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월세를 깎아 달라는 당당한 세입자

by 안개꽃

토론토 타운하우스를 렌트 주고, 비행기 다섯 시간 타고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어느덧 5년 차 되었다. 중간에 한국살이 2년을 하고 와서 그런지, 아직도 이 도시가 새롭고 아침에 문 열고 집을 나서면 보이는 산 뷰가 여행지에 온 것 같이 낯설다.


20년 살다 온 토론토는 평지가 많고, 산은 없다. 언덕이나 숲이 있을 뿐이다. 산은 아니다. 겨울엔 11월부터 4월 말까지 눈이 내리는 곳이다. 서쪽 끝 비씨 주로 이사 오고 나니 겨울이 짧은 것이 가장 좋았다. 기온도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많지 않아, 두껍고 무거운 캐나다 구스는 그냥 옷장에 걸려있는 날이 많다.


2020년 가을부터 토론토 타운하우스를 렌트 줬는데, 그동안 세 번 세입자가 바뀌었다. 지금 있는 세입자가 세 번째 가족인데 결혼한 오빠 부부와 싱글인 여동생 두 명이 함께 살고 있고, 가끔 필리핀에서 엄마가 오신다고 했다. 월세는 매달 1일이 되기 일주일 전에 보내주고 집도 이쁘게 꾸민 후, 나에게 사진도 보내줬다.


그랬던 세입자에게서 월세를 깎아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아직 우리 집에 산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보통 캐나다는 1년 월세 계약을 한 후, 1년 후부터는 이사 가고 싶으면 60일 전에 집주인에게 통보해 주고 이사 가면 된다. 집주인은 1년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면, 나라에서 지정해 준 만큼 월세를 올려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월세를 올릴 경우, 3개월 전에 세입자에게 서면으로 통지해 줘야 한다.


이번 세입자의 1년 계약 만기는 8월이었다. 그런데 4월쯤 나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하이 아직 계약 기간이 4개월 남아있는 거 아는데, 혹시 1년 계약 끝난 후, 월세를 올릴 예정인지 아니면 깎아줄 예정인지 물어보려고 문자 했어.”라고 연락이 왔다.


월세를 깎아달라니.. 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잠시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건지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안 그래도 요즘 뉴스에서 토론토 렌트 시장에 대한 변화와 관련된 기사를 자주 접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렌트 구하려면 줄을 서야 하고, 까다로운 심사도 거쳐야 하고, 인터뷰도 하고, 심지어 때로는 집주인이 광고한 월세보다 더 주겠다고 하기도 했다. 그만큼 매물대비 월세를 구하려는 수요가 많았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민자와 유학생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 요즘은 렌트 수요보다 매물이 남아도는 것이다. 이젠 반대로 집주인이 일 년 치 인터넷 비용을 내준다거나, 첫 달 월세는 받지 않겠다거나, 가전을 좀 좋은 걸로 넣어 준다거나, 아무튼 세를 놓기 위해 다양한 경쟁을 한다. 그와 함께 월세 가격이 많이 내려온 건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세입자가 시장 파악을 정확히 하고 나를 은근히 압박한 것이다. 월세를 깎아 주지 않으면 1년 계약 종료 후, 다른 곳으로 이사 가겠다고 했다. 나는 최대한 쿨한 척 (마상은 숨기고) 150불 (15만 원)을 내려주겠다고 했다. 다시 한번 연락이 왔다. 200불 내려주면 이사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졌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는데 드는 비용과 몇 달간 공실이 날 위험 부담을 감수하느니 월세를 좀 덜 받는 것이 나았다.


대신 계약서를 다시 1년 새롭게 쓰기로 하고 마무리했다. 월세를 주고 세입자와 관계를 맺으며 남편과 내가 다짐해 온 것이 있다면 최대한 좋은 집주인이 되자는 거다. 그렇다고 호구가 되자는 건 아니다. 고쳐줘야 하는 것이 있을 때, 다급하게 처리해 줘야 하는 일이 있을 때, 때론 세입자가 조금 예민하게 구는 듯해도 최대한 빠른 응답을 하며 전문가를 보내주고 비용처리를 해 주자는 다짐이었다.


이자 상황에 따라 나에게 현금흐름으로 남는 돈이 전혀 없을 때도 있고, 집 수리비로 목돈이 나가면 때론 마이너스 운영이 되기도 하지만, 융자는 갚아 나가고 있으니 아무쪼록 감사한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또한 몇 년 사이 집값이 오르기도 했다.


경제 상황과 시장 논리에 의해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 최대한 유연한 자세를 가지려 노력한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이자도, 세입자도, 부동산 시장도, 무엇보다 나도 매일 달라지니 세상에 그대로 영원한 것은 없다 생각하고 처음 다짐했던 마음가짐이 변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직도 적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