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미술 수업을 하면서 만난 학생 중,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는 9살 소녀 ‘리나’입니다. 처음 수업에 왔을 때, 리나는 말수가 거의 없고 다른 아이들과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색연필을 쥐는 손이 아주 조심스러워, 마치 종이를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워하는 듯했습니다.
첫날 과제는 ‘나를 표현하는 그림’이었는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활짝 웃는 얼굴이나 좋아하는 동물을 그릴 때, 리나는 한 장의 종이를 검은색으로만 가득 칠했습니다.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려서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지만,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날 이후 리나를 억지로 참여시키기보다, 옆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며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몇 주가 지나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리나는 여전히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검은색 사이에 붉은색, 파란색이 스며들기 시작했고, 점점 더 복잡한 패턴과 이야기를 그림 속에 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리나는 제게 그림 한 장을 건네며 “이건 제 비밀 정원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림 속에는 다양한 색으로 피어난 꽃들과, 그 사이에 앉아 있는 작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리나 자신이었죠.
그 순간 저는 미술이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자신을 표현하는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신했습니다. 리나는 그 이후로 매 수업마다 새로운 색을 시도했고, 다른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작은 변화가 주는 기쁨이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라는 걸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