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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ny Sep 09. 2020

집사 맘은 그게 아냐

우리 같이 살자, 오래오래

집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은비가 싫어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이고(정확히는 약이 아닌 영양제 개념의 보조제)

신장이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피하 수액도 매일 놔준다.

불행 중 다행히도 피하 수액은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 키우던 노견도 심신부전을 앓았기에 집에서 피하 수액을 놔주곤 했다.

그때도 어려웠지만 지금도 어렵다.

멀쩡한 아이 피부에 주사를 찌르는 일 자체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영문도 모른 채 그걸 참아내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시간이 참 힘겹고 아프다.


우리 개는 나이라도 많았지,

노묘도 아닌 고작 4살짜리 고양이가 벌써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니.

진단받은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제 초반인데 너무 나약한 소리를 하는 걸까.

크게 한 번 숨을 들이켜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집사를 너는 어떻게 생각할까.

강제로 붙들고 입에 알약과 물을 주사기로 쏘아대는 집사가 너는 얼마나 낯설까.

귀신 같이 약 먹을 시간을 알고 숨기 바쁜 뒷모습은 영락없는 아가다.

그럴 때 보면 사람 아기나 동물이나 다를 바가 없지 싶다.


이런 집사에게 위로가 되는 건 다행히 은비가 이 모든 과정을 너무나 잘 따라주고 있다는 것이다.

매 순간 무섭고 싫을 텐데도

내 작고 귀여운 고양이는 집사를 믿어주는 것 같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집사 맘을 아는지

잠시 토라져 뾰로통하게 있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풀어져 장난감을 물고 오는 모습에

울다가 웃기를 반복하는 일상.


매일 생각한다.

사람처럼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네가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고.

너랑 더 오래 함께 하고 싶어서라고.

다 널 위해서라고.

그렇게 집사는 오늘도 혼자 떠든다.

말로도 마음으로도 열심히 전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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