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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Oct 01. 2024

95세 노모의 사모(부)곡

95세 노모와 벌초 다녀오는 길

"오늘 어머니, 아버지 보젠 허난 아프지도 안 해라.."

벌초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가 하는 말이다. 올해 95세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어머니가 오늘 벌초 길에 동행했다. 연세가 많은지라 매년 올해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논리로 부모님 산소를 보러 가고 싶다는데 어찌할 수가 없다.


추석 전 벌초를 모두 마치는 제주도의 관습에 따라 성가의 벌초는 이미 다 마쳤다. 벌초하고 추석을 지내고 다시 일정을 마치다 보니 오늘에야 올해 마지막 벌초를 했다.

서귀포 외가 마을에 있는 외조부모님 산소는 매년 내가 벌초한다. 외조부모의 단 하나 있는 아들인 외삼촌은 오래전에 일본으로 건너갔고, 고향에 있는 유일한 혈육인 딸인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하니 어쩔 수가 없다. 그 후손인 내가 해야 한다. 벌써 수년째인 것 같다.

어머니는 성가의 벌초도 어려운데, 외가의 벌초까지 나에게 맡기려니 아주 미안한 모양이다. 매년 올해는 벌초 대행에게 맡기라고 슬며시 얘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손자인 내가 버젓이 있는데,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외조부모님 산소인데 하는 마음으로 매년 아내와 벌초길에 나선다.



올해도 누나가 벌초길에 동행을 해주기로 했다. 서귀포에 살고 있는 누나는 가끔 벌초길 동행을 해준다. 장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동생을 혼자 보내는 게 미안해서인 모양이다. 큰딸이다 보니 장남의 고충을 안다고 한다.

 "어머니가 벌초를 같이 가겠다고 하는데.."오후 늦은 시간 누나에게서 걸려 온 전화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다. 머리가 띵하다. 내일 벌초를 다녀온다고, 인사차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가 하소연했던 모양이다.

"올해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부모님 보러 가고 싶다"라는 것이다. 95세인 어머니가 요새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내세우는 감정 호소 논리다. "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어머니는 거동이 불편해서 집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동네에서 마트나 천천히 걸어서 갔다 오는 정도다. 그런데 험한 벌초에 따라나서겠다고 하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다.  

외조부모님 산소는 차에서 내려서 한 100m 이상의 잡초지대를 걸어가야 한다. 비포장길과 임야 지를 헤치며 걸어가야 하니 어머니에게 벌초길은 난코스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의 움직임이 걱정되다 보니 누나의 아들인 조카까지 같이 가는 것으로 했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가장 깊은 곳까지 가서 주차했다. 걷는 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람이 설렁설렁한다. 조금의 더위는 있지만 바람이 더 피부에 와 닿으니, 기분은 좋다. 벌초는 오기까지가, 산소를 찾기까지가 문제이지 벌초는 어렵지 않다. 예초기를 사용하기에 이제 벌초는 쉬운 작업이 되었다.

외조부모임 산소는 임야지 한 구석에 있는 커다란 쌍묘다. 산담을 넓게 만들어놨기에 면적도 제법 넓다. 다른 산소 2개 정도는 생각해야 한다. 산소에는 온통 고사리투성이다. 삐쭉삐쭉 솟아있는 고사리들이 울창하게 보일 뿐 고사리를 걷어내면 아래는 풀 한 포기 없는 맨땅이다. 잔디가 없다. 모두 고사리의 그늘에 가려서 말라 죽었다. 산소 내외를 예초하는데 1시간도 안 걸렸다.



어머니는 산담에 앉아서 물끄러미 산소를 쳐다보기만 했다.

애증이 많은 부모님이다. 어머니가 어릴 적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다. 부모님에 대한 어릴 적 추억이 없다. 어머니는 할머니, 즉 나의 증조부모님 손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어렵게 고생했던 기억밖에 없다. 그러니 어린 자식들을 두고 일찍 떠나버린 부모님 산소를 보자니 많은 회한이 있으실 게다. 이제 당신이 나이가 들고, 세상을 정리해야 될 때가 되다 보니 더욱 생각이 많으신 듯하다.

대강의 예초작업이 끝나자, 어머니는 산소를 휘둘러보셨다. 그리고 차례를 치를 준비를 했다. 항상 이날은 어머니가 정성껏 준비한다. 그리고 술 한잔을 비워놓고는 주절주절 한참 동안 얘기를 한다. 이때쯤 우리는 멀리서 조용하게 어머니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벌초도 깨끗하게 잘되신 게, 가게 .." 길을 돌아서기로 했다.

깨끗하게 벌초를 한 부모님 산소 앞에선 어머니


11시도 안 된 시간이다. 고생했다고 어머니가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고 한다. 어머니가 한번 얘기를 하면 따라야 한다. 나이 들어서 남은 게 고집하고, 삐짐이다. 만약에 당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2박3일 동안 삐짐은 간다. 95세라지만 정신은 아직 정정한 상태라 사리 분별은 분명하다.

항상 벌초를 다녀오는 길에는 어머니가 맛점을 사주신다. 본인이 해야 할 일인데 외손자한테 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한 모양이다. 나는 성가, 외가를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 나를 있게 해준 부모님들이다. 내가 있으면, 가능하다면 모두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나이 들어서 고루한 생각인지, 아직도 마음이 불편한 건지는 모르겠다.


"오늘 오랜만에 어머니, 아버지를 봐서 그런지 아프던데도 아프지 않고, 기분도 좋다'

저녁 시간 걱정이 돼서 전화했더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들뜬 목소리다.

가슴이 찡하고, 머리가 띵하다.

어머니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만치, 나도 부모님을 생각하고 있는지 자책감이 든다.

나에게 행동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 것 같다.

이 밤 편안한 잠을 잘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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