나 보다. 너 양꼬치 집에서 꿔바로우 맛있다고 극찬하면서 잘 먹더구먼 기억 하나도 안나냐."

  심히 당황스러웠다. 가끔 과음을 했을 때 기억이 드문드문 잘 안나는 경우가 있긴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친구들이 얘기를 해줘도 아예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는 10년 만이었다. 갑자기 조금 무서워졌다.

  "아, 뭔 개소리야. 장난치지 마라. 4차는 무슨"

  "어??ㅋㅋ"

  친구가 웃더니 잠시 후에 동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동영상속에는 양꼬치집에서 소주를 홀짝이는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야, 이 거봐라. ㅋㅋㅋㅋ 영상 찍어놓길 잘했네.ㅋㅋㅋ 봐봐, 너 맞지?ㅋㅋㅋ"

  나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이 정도로 기억이 안 날 수가 있나 싶었다. 너무 놀라서 친구들에게 물었다.

  "와… 씨… 나 뭐 이상한 소리 안했냐?"

  "이상한 소리?? 그냥 평소 같던데, 평소처럼 이상한 놈 ㅋㅋㅋ"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술 마시는 횟수를 줄인다고 줄인 건데, 그것보다는 술 마시는 양을 줄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날은 내가 4차 비용까지 친구에게 보내주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뒤로 일주일 넘게 술을 입에 일절 대지 않았다. 필름이 끊겼을 때의 공포가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술자리 횟수도 횟수지만, 마시는 술의 양도 많이 줄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또 끊긴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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