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과 햄릿

by 온지엽

내가 영영 이해하지 못하는 명대사 둘이 있다. 그건 줄리엣의 '오 로미오, 오 로미오, 왜 당신은 로미오인가요?'와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이다. 내 생각에는 둘의 대사가 바뀌어야 한다.

햄릿. 진짜 내가 살면서 본 등장인물들 중에 - 책이랑은 담을 쌓고 살아서 글 얼마 읽지도 않았지만 - 제일로 답답하고, 수동공격성 심한 사람이다. 왕이 '어찌하여 아직도 먹구름이 너를 덮고 있느냐?' 하고 물었을 때 햄릿은 '아뇨, 햇빛에 그을려서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햄릿 이놈이 보통 놈이 아니구나- 생각했다. 그건 '내가 우울한 건 바로 가짜 왕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내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갔어- 그게 얼굴에도 드러난 거야-' 하고 빈정거리는 것이었다.

그 가짜 왕이 그렇게 싫고 짜증 나고 낯짝을 볼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뒤집어지면 그놈의 심장에 직접 칼을 찔러 죽일 것이지. 그런 식으로 밖에 복수하지 못하는 왕자님이 답답했다. 내가 보기엔 햄릿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오 햄릿, 오 햄릿, 나는 왜 햄릿일까?' 하고 회의에 젖어 스스로를 한심하게 바라봐야 한다. 햄릿. 이름마저도 햄릿이다. 햄인지 헬멧인지 하나만 하라고 일러주고 싶다. 만약에 햄릿이 그 가짜왕의 심장에 칼을 꽂아서 국치를 안정시키면 그 이름은 마치 그리스 신화의 남신의 것처럼 성스러웠을 것이다. 근데 이 왕자란 놈이 꾸물꾸물 고민만 해서 햄릿이라는 이름이 고구마 천 개에 달하는 효력을 가지게 되었다.

줄리엣. 줄리엣 그 여자애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더 해봐야 한다. 이 세상에 남자는 많다. 아무리 로미오가 부잣집 아들이고 미모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여도... 디카프... 리오여도... 아 디카피리오면 좀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고 읊었으면 좋겠다. 남자친구 죽었다고 바로 죽어버리는 건 좀 너-무 과-하게 충동적인 건 아닌가 싶다. 오히려 남자친구 죽고 나서 끙끙 앓다가 1년 후 로미오의 기일에 상사병으로 죽는 게 더 드라마틱하고 슬프다. 조선시대에도 어린 과부들이 살겠다고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오밤중에 어머니나 시어머니에게 목이 졸려 죽었다. 가문에 열녀비 빚진 것도 아닌데 왜 그런가 모르겠다

근데 그 햄릿이라는 왕자도 참 끝까지 답답한 게, 자신이 생각해 낸 '복수'가 겨우 연극이다. 그 연극 보고 왕이 흥분해서 그 연기자들 죽이라고 하면 불쌍한 젊은 남자들은 왕자가 시키는 대로 했다가 죽는 거다. 그때는 여자역할도 남자가 했을 테니까 한창 일해야 하는 남자들이 죽는 거다. 누군가의 어린 아들, 약혼자, 남편, 아빠가 죽는 거다. 그리고 그 연극 하나 벌이는 데 드는 돈은 어디서 나는데? 그거 다 혈세다. 왕자가 사적인 복수하는 데에 국가 예산을 들이부어? 그 연극 보고 충격받은 왕이 어떻게 쇼크로 헤까닥 죽어버리면 모를까. 왕이 흥분해서 난리 브루스 추다가 너 죽고, 나 죽고, 아주 고위공직자, 국가 핵심인물들까지 싹 다 뒤져버렸다.

그럼 햄릿은 나랏돈 썼지, 왕도 죽였지, 나라 팔아먹었지. 최악이다. 너만큼은 살았어야 했다. 아무리 미련하고 바보 같은 왕자님이라도 네가 싼 똥은 네가 치웠어야 했다. 그러려면 넌 살았어야 했어. 미안하지만 너의 그 고결한 생명은 너만의 것이 아니다. 그 많은 국민들의 생명줄이 마치 탯줄처럼 너와 연결되어 있단 말이다. 근데 네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네 나라도 망하고 너의 무고하고 가여운 백성들은 '남의 나라' 통치 아래 놓였다. 넌 네가 가장 모셔야 할 백성들에게 그 서글프고 비참하고 추한 굴욕을 남겨버린 거다. 햄릿 네가 왕.자.니.까. 그렇게 쉽게 쉽게 백성들 혈세 쓰고 무책임하게 죽어도 되는 줄 알지만 네가 평범한 평.민.이.었.어.봐. 택도 없다.

내가 보기엔 이건 햄릿의 비극이 아니라 덴마크 국민들의 비극이다. 가짜 왕 뒤진 거는 지팔지꼰이고, 왕비님 돌아가신 것도 업보고, 햄릿 죽은 것도 한심하기 그지없는데 그 안타까운 국민들의 운명이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다. 하지만 난 안다. 원래 작은 고추가 매운 법이고, 가랑비에 옷 젖는 법이지. 작은 나라 덴마크의 국민들은 강할 거다. 그 안에서도 똑똑한 사람이 많을 거지. 한스럽게, 하지만 씩씩하게 살아남을 거다, 그 민족은.



* 10년 전에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적은 내용인데, 나는 줄거리를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Gemini는 그게 나의 무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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