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를 지켜보며 문득 추천해 지고 싶어진 책, <바른마음>
미국 대선으로 심장이 쫄깃해 지는 밤을 보냈다. 개표가 여전히 진행 중인 지금도, 주류 미디어에서는 누가 당선 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상대방이 나와 음악적 취향이 다를 땐 취향의 차이라며 쿨하게 인정해 줄 수 있지만, 나와 정치적 견해가 다를 땐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다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이 보아왔는가. 그럴 때의 감정은, 서로의 다름에 대한 불편함을 넘어서 때론 역겨움이라는 극단적인 감정을 경험하기도 하는 듯 하다.
정치성향이 다른 상대에 대한 인간 심연의 적대감의 근원에 대해 심도있게 다룬 책이 있는데 바로 <The Righteous Mind> (부제: 왜 좋은 사람들이 정치와 종교로 인해 분열되는가). 2년 전쯤 읽은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나에게 아주 큰 깨달음과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 중의 하나다.
키우던 강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었는데, 어차피 죽었으니 가족이 강아지를 저녁거리로 먹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인가? (아무도 그것을 보지 않았다는 전제이다.) 왜 잘못되었다고 느끼는가?
혼자 사는 남자가 저녁거리로 생닭을 한마리 사왔는데 집에 와서 먹기 전에 그것으로 자위를 한다. 이것은 잘못된 행동인가? (아무도 보지 않았고 그 닭고기는 오직 그 사람만 먹는다.)
이 책은 다소 충격적이지만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thought-provoking) 질문을 서두에 던지면서 독자가 자신의 옳고 그름, 도덕적 판단을 함에 있어 어떤 스탠스 (stance) 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고,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보게 만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취향의 다름은 인정해도,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 이토록 커다란 감정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키는 근원에는 “옳고 그름” 에 대한 아주 뿌리깊은 시각의 차이가 있다는 명제를 소개해 주고, 그 명제가 결국은 어릴 때 본인이 노출되었던 환경에 의해 자연스럽게 결정된다고 저자는 말을 한다. 우리가 어쩌면 이성적 판단을 통해 “선택”했다고 믿는 정치적 견해가, 사실은 많은 부분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익숙하게 느끼는 것에 대한 결과물이고 따라서 정치적 견해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도 다분히 감정적이고 원초적인 반응에서 기인한다는 다소 허무한 이야기를 하면서, 정치적 견해가 형성되는 메커니즘에 대해 아주 건조하고도 이성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어떠한 견해를 가지던,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해 줄 “논리적 근거”는 양쪽 다 충분히 찾을 수 있으며, 이것은 인간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이성적인 고민의 결과가 아닌, 1차적인 좋음, 싫음, 기쁨, 역겨움에 기인한 것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코끼리 (1차적 감정) 에 올라탄 사람 (이성) 이 실상은 코끼리가 가는 방향을 컨트롤 할 수 없고, 그저, 이미 방향을 정한 코끼리에 맞추어 이성적 근거를 찾는 것일 뿐이라고 비유한다.
저자는 이 원초적인 감정에 기인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다섯가지 잣대를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Care / Harm - 상대를 다치게 하거나, 해하는 일은 그르다는 판단. (예를 들어 동물학대는 옳지 않다고 느끼는 마음. 인간이든 동물이든 구분없이 해를 가하는 것에 반응)
Fairness / Cheating - 쌍방이 공평한 관계여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옳지 않다는 판단. (예를 들어 간음은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이므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Loyalty / Betrayal - 연대를 위한 충성심을 높이 사고 배신을 나쁘다고 여기는 판단. (예를 들어 국가를 위한 희생을 높이 평가하고 옳다고 느끼는 마음.)
Authority -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 (예를 들어 윗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은 옳다고 판단. 가정이나 조직에서의 위계를 중요시 여김.)
Sanctity - 신성함을 인정하고 옳다고 판단하는 마음. (예를 들어 종교적인 판단)
이 다섯가지 기준으로 사람들이 느끼는 옳고 그름, 도덕념을 찬찬히 살피며, 기본적으로 정치적 보수와 진보의 견해 차이에 대한 심도있는 점검을 하는데, 매우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아이러니 하게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포용력과 이해심이었다. (사실 책의 의도는 서로 이해하며 잘 살으라는 것 보다는, 오히려 왜 정치적 차이를 타협하기 어려운지에 대한 분석이라 생각한다.) 그 사람의 뿌리깊은 생각의 근원과 기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듦으로써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한 강한 믿음도 결국은 내 자라온 환경과 내 원초적 감정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기점검을 하게 해 주었고,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던 상대방의 정치적 견해 차이도 그 또한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어느정도의 여유를 가르쳐 주었다. (아직 잘 안되는 부분도 물론 여전히 있다.)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이 다분히 원초적인 감정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논리적 설득으로는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박사학위가 있는 저자는 논문 쓰듯이 아주 촘촘한 논리로 건조하고 이성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한줄 한줄이 아주 촘촘한 논리적 전개라서 다소 건조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읽으면 엄청난 인사이트를 얻을 수도 있는 좋은 책이다.
1991년 LA 경찰에게 개처럼 두들겨 맞은 뒤 폭풍우처럼 일어난 인종차별, 정치진영 논란 뒤 Rodney King 이 기자회견에서 한 “Can we all get along?” (우리 다 같이 잘 지낼 순 없나요?) 라는 말을 지금 이 시점에 구태의연하게 할 생각은 없다. 현재 미국 대통령 선거로 양 진영이 팽팽하게 맞서는 가운데 느껴지는 긴장감은 실로 대단하다. 우리의 다름은 어디서 오는가? 도덕념의 충돌, 그것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과 깊이 있는 사고훈련을 하고 싶다면 이 책 <The Righteous Mind> 를 읽어볼 것을 을 추천한다.
(건조한 글도 괜찮은 분이라면 추천. 아니라면 관련 강연 같은걸 추천한다.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닐지도 모름. 한국어 제목 <바른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