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흘러갈지는 몰라도, 이건 알아
진아 "팟캐스트를 운영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완벽주의가 아니라 완성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게으른 완벽주의가에서 부지런한 완성주의가를 선택하게 된 근래에는 문득 결론만이 아닌 과정 또한 기록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어요."
- 진아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중 -
향운 "저는 예전에는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기 싫어서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았던 때가 있거든요. 내가 하는 말이 온전하게 상대방에게 안 닿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내가 한 말을 누군가 진심으로 들어주고 충만하게 들어주셨다니 좋아요. 이젠 말을 해도 충분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애프터글로우 팟캐스트 녹음 중 -
그렇게 난, 나의 친구 진아와 팟캐스트를 운영하기로 결심을 하고,
본격적인 운영을 위한 사전 준비를 했다.
나는 내가 일이든 사람이든 좋아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시작'에서도 알 수 있다.
어떤 일은 시작하는 것만 생각해도 골치 아프고 어떤 사람은 만나러 가기도 전에 기운이 없다.
반면, 어떤 일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재밌고 어떤 사람은 만나러 가기 전부터 기분이 좋다.
나는 팟캐스트를 준비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앤돌핀이 돌았다.
채널 방향성을 성정하는 등의 핵심 기획뿐 아니라,
팟캐스트 계정 만들기, 커버 이미지 만들기, 채널 소개 쓰기, 녹음 장비 및 프로그램 깔기, 마이크 테스트 및 녹음 후보정, 녹음실 대여하기 등등, 정말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나는 이 모든 과정에서 거의 순도 100%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에 진심을 담았기 때문일까,
난 내가 이런 일들을 하면서 재밌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친한 친구와 함께라 즐거움이 두 배였다.
첫 녹음을 마친 후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문득 이 여름, 진아와 함께한 이 시간들이 우리 둘의 서사에 오래오래 남게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이 시간이 애틋해졌다.
팟캐스트 시작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현실적인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친구인 진아의 본업은 주얼리디자이너이고,
나는 지금은 본업이 없지만 언젠가는 또 다른 본업이 생길 예정이다.
이 팟캐스트는 우리에게 있어 어쩌면 사이드 프로젝트인 셈인 것이다.
그래서 진아는 본업이 바빠질 때 팟캐스트를 못하게 될까 봐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우리 팟캐스트를 듣고 나서 개선점을 조언을 해줘도,
그만큼의 신경 쓸 여지가 없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는 말을 내게 해주었다.
듣는 순간 너무 이해가 됐다.
나는 진아에게 일단 최대한 여기에 너무 포커스를 두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직 내가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녹음실 대여, 녹음본 편집, 계정 운영과 같은 일들은 내가 맡아서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진아는 내게 매우 고마워했다.
진아도 진아가 할 수 있는 부분들을 해주었다.
유튜브에 올리려면 썸네일이 필요해 그림을 그려 썸네일을 만들어주었고,
유입을 위해 개인 인스타그램에서의 홍보도 아끼지 않았다.
진심으로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모습에 감동했고 고마웠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했다.
진아의 고민은 본업과의 충돌이었다면,
나의 고민은 이러했다.
우리의 에피소드가 차곡차곡 쌓이고 나는 그 자체로도 뭔가 뿌듯함을 느꼈다.
에피소드를 의미하는 ep1, ep2, ep3...
숫자가 올라간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직접 무언가 창작물을 만들어낸다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 창작물이 얼마큼 많은 사람에게 닿는지가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생각을 더욱 커져만 갔다.
나는 그동안 인정을 받는 것에 익숙하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사람인지라,
무엇을 하든 성과에 집중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진아와는 우리 팟캐스트가 수익화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의 과정을, 인생을 녹음한다고 생각하자고 이야기를 했었고,
그래서 일단 결과에 대한 생각을 좀 내려놓자라고 생각했었는데 쉽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하는 무언가에 대해 대가 또는 인정을 받길 바란다.
하물며 취미도 내가 너무 못하면 안 하게 되어버린다.
"너무 못해서 떼려 쳤다."라고 하면서.
예상은 했지만 팟캐스트는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아직 시간이 좀 더 쌓여야 하긴 하지만 청취자가 많지도 않고 주변 반응도 다소 시큰둥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는데,
어쩌면 그게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생각,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 유익한 이야기가 더 인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니까.
그래서 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맞을까? 하는 물음표가 생기기도 했다.
팟캐스트에서는 완벽주의를 내려놓자, 타성에 집중하지 말고 내성에 집중하자는 내용을 말해놓고,
너무 상반된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
우리가 이런저런 시행착오와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하던 와중,
너무나 감사하게도 진심을 담아 댓글을 달아주신 청취자분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깨달았다.
진심은 언젠간 닿을 수도 있겠구나.
그 순간만큼은 내 머릿속에는 결과가 얼마큼 좋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소수라도 얼마나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그들에게 감동을 주었냐는 거였다.
성과가 없어 성과를 바라는 나 자신과 우리의 진심을 담아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의미를 느끼는 나 자신이 공존했다.
현실을 바라보는 것과 이상의 추구하는 것,
나는 과연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아님 둘 다 필요한 것일까?
이 고민을 하면서 나는 내가 퇴사를 하게 된 계기와 과정들을 회상하게 되었다.
그러자 생각보다 결과가 명료했다.
난 의미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났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가 마음속으로 내린 결론은 내가 느낀 '의미'에 좀 더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초심을 잃지 말자 스스로 다짐했다.
의미에 집중하다 보면 결과가 따라주기를 바라면서.
솔직히 앞으로 친구와 함께 하는 팟캐스트에게 다가올 앞날을 알 수는 없다.
이 단단하지 않은 종이배가 강물을 따라 어디로 흘러가 어디에 도착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뭐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그렇지만 이 팟캐스트는 끝이나도 나에게 너무나 감사하고 소중하게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 충만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준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하든, 분명 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소중한 친구 진아,
나는 그녀를 통해 진심을 다해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고,
그녀와 함께한 이 시간이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게 빛날 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