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의 엄마나 며느리가 되고 싶지 않아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떠난 지 일 년 남짓 되는 시기였다.
결혼한 지 이십 년이 되어 가니, 시댁 모임은 더 이상 힘든 자리가 아니었다. 완전히 편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늘 반겨주시는 부모님 덕에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한국에 오기 몇 달 전부터 선물을 준비했다. 아직 미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을 때라 정보가 별로 없었다. 이왕이면 한국에 없고 부피가 작으면서 좋아할 만한 선물이어야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떤 선물을 사면 좋을지 물어보곤 했다. 미국에 사는 연예인 덕분에 유명해진 에코백을 사느라 줄도 섰다. 그렇게 마트와 아울렛에 갈 때마다 메모를 꺼내 선물을 사 모았다. 선물 받을 사람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우리를 보러 열 여섯 명이 모였다. 넓은 거실이 가족들로 가득 찼다. 한국에 있을 땐 직장과 학업으로 바쁘다 보니 다 모이기 어려웠다. 일부러 모인 가족들이 고마웠다. 부모님과 형제들도 보고 싶었지만, 특히 사촌 시누이가 반가웠다. 중학생 때부터 봐온 그녀, 내겐 아직 아기 같은 그녀가 아기를 데리고 왔다. 멀리서 혼자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우리를 만나러 왔다. 아기는 할머니와 가족 손으로 옮겨가고 그녀와 나는 이야기 꽃을 피웠다.
세 돌 지난 아기 중심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삼삼오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나는 외향적이진 않지만 그 안에서 자연스러웠다. 일 년 동안 낯선 곳에서 고생했는데, 오랜만에 가족을 만나니 좋았다. 신랑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포옹하며 사랑을 느끼는 것 같아 행복했다.
나는 잠시 타이밍을 보다가 남편을 방으로 불렀다. 가져온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였다.
캐리어를 열고 선물을 꺼내 남편에게 안겼다. 그런데 남편의 얼굴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가져온 게 이게 다야? 내가 산 건 다 어디 갔어?"
말은 짧았지만 싸늘했다. 나는 처음에는 당황했고 금방 억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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