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4번째 오름이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Feat. MacBook AIR M2
얼마나 갈지 궁금했으나, 벌써 4번째다. 평일 쉬는 날마다 매번 꾸준하게 오르고 있는 나 자신을 칭찬한다.(물론 아내도.) 이번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고 있던 중, 애월 쪽에 그네가 유명한 오름이 있다 하여 선택한 수산봉. 아내한테 이번엔 수산봉을 간다고 하자 단번에 '아~ 그네~?'라고 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아내는 제주도민 출신에 그것도 애월 출신이었다.
이 오름은 올레16길을 품고 있다. 가만 보니 대부분의 오름들이 올레길을 품고 있는 듯하다. 그만큼 오름들이 멋진 길이 많다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다른 이름은 물메오름이라고도 한다. 정상에 물이 고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관련 블로그나 정보를 찾아보면, 주변에 저수지가 있고, 정상에 작은 우물이 있다고 하는데, 이제는 없다. 있었는데 없어졌다. 그래서 명소인 그네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예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수산봉을 걸으면서 꽤 마음에 들었는데, 지금까지 오른 4개의 오름중에서 유일하게 길이 자연의 숲길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없는 날이다. 하늘이 먼지 없이 깨끗하지만, 먹구름이 있어 화창한 날씨는 아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날씨가
등산하기에는 좋다.
덥지 않고, 해가 없어 피부가 탈 일도
없고 말이다.
오름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이곳은 명확하게 주의사항을 표시해 두었다.
애완동물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재를 부탁하고, 뱀과 진드기를 주의해야 한다. 하이힐이 있는 이유는, 생각해 보니 그네를 타며 인생 샷을 건지기 위해 운동화보다는 차려입고 올 것을 예상한 문구가 아닐까 싶다. 다른 오름들 처럼 길이가 길지 않다. 오름 산책로 지도에 코스마다 길이가 나와 있어서 대략적인 시간을 예상할 수 있다. 우리는 처음 D-F-A-E-B-D 순으로 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길도 짧고 해서 D-F-A-E-B-곰솔나무-대원정사-G-F-A-E-B 코스로 돌았다. 써보니깐 생각보다 복잡한대, 막상 걸어보면 그렇지 않다.
지도를 다시 한번 보고 오자. 계단으로 되어 있는 길은 지도에 주황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 외의 길은 모두 흙, 숲길인데, 지금까지 봐온 오름들 중에서 가장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살아 있다.
나무로 된 계단을 오르면 오름 둘레길이 펼쳐진다.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다 담기지 않지만, 바닥은 솔잎들 깔려 있어 느낌이 새롭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면 정상이 금방 보인다.
정상에는 아주 간단한 산스장이 나오고, 사진 왼편으로 보면 파란색 공사중이라 출입제한 표시가 되어 있다.
아마도 저곳이 예전 우물이 있던 곳이
아닐까 싶다.
지도상이라면 이곳에 화장실도 있고 연못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생각보다 볼게 별로 없는 정상이다. 정상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그네를 타러 이동하자.
이 올레길 표시를 따라가다 보면 그네가 있는 곳까지 쉽게 갈 수 있다. 전체적으로 산에 이정표가 잘 새워져 있지 않아, 중간에 몇 번 지도를 다시 봐야 하는 일이 생긴다. 내려가면서도 이길이 맞나 싶은 길들이 있다. 그러니 출발 전에 꼭! 지도를 핸드폰에 찍어 두 길 추천한다.
나무계단, 숲길, 나무계단, 숲길을 반복하다 보면 그네가 보인다. 원래대로라면 그네에서 저수지가 시원하게 보여야 하는데, 무슨 연유에서 인지 저수지가 모두 말라 버렸다. 가뭄이라도 온 것처럼 바닥이 갈라진 채 삭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자세한 내막까지는 모르겠지만, 도로를 지으면서 물길이 막혀 물이 없어졌다고 한다. 과거에는 유료 낚시터와 유원지, 식당, 수영장 등이 있어 활발했지만, 지금은 모두 방치되고 있다.
경치는 조금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네 자체는 정말 재밌다. 처음에 탈 때는 다리가 땅에 닿지만 조금만 반동을 주어 그네를 타면 공중에 떠있는 기분이 든다.
다른 사진들처럼 아래에 저수지가 있었다면 확실히 더 좋았을 듯싶다. 비가 많이 오면 다 저수지가 차는 걸까. 약 두 달 전에 올린 포스팅을 보면 물이 있던데, 설명해 줄 만한 사람이 없다.
설명을 잘해줄 사람어디 없나.
가만히 놔두다간 끊임 없이 몰라.
물길도 사람도 너무나도 몰라.
잊혀질까 무서워 난 헛탕칠까 두려워.
제주사이더
그네를 타기 전 왼편에 있는 주의사항을 잘 읽어보도록 하자. 여긴 관리자가 따로 없기 때문에 혹여나 아이들이 타다가 다친다 해도 곁에서 케어해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아이들이 탈 때는 항상 주의하자. 어른이도 마찬가지.
그래도 시원시원하게 뚫린 경치가 보기는 좋다.
이곳에 오면 또 봐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곰솔나무' 라고 불리는 아주 오래된 나무다.
그네에서 오른쪽 옆길로 내려와 올레길 표시를 따라가다 보면 일반 도로가 나온다. 거기서 고개만 살짝 옆으로 돌리면 곰솔나무가 보인다.
실제로 옆에서 보면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이 곰솔나무와 저수지가 5경이라고 한다. 500여 년 전에 심어진 것으로 천연기념물 441호 노송이다. 지금은 저수지 쪽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길이 막아져 있다. 나는 이런 소나무를 보면 엽기적인그녀 가 떠오른다. 엄청 오래된 영화임에도 아직까지도 장면 하나하나가 기억에 남는다. 곰솔나무 뒤쪽으로는 아무런 설명이 없는 사당처럼 보이는 집이 한 채 있다. 돌담으로 둘러쌓여져 있고, 벚꽃나무와 먼나무 (빨간 열매 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생각 보도 운치가 있다. 벚꽃이 만개했을 때 왔으면 더 좋았을 듯싶다.
운치가 있는 사당을 지나 길을 따라 올라가면 대나무 숲길을 지나게 되고, 좀 더 올라가면 사찰이 나온다. 예전 아라시야마에서 걷던 대나무 숲길 같은 느낌이 얼핏 난다.
오름을 오르다 보면 돌에 시가 써져 있는 게 상당히 많다. 그중에서도 아내가 읽어보 괜찮다고 한 시 하나를 가져왔다.
수산봉은 앞선 3개의 오름과 다르게 일제의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4.3사건의 피해를 입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충혼탑이 있고, 곳곳에 충혼묘지도 있다. 8경에 해당되며 사찰 근처에 오면 녹음되어 있는 경을 읊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은 무서워할 수도 있는 소리니 조심해야 할 듯하다. 예전 집 근처 사찰에서도 비슷한 경을 읊는 소리가 나온 적 있었는데, 유주가 무서워서 다가가질 못했다.
대원정사 입구에는 절들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다. 천주교 순례길처럼 제주도의 절들을 따라 걷는 불교의 순례길인 듯한 보시의길이 있다. 보시의 길은 #절로가는길 이라는 불교순례길 중 1구간을 의미한다. 총 6구간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자.
수산봉은 공항에서 나름 가까운 오름이다. 그래서인지 오름을 오르다 보면 착륙하려는 비행기가 자주 보인다.
사찰에 가면 위와 같은 그림을 본 적이 있을 거다. 이 그림은 아무 그림이나 그려 넣은 것이 아니다. 불교의 석가모니, 우리가 부처라고 부르는 '고타마 싯다르타'의 이야기를 그려 넣은 것이다. 학창 시절 담당 교수님이 이런 사찰에 관심이 많으셔서,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그중에 기억나는 것은 부유한 집안의 자재였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행복한 삶을 살던 중 고(苦)의 본질 추구와 해탈(解脫)을 구하고자 출가하여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우침을 얻는 장면이다. 그 이후의 그림도 스토리가 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대원정사를 뒤로하고 다시 정상으로 향한 후 다시 그네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처음 출발지로 이동하면 끝이 난다.
수산봉 그네는 포토 스폿으로 유명한 곳이다. 앞에 펼쳐진 저수지의 둑을 걷는 것도 매력적인 길로 알려진 곳이다. 게다가 저수지를 품은 몇몇 숙소들과 유원지, 저수지 뷰가 좋은 장소로 유명했던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저수지가 없어 그 매력이 떨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도 처음 수산봉을 선택했을 때 저수지까지 무조건 가서 둑을 걷는 것까지 목표로 세웠다. 하지만, 그네에서 마주한 말라버린 저수지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래도 매력이 오직 저수지만 있던 것은 아니다. 비록 정상의 우물도 없어지기는 했지만,
수산봉을 오르며 맡았던 나무 향과 흙 향,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숲길로도 충분히 수산봉을 찾을 만한 매력이 되었다.
비록 수산봉의 저수지 뷰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충분히 매력적인 오름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한 번쯤 방문해 보길 권한다. 내가 추천하는 오름들이 널리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