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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책

by madame jenny


어느덧

밤의 온도가 섬세해지는 계절이 성큼

나에게 왔다



절기의 섬세함...


예전처럼 오래 머물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절기를 사랑한다.


사계절의 어느 때보다..


가을밤의 바람은 유난히 사려 깊다.

여름의 열기를 지우지도, 겨울의 냉기를 드러내지도 않은 채, 그 사이의 미묘한 온도로 세상을 감싼다.


이 계절의 가장 조용한 시간,

어둠이 완전히 가라앉은 밤에

포레의 음악을 듣는다.


파반느와 시실리안느.

산책길에서 두 곡은 마치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진실을 말하는 듯하다.



조용하면서도 단정하다

그리고

묘한 감정의 온도가 섞인다


파반느의 첫머리는 절제된 품격으로 시작된다.

피아노와 현악이 고요하게 엮이며, 어둠 속에서 바람과 바람이 만나 춤을 추는 듯하다.


그 춤은 느리지만 명확하다

감정이 들뜨지 않고

품위 있고 진중하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숨을 고르는 모습 같다.


살아가며 느끼는 수많은 당김과 이완.


관계의 거리, 감정의 속도, 혹은 삶의 리듬이 조금씩 엇갈릴 때,

그 어긋남 속에도 질서가 있음을 느낀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태어난다.


시실리안느는 그보다 한층 부드럽고 내면적이다.

느린 6/8박의 리듬은 바람의 흔들림처럼 유연하다.


그 선율을 듣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호흡을 늦추게 된다.


음악이 멈추는 그 짧은 순간

쉼표의 공백 속에서

‘시간’을 들려준다.

그의 음악은 단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 멈추며 존재한다.

그 멈춤이 바로 ‘사유의 자리’다.

그 사이에서 순간 들려오는

메시지를 곱씹는다

그리고 흐르도록 둔다.


마치 내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가을밤의 바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감싸며 흐른다.


세상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그 흐름이 사라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포레의 선율처럼, 바람의 흔적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공기의 결로 이어진다.

억지로가 아닌

그냥 흐르도록

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그것이 바로 존재의 방식, 그리고 시간의 본질이다.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반복되는 파동의 형태로 우리 곁을 스쳐간다.

파동과 바람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때론 ‘슬픔’이 ‘평온’으로 느껴진다

포레는 아마도

슬픔을 감정으로 표현하지 않고, ‘조화’로 녹여냈기 때문일까.


그는 상실과 위안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둘을 나란히 놓고, 그 사이의 미묘한 온도를 들려준다.


그 온도는 가을밤의 공기처럼

마음이 세상과

조용히 화해하는 순간을 닮았다.


포레의 파반느와 시실리안느를 들을 때

내 안의 ‘바람’ 같은 흐름을

듣는다.


마음의 깊은 곳에서부터 천천히 불어와,

지나온 시간들을 어루만지고,

집착보다는 더 이완된

마음으로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편안함은 고요 속에 있고, 진짜 온기는 멈춤의 순간에 깃든다는 것을.


어둠과 함께 흐르고

바람은 그 곡선을 따라 춤춘다.

그 리듬 속에서 나는 조금씩 가벼워지고, 조금씩 따뜻해진다.


바람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잃지 않고 잊지 않고

살아 있음의 리듬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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