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단 하루
막상 기대치에 못 미친다 해도 감안하자 생각했다
@1. 쉬멍이 하고 싶었다.
문득 몰아붙이던 일상에 지쳐 쉬멍이 하고 싶었다. 그래서 꼬드겼다 나의 여행메이트를. 일정을 슬며시 물어보고 바로 1박 2일 여행을 이야기했다. 언니는 언제나 OK였다. 언니의 대답이 긍정이랄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나는 바로 한반도를 4 등분한 지도를 보냈다.
언니는 익숙하다는 듯 "4등분이 오랜만-"이라고 별명을 한 번 불러주고는 고민을 시작했다. 여행지에 대한 고민을 이틀정도 하던 차 날씨도 좋을 것 같은 예감과 함께 쉼이 목적이기에 수목원을 첫 번째 경유지로 정하고 수목원 근처의 여행지를 선택했다.
여행지가 정해지니 어느 곳을 방문하고 구경할지 알아보는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문득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느낀 부분이 있었는데 나는 여행 준비/계획단계를 매우 즐거워하고 좋아한다는 것이다. 어떤 플레이스가 핫하고, 어디 카페가 예쁘고, 무슨 음식이 맛있는지 숙소는 어디가 더 좋은지 등의 리뷰와 사진들을 잔뜩 찾아보고 비교하며 모인 자료들을 취합하는 걸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왠지 새롭게 무언갈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전환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만 같은 여행이었다.
@2. 김고양이님
신기한 건 언니와 여행하면 그렇게 고양이들이 줄줄 나타나더랬다. 여지없이 이번 여행에서도 그랬다. 제이드가든으로 들어가던 도로 가운데 깜냥이가 가만 앉아서 차를 쳐다보고 있었다. 천천히 차를 멈추고 어떻게 해야 고양이를 놀라게 하지 않고 이동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며 시동을 끄고는 "우리가 이 길을 가야 하는데 잠시만 비켜주면 안 될까?" 하고 통하지도 않을 말을 건네었는데 고양이는 꼭 우리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아주 유유하고 도도히 한 발 한 발 슬로우모션처럼 도로 옆쪽까지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 모습은 도도하다 못해 정말 고고했다. 우아하게 한 발씩 내딛는 모습에 언니랑 나는 눈을 마주치고 한참을 웃다 고양이가 안전하게 잔디 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만나서 반가웠다는 인사를 건네고 주차장으로 향했다.
@3. 언제 와도 좋은 곳
내게 제이드가든은 좋은 기억들이 가득한 곳이다. 처음 제이드 가든을 알게 된 것은 오랜 기간 만났었던 옛 연인에 의해서였는데 기념일을 특별하게 보내보고자 스냅사진을 함께 찍었던 곳이기도 했다 당시 스냅사진이라는 개념이 흔하지 않았던 때라 굉장히 재미난 경험이었고 그 덕분에 제이드가든의 숨은 장소들을 속속들이 즐길 수 있었다.
제이드가든은 다양한 걷기 루트가 있는데 우리는 정직하게 '직진'을 택했다. 가을 날씨 였지만 산길로 둘러가는 길에 수 없이 날아다니는 벌레들을 보고 저곳은 우리가 갈 곳이 못되구나 싶어 바로 포기를 했기 때문이다. 언니도 나도 벌레를 정말 무서워하고 싫어한다. 사진을 찍다가도 벌레가 나타나면 순간 둘 다 그 자리에서 없어질 정도로.. 이 날도 역시 민망할 정도로 괴성을 지르며 둘 다 스프링이 튀듯 자리에서 벗어났던 일이 있었는데 꽃이 만발하던 장소가 너무 예뻐 주변을 서성이다 벌들에 둘러 쌓였다는 걸 깨닫고 진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튀어나갔다. 그리고 언니를 찾은 곳은 꽃밭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다.
@4. 김유정역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카페
제이드가든을 충분히 즐기고 김유정역으로 향했다. 서울에서부터 일찍이 출발을 해 김유정 역에 도착을 했음에도 시간은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쯤이었다.
폐역이라고 소개가 되어있어 어두침침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고 역 내부는 옛 시대의 상황극 놀이를 하기 딱 좋게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주어지면 우린 참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없다는 조건하인데, 마침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지금 가면 언제 볼 수 있는거냐며 몸 조심히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내는 등 옛 시대의 상황극 놀이를 하며 한참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웃고 즐기다. 또 우가 언제 그랬냐는 듯 툴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음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돌렸다.
우리의 여행에 빠질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는데 그건 바로 '카페'다. 어떤 여행에서는 카페를 하루에 4번을 갔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커피도 좋아하지만 그 장소에서만 즐길 수 있는 그곳만의 로컬 문화가 가득한 곳에 나를 푹 담그고 그 속에서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찾고 찾은 이번 춘천에서의 첫 카페는 #베이크포레스트라는 곳이다. 카페 옆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딱 숲 속카페의 정석 같은 곳이었다. 특히 카페 곳곳에 신경을 가득 쓴 포토존과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우리를 이곳에 오랜 시간 머물기 딱 좋게 만들었다.
특히 외부 입구 쪽 작게 돌담이 있는데 꼭 그 공간만큼은 제주의 어느 곳에 와 있는 느낌이 들어 조금 색다른 설렘을 받았다. 커피를 주문시키고 언니와 한참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놀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마자 2층으로 올라가 그간의 고민들 그리고 앞으로의 일과 관련된 이야기 등 오랜만에 마냥 가볍지 않은 조금은 무거운 이야기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나갔다.
@5. 감성숙소 춘천헤이 그리고 애식주
나는 일단 숙소가 깔끔하고 깨끗해야 한다. 이건 숙소를 고를 때 나만의 철칙 중 하나이다. 더불어 예쁘기까지 한다면 나쁠 것 없지. 춘천을 여행지로 골랐을 때부터 눈에 뜨이던 숙소가 있었다 바로 '춘천헤이'였다. 흔히 요즘 감성숙소로 많이 알려져 있었던 곳이었는데, 후기의 사진들이 하나같이 포근했고 무엇보다 깔끔했다. 마음에는 들었으나 사진이 전부이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없잖게 있었지만, 막상 기대치에 못 미친다 해도 감안하자 생각했다. 저녁 늦게 도착해 정말 잠만 잘 예정이었기에 때문이다.
정말 생각했던 데로 다양한 곳을 경유하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외부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고 어디에 주차를 해야 하는지 몰라 건물을 한 바퀴 돌다 직원들만 이용할 것 같은 지하주차장을 발견해 바로 주차를 했다. 조금 더 망설이다간 그 주차공간마저 확보를 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분명 사람이 적을 평일로 여행일정을 계획하고 움직였는데 숙소는 주차공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의 문을 여는 순간 숙소 내부는 후기들에서 봤던 딱 그대로였다 깔끔했고 포근하며 깨끗했다. 군더더기가 없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짐을 풀어두고 간단히 재정비를 하고는 인근 술집으로 향하고자 했던 우리는 조금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닥뜨렸다. 룸 화장실 세면대가 꽉 막혀있었던 것이다. 막혀있는 세면대를 뚫기 위해 직원분을 호출했고 직원이 4회 정도 방문을 한 후에야 겨우 세면대를 뚫긴 했지만 100%완벽하진 않았다. 시원하게 물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었기에 룸변경을 제안주셨지만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인근 술집인 '애식주'를 향해야 제안을 마다했다. 숙소는, 그 부분의 불편함만 있었지 그 외 적으로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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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지갑을 챙기고 우리는 애식주로 향했다. 애식주를 방문하면, 로컬막걸리를 웰컴주로 주는데 한 모금 훅 털어 넣고 한 병을 시킬 뻔했다. 이제부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우리의 목적은 애식주에서만 마실 수 있는 하이볼이었고 하이볼과 더불어 안주는 best메뉴로 시켰다. 애식주의 best메뉴로는 조개찜과 이름을 잊은.. 파스타가 있다. 애식주는 음식들이 주방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오픈주방의 구조였다. 주문한 음식이 만들어지는 동안 주문했던 하이볼이 먼저 나왔고 차례대로 음식들이 나왔다. 이 best메뉴는 더욱 좋았던 점이 있는데 바로 조개찜을 다 먹고 나면 그 남은 국물에 파스타면을 추가해 완전 색다른 요리로 다시 먹을 수 있는것이다. 이로 인해 1석2조를 노린 우리는 재탄생해온 조개찜 파스타를 시작으로 2차전을 펼쳤다. 하이볼을 물마시 듯 끊임없이 마시며,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너무 맛있는 안주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참고로 하이볼도 애식주에서 개발한 주류들이다라 한 모금 한 모금을 음미하며 마셨다.)
사실 처음부터 애식주를 가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원래는 다른 식당을 가고자 했다. 그런데 막힌 세면대를 뚫는 직원분의 작업이 마무리되길 기다리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식당의 라스트오더 시간이 초과되었고 부랴부랴 찾아낸 곳이었지만, 강하지 않은 도수의 하이볼이 눈에 띄었기에 망설임 없이 선택한 곳이었다.
우연히 발견하고 방문한 곳이지만 애식주는 나의 맛집 list에 바로 저장되었다.
@6. 이제 잘시간 입니다.
하루가 길고 길었다. 처음의 목적은 쉼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또 우리는 알차게 돌아다녔다. 하지만 뭐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리 그 시간을 즐기면 되는거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