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댓글 2 공유 4 브런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혼맥의 품격
by 제주앓이 Oct 11. 2017

나 혼자 맥주를 마신다는 건 8

맥주 쇼핑, 나를 위한 소박한 사치

그대를 만나러 가는 길


저 멀리 가지런하게 열을 맞춰 진열장을 장식하고 있는 맥주들의 오색 찬란한 광채가 보인다. 조급한 마음은 발걸음을 재촉하고 조금 더 빨리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밀고 있던 카트를 더욱 열정적으로 밀어 본다. 고작 마트에서 맥주를 사러가는 순간일 뿐인데 무슨 광채며 조바심이란 단어까지 나오나 싶지만, 오늘 나의 밤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줄 친구이자 연인을 만나러 가는 자리에 이 정도 단어 선택은 오히려 부족할 지경이다.

이태원의 대표 바틀샵 <우리슈퍼>

사람은 겉과 속이 다르면 좋지 않은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에 대한 나의 속마음과 행동은 그리 정확하게 일치하는 편은 아니다. 내 마음속 천사와 악마는 아무것도 아닌 맥주 한잔을 위해 매일 밤 치열한 말다툼을 벌인다. 맥주를 마시자고 유혹하는 쪽이 천사인지 악마인지는 사실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밤마다 맥주가 마시고 싶지만 현실은 일주일에 두세 번으로 만족하고 있다. 아무리 낮은 도수의 겸손한 알코올 함유량으로 가벼운 음주를 선사하는 맥주라지만(물론 그렇지 않은 맥주들도 제법 되지만 보편적으로는) 매일 밤 마시기에는 여러 가지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다.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 지기 마련이다. 나 스스로 만들어낸 제재이지만 그 덕분에 음주의 소중함은 그것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오늘은 어디로 맥주 쇼핑을 떠나볼까? 하는 실없어 보이는 고민도 나에게는 꽤나 중요한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제주 조천읍에 위치한 바틀샵 <조천상회>

사실 맥주를 구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즘같이 좋은 세상에는 그저 집 앞 가장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하면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맥주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크래프트 맥주의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는 주세법상 대형 주류회사가 제작한 맥주들만이 편의점에서 판매가 가능한데 내가 선호하는 크래프트 맥주는 의미 자체가 작은 양조장에서 개성 있는 스타일로 만든 맥주이기 때문에 편의점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잘 나가는 크래프트 맥주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뭐 한 달에 한두 번인 맥주 쇼핑인데 어느 정도 발품을 파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에는 국내 3대 대형마트에서도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욕구에 발맞추어 다양한 종류의 크래프트 맥주들을 선보이고 있으니 맥주 구입을 위해 서울로 상경해야 하는 일은 이제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연례행사 정도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지방에서는 크래프트 맥주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수도권과 대도시를 벗어날수록 희소성은 극심해지니 그럴 때를 대비해 늘 가지고 다녀야 하는 필수품은 작은 보냉 가방이다. 대한민국 어느 곳을 가든 나의 보냉 가방에는 언제나 내가 마셔야 할 맥주들이 고이 모셔져 있다. 그러 의미에서 유난히 더웠던 지난여름 나의 맥주들을 위해 무수히 녹아내렸던 얼음들의 노고를 늦었지만 치하해본다. 고마웠다 얼음들아.


사치는 사치
한병에 몇 만원 하는 맥주도 있다.

2천 원 선에서 구입할 수 있는 국산 캔맥주와는 달리 크래프트 맥주는 한 병에 평균 7천 원 선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고작 맥주서 너 병을 샀을 뿐인데 몇 만 원의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 마트에서 몇 병의 맥주들의 바코드 리딩이 끝난 뒤 찍힌 가격에 계산대 아주머니께서 몇 번이고 확인을 하며 비싸다는 말을 연거푸 하셨던 기억이 있다. 크래프트 맥주만을 고집하다가는 주머니 사정이 곧 곤궁해지는 일이 빈번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맥주 쇼핑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특별한 팁 이라기까지는 뭐해도 나의 맥주 쇼핑 목록은  언제나 10병 이하의 꼭 마시고 싶은 크래프트 맥주들과 행사용 맥주 6병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할인에 대체적으로 관대한 대형마트들도 365일 모든 맥주를 할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원에 4캔 혹은 4병은 구입할 수 있는 행사용 세계 맥주는 거의 상시 제공하고 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된다.

소모성이긴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하다.

쇼핑 후 집으로 데려온 나의 맥주들은 냉장고 한 구석에서 눈물의 더부살이를 시작한다. 주방의 주인인 엄마에 눈에 띄는 날에는 알코올 중독자. 정신 나간 취미 등의 독설을 들을 것이 뻔하지만 상온보다는 맨 아래여도 냉장고 안에 두는 편이 긴급한 음주욕구를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마시기 전 냉동실에서 이 급랭 샤워 5분. 이제 혼자 맥주를 마실 준비는 끝났다. 


쇼핑의 여운은 금방 사라진다. 그러나 맥주 쇼핑의 여운은 그것이 내 목구멍을 지나고 내 머리 속에서 기능을 발휘한 후에도 은은하게 그 기능을 발휘하니 이 보다 더 위대한 쇼핑의 매력이 또 어디 있을까? 


 주변 맥주 구입처

· 대형마트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판매하고 있지만 막상 자세히 살펴보면 살만한 맥주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할인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 편의점

못돼도 다섯 종류 이상의 세계 맥주는 구비하고 있는 곳이다. 최근에는 세븐일레븐(플래티넘)과  GS25(구스 아일랜드)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안타깝게 찾는 이가 별로 없어서 인지 이제는 안 파는 점포가 늘어나고 있지만 말이다. 

· 맥주 전문 바틀 샵

샵 주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어 있지만 대체적으로 유명한 맥주들을 구입할 수 있다. 4병 이상 구입하면 전용잔을 주는 자체 행사를 많이 진행하며, 주인장과 친해지면 덤으로 얻을 수 있기도 하지만 대형마트보다는 접근성이 떨어지며 주로 대도시에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keyword
magazine 혼맥의 품격
육지에 사는 제주 여행 중독자.  늦은 밤 혼맥 찬양자.
댓글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서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