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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순응이 아니라 해방의 도구

by park j

초, 중, 고, 대학을 지나 대학원 지금 박사과정을 지나며 교육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파울로 프레이리라는 교육학자는 ‘억압받는 자들의 교육’을 주장하면서 교육은 단순한 순응이 아니라 해방의 도구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회와 교육 속에서 ‘순응’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정말 순응을 사랑해서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진심으로 그것이 옳다고 믿어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순응합니다. 이 말은 우리 교육과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주어진 길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법을 배웠습니다. 질문보다는 정답을, 탐색보다는 암기를, 비판보다는 순응을 먼저 익혔습니다. 학교는 더 이상 삶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정해진 사회’에 맞춰지는 공간이 되었고, 그 결과 우리는 점점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존재로 길러졌습니다. ‘은행식 교육’은 지식을 단순히 ‘저장’하고 ‘인출’하는 인간을 만들 뿐입니다. 이처럼 교육은 우리를 ‘적응된 인간’ 말 잘 듣는 구성원, 새로운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만들어왔습니다.


프레이리가 이야기 해방의 도구가 되기 위한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먼저 질문하는 힘을 기르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정답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해방은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왜 그래야 하지?”, “이 방식 외에 다른 길은 없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기존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질서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그다음으로 진정한 배움은 협력과 대화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공동 프로젝트, 팀 기반 학습, 상호 피드백은 서로에게서 배우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지금의 교육은 시험과 평가 속에서 친구를 경쟁자로 만듭니다. 교육이 해방의 도구가 되기 위해 경쟁보다 연대의 감각을 키워주어야 합니다.


또한 해방의 교육은 지식이 아닌 삶을 다루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 무엇도 배우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사회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사는 지식 전달자가 아니라 함께 배우는 존재여야 합니다. 해방의 교육에서 교사는 더 이상 권위자가 아니라 함께 질문하고 실수하며 배우는 존재입니다. 학생을 ‘미완의 존재’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완성된 주체’로 바라보고, 경청하고 존중하는 자세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출발점입니다. 교육은 일방적 전달이 아니라 대화 속에서 피어나는 만남입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는 바로 “이 길 말고도 다른 길이 있다”는 상상력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순응합니다. 다른 방식의 삶, 다른 구조의 사회, 다른 교육이 가능하다는 걸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해방을 위한 교육은 이 ‘상상력의 훈련’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게 현실이니까”라는 말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교육은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현실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바꾸고, 다시 설계하는 힘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교육은 억압이 아닌 해방의 도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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